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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선사하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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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을 통해 21세기 아시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우뚝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이다. 요시다 아키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였다. 





원작에서도 그랬듯이, 영화 또한 부모 없이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던 세자매가 아버지 죽음으로 혼자가 된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 분)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사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았던 사치(아야세 하루카 분),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분), 치카(카호 분)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젊은 여자와 정분이 나서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정도다.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 유쾌한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 세 자매는 배다른 동생 스즈를 기꺼이 자신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부모의 부재 속에서도 아이들끼리 꿋꿋히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의 성인 버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복 동생 스즈를 친동생처럼 아끼는 세자매의 모습은 혈연 관계로 묶여있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 개념을 제시했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연상하게 한다. 비록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손수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감독이 전작들을 통해 구현한 세계관과 정면으로 일치되는 영화다. 





그런데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유독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은, 조부모가 남겨준 유산을 대하는 자매들의 태도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남겨준 집에서 생활하는 자매들은 여전히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있고, 할머니가 남긴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자 한다. 이는 어릴 때 자신들을 버린 부모들의 존재를 극구 외면하려고 하는 사치의 행동과 대척점을 이룬다. 집을 팔자는 엄마의 제안에 오히려 역성을 내면서 끝까지 낡은 집을 지키고자 한다. 


젊은 여자 네명이서 오래된 집을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 그 낡은 집에서의 생활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부모와의 행복했던 기억이 많지 않았던 세자매에게 할머니의 집은 부모를 대신하여, 자신들을 보살펴주었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할머니 덕분에 부모의 부재에도 별탈 없이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세 자매는 그럼에도 불구, 아버지,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여전히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없이 자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는 세 자매는 친부모를 모두 잃은 스즈를 거두어 들인다. 그리고 스즈와의 관계를 통해, 부모의 이혼으로 잃어버렸던 자신들의 어린시절의 행복을 조금씩 되찾아간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100% 결점없는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 자매 중에서 부모에 대한 기억이 제일 많기에, 그들을 향한 원망도 제일 많은 사치는 빈틈없이 철두철미한 성격과 달리, 유부남 의사와 오랜 불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둘째 요시노는 남자와 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호구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셋째 치카는 특유의 엉뚱함과 독특한 남자 취향으로 종종 언니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오히려 속 깊고 의젓한 막내 스즈가 언니들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스즈가 일찍 철이 들어버린 데는 자라면서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들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속이 곯을 대로 곯아버린 네 자매의 상처의 근원의 대부분은 가족, 부모에게 있었다.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어른들 때문에 일찌감치 한 집안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이 되어야했던 자매들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쉽게 인정할 수도, 그렇다고 부인할 수도 없는 애증의 관계다. 대신 사치, 요시노, 치카 자매는 부모 역할을 대신했던 할머니의 집을 물러받으며, 스즈와 함께 매일 반복 되면서도 새로운 일상을 꿈꾼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긴 집에 깊은 애착을 보이는 자매들의 태도는, 자신들을 부모처럼 돌봐주었던 할머니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대중문화 전반적으로 두드러지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이 느꼈던 절망과 상처, 그리고 불안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낸 311 이후 영화들은 그럼에도 아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선조들이 힘겹게 일구어낸 삶의 터전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강조한다. 영화에 유독 죽음과 관련된 소재가 자주 등장하고, 311과 더불어 21세기 일본 사회의 모순을 몸소 경험한 젊은 세대가 전후 세대의 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흥미있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불륜과 부모의 이혼 등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애써 잊고자 했던 사치는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일찍이 속 깊은 아이가 되어야했던 스즈와 함께 지내면서, 비로소 자신의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면서, 그렇게 사치는 조금씩 부모를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과거에 있었던 안좋은 기억을 무조건 덮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출발을 기약하는 영화는 아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받았던 상처를 무조건 참고, 속으로 끙끙 앓기 보다, 감정 표출을 통해 보다 긍정적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네 자매는 부모없이 자란 어린 시절의 악몽을 원망하고 되뇌이기 보다, 부모세대가 자신들에게 행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서로 힘을 합쳐 녹록지 않은 삶을 꿋꿋이 살아가고자 한다. 가쿠시마에 위치한 조그마한 바닷마을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는 네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스토리가 주는 감동 그 이상을 선사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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