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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잔혹한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는 희망의 한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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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젊은 작가(주드 로 분)이 만난 대부호 Mr. 무스타파(F. 머레이 아브라함 분)은 30여년 전만해도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혈혈단신 주브로브카 공화국에 건너온 불법 이민자 제로(토니 레볼로리 분)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호텔로 손꼽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중립국인듯 보이지만, 순수 유럽(엄연히 말하면 게르만 족) 혈통을 고집하는 파시즘의 그림자가 서서히 엄습하던 주브로브카 공화국에서 제로는 기차 여행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기차를 멈추게하고 검문에 들어간 군인들이 자신과 다른 인종인 제로에게만 여권을 제시하게 하는 등 까다롭게 굴었거든요. 


하지만 제로의 후견인을 자청했던 구스타브는 총칼을 가진 군인들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히 제로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설파합니다. 다행히 마담 D(틸다 스윈튼 분)의 살해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탑승한 기차 안에서는 운좋게 과거 구스타브의 호의를 받았던 젊은 장교 헨켈스(에드워드 노튼 분)을 만나 무사히 마담 D 저택에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시즘이 완전히 장악한 다음 기차 여행에서는, 과거 헨켈스에게 받은 특별 통행증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역시나 구스타브는 그 때와 마찬가지로 제로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군인들에게 저항을 했지만, 쓸쓸한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지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지배인으로만 알려져있을 뿐, 과거는 모두 불문에 부쳐진 미스터리한 남자 구스타브는 유명 호텔 최고 지배인이라고 하나, 재산은 빗과 옷 몇가지가 전부였지요. 구스타브는 제로의 최고의 스승이자, 친구였지요. 제로에게 자신이 호텔 지배인으로 쌓은 경험을 모두 알려줌은 물론, 그의 여행에도 함께 동행케하고, 심지어 마담 D에게서 받은 어마어마한 유산도 모두 제로에게 물려주었으니까요. 그래서 불법 이민자에 불과했던 제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최고의 갑부가 될 수 있었지요. 





물론 구스타브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비즈니스를 위한 일이라고 하나, 돈많고 나이많은 부호들과 매일 밤 잠자리를 함께하고, 경찰에게 쫓기는 몸임에도 불구 독한 향수를 뿌리는 허세 쩐 남자였지요. 


하지만 구스타브는 옳지 못한 불의를 참지못하고, 자신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 걸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몇 십년 뒤 머리 희끗한 노인이 된 제로의 표현에 의하면, 구스타브는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이 잔혹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희망이었죠. 





구스타브는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었습니다. 서비스 정신이 필요한 직업 특성상 행한 친절이었다고 하나, 사람들을 대하는 구스타브의 진심은 그가 위기에 처할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밑천으로 작용하였지요.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천하의 망나니였던 드미트리는 어머니 마담D의 유산을 물려받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될 만한 사람들은 모조리 제거합니다. 심지어 자기 어머니 마담D까지 말이죠. 마담D의 재산은 모조리 자기 것이라고 확신하던 드미트리는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그림 중에서도 가장 값어치있는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이 구스타브 몫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구스타브를 마담D 살해 용의자로 모함하여 위기에 빠트립니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만 추구하기보다, 늘 타인을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었던 구스타브는 그를 도와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온정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인상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위기에 처한 구스타브를 돕는 ‘십자열쇠회원’ 컨시어지들이 보여준 끈끈한 동료애와 온기가 아닐까 싶네요. 호텔 지배인으로서 손님들을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펼치더라도, 구스타브의 도움을 요청하는 다른 ‘십자열쇠회원’ 전화에 침착하게 다른 회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컨시어지들의 모습은 수많은 명장면이 가득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도 단연 으뜸이었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나치가 완전히 장악한 주브로브카 공화국에서는 더 이상 구스타브와 ‘십자열쇠회원’이 보여준 호의와 온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습니다. 드미트리의 이기심과 잔혹한 폭력이 상식을 압도하게 된 것이죠. 


수십 년이 흘려 대부호가 된 제로는 자기의 아들뻘인 젊은 작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미 오래 전에 구스타브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라져 버렸다고요. 





구스타브가 사라져버리고 그 젊은 작가마저 세상을 떠나버린 세상을 그렇습니다. 타인의 안녕을 헤아리려 하기보다,  자신의 안위와 이익이 더 중요한 사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세상은 ‘십자열쇠회원’들이 억울하게 옥에 갇히고 탈옥자가 된 구스타브에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나치 밑에서 장교일을 하고 있다고 하나, 어린 시절 구스타브가 베푼 친절을 기억하며, 그에게 다시 호의를 베푸는 헨켈스 같은 사람도 존재하구요. 


어쩌면 Mr. 제로 무스타파의 말처럼 구스타브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인물에 불과할 지 몰라요. 하지만 구스타브가 있었기에 어둡고 혼탁한 세상에도 제로가 꿈을 이룰 수 있었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핑크빛 온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Mr. 무스타파, 젊은 작가, 그리고 작가가 죽은 이후 그 책을 읽은 소녀에게까지 전해진 구스타브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어쩌면 웨스 앤더슨 감독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만든 것은, 아무리 광기에 휩싸인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잔혹한 세상에도 여전히 구스타브와 같은 한줄기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은 아닐까요. 요즘들어 더욱 생각나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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