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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하동채복: 두 사람의 노래' 촛불집회와 함께 풀어낸 80년대 노동운동 구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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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하동과 채복은 조금 특별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80년대 중반, 대학 졸업 후 노동운동에 투신한 부부는 연달아 구속되는 고초를 겪게 되고 그 때 겪었던 아픔은 고스란히 그들의 기억으로 남는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섹션 초청작인 남승석 감독의 <하동채복: 두 사람의 노래>(이하 <하동채복>)는 80년대 중반, 노동운동을 했던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부분 하동과 채복의 인터뷰와 편지 낭독으로 이뤄진 영화는 자연스레 두 사람의 구술사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하동과 채복, 두 주인공의 인터뷰로 그들이 살아왔던 삶이 가늠되지 않으면,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영상, 삽화 등으로 말로써 풀리지 않는 빈틈을 빼곡히 채우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노동 운동에 투신하고 감옥에 수감된 이후, 하동과 채복은 서로와 가족들에게 무수히 많은 편지를 보냈다. 그들이 상대 배우자 혹은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대부분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 감옥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연인(배우자)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하동과 채복은 자신들의 노동 운동이 가족들에게 인정 받길 원했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명문대를 나온 하동이 노동 운동에 뛰어든 것은, 공장 노동자였던 작은 형의 영향이 컸다. 작은 형과 같은 노동자들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하동의 청춘을 바쳤다. 하동의 아내이자 투쟁 동지인 채복 또한 비슷한 이유로 대학 졸업 이후 공장 노동자가 되어 노조 운동가가 되었다. 


좋은 학교를 나와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 수 있었던 하동과 채복은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노동자들이 자본에 의해 착취 당하지 않고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 운동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하동과 채복의 바람과 달리 이 세상은 한번도 노동 친화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연이어 들어서면서 노동 환경은 더욱 악화 되었고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대표되는 고용 안정은 더욱 불안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절망만 늘어가는 현실에 참다 못한 시민들은 결국 촛불을 들었다. 2016년 연말 서울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거세진 것은 지난해 10월 터진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단단히 한 몫 하긴 했지만, 이명박근혜 이후 도태된 민중들의 삶을 개선 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컸다. 그래서 지난해 연말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퇴진 이외에도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하동채복>은 하동과 채복 두 사람의 이야기와 더불어 지난해 연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현장을 교차 편집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촛불집회를 담은 푸티지(특정한 사건을 담은 장면)들이 특별한 내레이션 자막 없이 현장 스케치 중심으로 담아 냈다면, 하동과 채복이 등장 하는 장면들은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짓고 부부가 직접 지은 특별한 구조의 다락방에서 인터뷰 혹은 지난날 썼던 편지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흘러간다. 덤덤하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을 떠올리는 하동과 채복과 대비되는 촛불집회 장면들은 청춘을 사회 운동에 헌신 했던 부부의 과거이자 현재 이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노부부가 된 하동과 채복은 그들의 젊은 날에 그랬던 것처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보다 앞서 거리에서 목놓아 노동자 해방을 외쳤던 하동과 채복은 설령 우리들이 원하던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한들, 그래도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현재를 살 것을 믿는다. 귀농 하여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부부의 일상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부부를 둘러싼 굴곡진 노동사, 현대사가 (광화문) 광장이 다시 쓴 오늘날의 역사와 고스란히 이어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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