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무료하게 살아가던 일록(백승환 분)에게 미국 시카고에서 살던 친구 예건(이웅빈 분)이 찾아와 그의 곁에 눌러 앉게 살게된다. 시카고에서는 도무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 무작정 한국에 왔던 예건은 무심결에 일록에게 4중창단을 결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 말에 솔깃한 일록은 그날부로 4중창단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하고, 그렇게 오디션만 여러번 보러다닌 대용(신민재 분), 대용을 따라 오디션을 보러 다니다가 지금은 부인 지혜(윤지혜 분)에게 꼼짝없이 잡혀 살고 있는 준세(김충길 분)이 남성 4중창단 ‘델타 보이즈’ 멤버로 합류한다. 




고봉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델타 보이즈>(2016)의 스토리라인은 굉장히 단순하고도 얼핏 보면 평범하다.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어느날 흥미로운 무언가에 눈을 떠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는 성장담은 여러 영화, 소설, 드라마에서 늘상 보아왔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델타 보이즈>는 우연한 기회에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된 주인공이 정신적, 세속적 성공까지 이루는 해피 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그토록 원하던 노래를 하게 되었지만, 가수로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상당히 부족해보이는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미래는 한없이 불투명해 보인다. ‘희망고문’. 무작정 노래를 시작한 ‘델타 보이즈’ 멤버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델타 보이즈’ 멤버들은 함께 모여서 노래를 하는 것만으로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즐거워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태생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닌 것 같다. 자신에게 공장 운영을 맡기던 형부와 싸우고 홧김에 공장을 나와 갈 곳이 없어진 일록은 일이 안풀릴 때마다 거울을 보고 눈물로 범벅이 된 자신의 빰을 때리거나, 온 몸으로 야구공을 맞는 자학 행위를 일삼는다. ‘델타 보이즈’ 활동 때문에 아내와 갈등이 생긴 준세는 매일같이 아내와 육탄전을 벌인다. ‘델타 보이즈’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는 대용 또한 그 나름대로 우울한 속사정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책없이 살아가는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삶은 한심 그 자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수로서 한없이 자격 미달인 ‘델타 보이즈’를 응원하고 싶다. 만약 친한 지인 중에 재능도 없고 적은 나이도 아는데 무작정 노래 하겠다고 뛰어드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서 따라다니며 말리고 싶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노래를 통해서 비로소 삶의 행복을 찾은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선택을 무모하다고 폄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델타 보이즈>에 출연한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이웅빈 배우와 몇 차례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고봉수 감독은 그 배우들과 의기투합 형태로 <델타 보이즈>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영화에 예건이 잠깐 소개한 것처럼, 50년대 활동하던 미국 남성 4중창단 ‘델타 리듬 보이즈’에서 영화 제목 겸 영화 속 그룹명을 따왔다. 통상 단편영화 제작비보다 더 적은 250만원으로 완성한 영화는 고봉수 감독이 연출 겸 촬영을 맡았고, 배우들이 스태프 역할까지 겸하며 일당백 역할을 했다. 영화 <델타 보이즈>가 극중 ‘델타 보이즈’ 멤버들이 처한 상황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이뤄낸 높은 완성도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개략적인 상황만 배우들에게 전달해주고, 대사, 리액션 등은 배우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고봉수 감독의 연출 방식이다. 영화 속 대사 70% 이상의 배우들의 애드리브로 채워진 <델타 보이즈>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실제 성격이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면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는다. 제작비 문제로 컷을 여러 번 나눌 수 없기에 고육지책으로 선택했다는 롱테이크 촬영 기법도 배우들이 가진 역량을 한 단계 끌어 올린다. 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믿음과 배우들의 재능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 셈이다. 


