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시각으로 24일(한국 시각 25일) 개최한 2013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혹은 오스카상)에서 가장 예측가능하면서도 기대되는 수상 부문이 있었다면, 단연 여우 조연상 부문을 꼽고 싶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제시카 채스테인과 제니퍼 로렌스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여우주연상 부문도 흥미진진했지만, (결국은 제니퍼 로렌스 수상,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그야말로 판타스틱했다)여우 조연상은 수상에 확신을 넘어, 이견이 없을 정도로 이례 없는(?) 시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앤 해서웨이는 조연이다.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를 시작으로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은 블록버스터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도 주연급으로 출연한 정상급 여배우가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조연(?)으로 참여한 것이다. 실제로 <레 미제라블> 초반에 나왔다가 죽음으로 퇴장하는 앤 해서웨이의 분량은 그녀의 딸로 출연하는 아만다 사이프리드보다 적다. 하지만 영화에서 앤 해서웨이가 맡은 판틴은 출연하는 분량으로만 판가름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뮤지컬과 영화에서 극적 반등을 이루는 중요 인물임 동시에, 극 중 판틴이 부르는 ‘I Dreamed A Dream’는 <레 미제라블> 아리아 중에서도 가장 폭넓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애초 판틴이란 캐릭터가 출연 분량은 작지만,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인물이긴 하다. 하지만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판틴은 그녀가 긴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우는 장면에서만 그치지 않고, 영화가 끝나고, 시간이 한참 지난 이후에도 극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의 장면으로 남게 한다. 아마 <레 미제라블>에서 앤 해서웨이 분량이 조금 더 많았다면, 올해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단연 앤 해서웨이에게 돌아갈 뻔도 했다.
인형 같은 미모를 자랑하는 여배우가 극 중 역할을 위해 15kg을 감량하고, 여자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것 자체가 극적으로 다가오긴 한다. 하지만 <레 미제라블>에서 앤 해서웨이가 보여준 미학은 단순히 아름다운 미모를 포기한 투혼에서 그치지 않았다. 짧은 분량이었지만 <레 미제라블>에서 앤 해서웨이는, 우리가 알던 앤 해서웨이가 아닌 남편에게 버림받고 딸을 위해 자신의 정절까지 바치다가 끝내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 비련의 여인 ‘판틴’ 그 자체였다. 앤 해서웨이가 몸무게를 감량하고 삭발을 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이슈거리가 아닌, 온전히 역할에 충실히 하기 위한 배우로서의 열정이었다.
신인시절부터 제법 괜찮은 연기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예쁜 얼굴과 초기 출연작 <프린세스 다이어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때문에 칙릿 영화 공주님으로 각인되어온 앤 해서웨이에게 <레 미제라블>은 그녀의 숨겨온 재능과 열정을 만천하에 입증시키는 좋은 계기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앤 해서웨이 필모그래피에 관심 있는 팬들은, 크게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앤 해서웨이가 배우로서 얼마나 끊임없이 노력하고 이미지 변신을 꽤했는지 잘 알고 있다.
얼굴만 예쁜 줄 알았던(?) 앤 해서웨이가 적은 분량에도 표정 하나만으로 웅장한 스케일을 압도하는 연기파 배우로 등극한 것은 결코 순간적 우연이 아니었다. 우아한 공주 드레스를 벗어던지며, 약물 중독자(<레이첼, 결혼하다>), 정의와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크한 캣우먼(<다크 나이트 라이즈>),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면서도, 끝까지 한 남자만을 사랑한 순정녀(<원 데이>) 등 어느 작품에서나 다른 얼굴로 연기에 임했던 앤 해서웨이의 살뜰한 필모그래피는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관객과 만나고 싶었던 앤 해서웨이의 투지를 엿보게 한다.
아리따운 공주에서 머무를 줄 알았던 앤 해서웨이는 전 세계 남성들을 홀리는 치명적인 캣우먼으로, 그리고 불과 몇 달 채 지나지 않아 비련의 여인으로 명실상부 최고의 여배우로 등극했다.
관객들이 입을 모아 극찬하는 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을 연기한 앤 해서웨이가 <레 미제라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까지 포함, 여우조연상 11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물이다. 그렇게 우리는 <레 미제라블>을 통해 얼굴도 되고, 연기도 되고, 연기를 위해 미모까지 포기하는 열정 넘치는 여배우 앤 해서웨이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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