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7번방의 선물. 웃긴 예고편 뒤에 숨겨진 엄청난 비극

반응형




영화 <7번방의 선물> 예고편은 참 웃긴다. 작년 천만관객을 기록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근엄하기 짝이 없었던 허균 나리가, 아니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전세계 여심을 사로잡는 타고난 카사노바 장성기가 바가지 머리를 하고 "1961년 이용구 00 산부인과에서 재왕절개로 태어났어요. 엄마 아팠어요. 내 머리 커서." 하고 깔깔 웃는다. 그 뒤로 나온 예고편 역시 바보 연기로 제대로 망가지고 보기만해도 두려운 흉악범들 앞에서도 눈치없이 솔직한 류승룡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에 대한 어떤 사전정보 없이 예고편만 본다면 <7번방의 선물>은 영락없이 교도소와 재소자들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다. 






그런데 <7번방의 선물>은 그저 웃기기만 한 영화가 아니다. 사실 이 영화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다. 애초 시작 자체가 진한 비극을 암시한다. 하지만 휴먼 코미디를 지향하는 탓에, <7번방의 선물>은 전혀 웃기지 않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애써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잔뜩 공을 들인다. 그리고 제작진의 의도대로 몇몇 장면에서 관객들을 박장대소하는데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허나 <7번방의 선물>은 스토리 전개상 자연스레 슬픔으로 치닿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사랑하는 딸 예승(갈소원 분)의 세일러문 가방을 사주려고 하다가, 졸지에 아동납치범, 성폭행, 살인범 누명을 쓰게 된 용구는 성남 교도소 내에서도 최악의 흉악범들만 모인다는 7번방에 갇히게 된다. 





용구가 딸과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은, 공정치 못했던 사법제도 탓이다. 용구가 아동을 죽였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 단지 피해 아동의 부모가 경찰청장에, 용구가 지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경찰과 검찰은 단숨에 용구를 가해자로 몰고간다. 그리고 재판 또한 유례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요즘 현실에서는 지적 장애인이 범죄를 일으키면, 불완전한 심리상태를 감안하는 사례도 종종 있지만, 피해자 아버지가 경찰청장인터라, 피해자 부모의 요구대로 재판 또한 일사천리도 진행된다. 


그렇다고 <7번방의 선물>이 가진 자에게만 유리한 우리나라의 모순된 사법 제도 혹은 사형 제도 폐지를 울부짖는 심각한 사회고발성 영화라고 보기도 어렵다. <7번방의 선물>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주인공이 주위 죄수들과 교도관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딸을 만나게 되는 훈훈한 과정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교도소라는 특성상, 정해진 면회시간이 아니고서야 가족이 교도소 안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면서도 극적인 소재다. 하지만 영화는 용구의 딸 예승을 어렵게 교도소에 반입하는 전개를 최소화하면서 대신 용구와 예승의 아슬아슬한 교감과, 용구 부녀를 통해 서서히 교화되어가는 주위 죄수들과 교도관의 변화를 극대화시킨다. 


교도소 안에 죄수 딸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면서도 마냥 당할 수 밖에 없는 용구의 상황은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그의 딸 예승을 교도소 안에 들여야한다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아동 살인자라는 오명을 안으면서도 오직 딸 예승의 안위만 걱정하는 정신지체 남자와 한시도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어린 딸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한국식 '신파'로 흘려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혹자는 <7번방의 선물>을 두고 민감한 사회적인 주제를 건들면서도, 두루뭉실하게 휴머니즘으로 포장한  '신파'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7번방의 선물>은 예상되는 신파를 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가령 시작부터 결말에 대한 복선을 미리 깔거나, 장성한 딸 예승(박신혜 분)이 비록 사법연수원 모의 재판이라고 하나 직접 자신의 아버지가 무죄임을 밝히고자 하는 과정은 마냥 '웃음과 감동'으로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비극을 퉁치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고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불편하게 다가오는 점도 없지는 않다. 가령 정신지체 장애인의 머리는 꼭 우스꽝스러운 바가지 머리어야하는가. 그리고 점점 최악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재미있게 보이려고 하는 웃음 강박증은 안타깝다 못해 처절할 정도다. 이 또한 제작진이 원하는 방향이였는지는 모르겠다만. 


휴먼 코미디를 지향하지만 실상은 엄청 슬프면서도 평면적인 이야기 탓에 억지 신파로 보여질 수 있는 아쉬움도 있다만, 그럼에도 그 단점까지 완벽히 상쇄시키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작품에 대한 기대치까지 상승시키는데 충분하다. 





자칫 우스꽝스럽게만 보여질 수 있는 용구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소화해낸 류승룡의 연기를 필두. 요즘 충무로에서 각광받고 있는 오달수, 박원상, 김정태, 정만식, 김기천, 조재윤 그리고 냉혈한 처럼 보이다가도 따스하게 용구 부녀의 아픔을 대변하는 정진영의 뜨거운 울림과 똑부러진 딸 예승이로 완벽 빙의된 박신혜와 갈소원 등 배우들 연기 보는 재미만으로도 쏠쏠하다. 1월 23일 개봉. 


한줄 평: 뜨거운 가족애로 포장했으나, 실상은 눈물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슬픈 이야기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