여러모로 영화를 찍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일단 부딪쳐 봤던 <델타 보이즈>는 현실적인 이유로 각자 가진 꿈을 포기하곤 하는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물론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의 과실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델타 보이즈>는 지난해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공개 이후 한국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받고 인디포럼,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등에서 호평 세례를 받았지만 영화 속 ‘델타 보이즈’ 멤버들은 조그마한 대회를 나가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사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영화 속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상황이 대부분 사람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델타 보이즈’ 멤버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노래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은 이미 버린 지 오래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스타가 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애시당초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끼리 함께 노래하고 시간을 보내는 그 자체에 만족하고 행복해 한다. 어쩌면 영화 속에서 가능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영화 <델타 보이즈> 시작이 그랬고, 세속적인 성공 여부를 떠나서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을 행복해 했던 사람들은 꿈과 현실을 담은 멋진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낸다. 




올해 2월 <델타 보이즈>에 출연한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윤지혜 등과 <튼튼이의 모험>이라는 새로운 영화를 찍은 고봉수 감독은 지난 5월 열린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대명컬처웨이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봉수 감독은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윤지혜가 출연하는 새로운 영화를 구상 중이다. 그 이전에 <델타 보이즈>가 6월 8일 극장 개봉 형태를 통해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어느새 한국 독립 영화계의 새로운 브랜드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고봉수 사단의 시작을 알리는 <델타 보이즈>를 보면서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너돌양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를 지탱하고 있는 스토리 라인은 크게 세 가지이다. 탐관오리의 횡포에 봉기를 든 성난 민중들, 악당에게 모든 것을 잃고 복수하는 남자, 어릴 때 학대받고 제대로 삐뚤어진 남자이야기. 


군도 옆에 붙어진 민란의 시대라는 친절한 부제처럼 <군도>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민란'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군도>는 지리산 추설의 활약, 탄생 배경과 그들이 악당 조윤(강동원 분)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엄청난 희생이 뒤따르긴 했지만, 영화 내내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다."라는 외쳤던 지리산 추설은 끝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운하지 못하다. 





전형적으로 힘없는 약자들이 하나로 뭉쳐 강자에 저항하는 이야기는 선악 구도가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그런 논리로 본다면 전설의 의적 홍길동의 후예를 자청하고, 실제로 부패된 관리와 양반을 응징하는 지리산 추설은 선이요, 온갖 악행을 자행하며 힘없는 백성들을 핍박하는 조윤은 당연히 악이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조윤의 단독샷다. 조윤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의 탁월한 비주얼도 한 몫하긴 했지만, 이는 조윤 외에 딱히 인상깊은 장면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2008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에 이어 김치 웨스턴을 표방한 작품인만큼, 도치(하정우 분)와 지리산 추설 무리가 마치 <석양의 무법자>처럼 말을 타며 호방하게 사막을 가로지르는 장면도 있고, 조윤 때문에 부모, 형제를 잃은 돌무치가 도치라는 새 이름을 얻고 복수를 꿈꾸며 대나무숲에서 무술을 연마하는 씬도 있다. 


이 각각의 씬만 놓고 본다면, 어디하나 나무랄 데 없는 미장센이다. 그런데 이 장면 하나하나가 이어 붙어져서 137분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순간, 영화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균열이 군데군데 발생한다. 





장면들을 잇는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군도>는 윤종빈 감독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최근 개봉하여 흥행한 다른 한국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쉽게 관객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TV 다큐멘터리처럼 내레이션을 삽입하였고,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다."라는 말을 수번도 넘게 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문제는 관객들을 배려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이 과잉 친절에 있다. 수많은 관객들이 <군도> 개봉을 손꼽아 기다린 것은, 하정우, 강동원, 이성민, 이경영, 조진웅, 마동석, 김성균, 윤지혜 등 유명 배우들의 활약상을 보기 위함도 있겠지만, 한국형 액션 블록버스터가 안겨주는 시원한 비주얼과 쾌감, 그리고 힘없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기득권층 횡포와 맞서싸우는 군도들의 활약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관객들이 오롯이 느끼게하기보다 일일이 하나하나 설명하는 이 영화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군도>에는 기대했던 것처럼 멋있게 잘 싸우는 하정우, 강동원도 있고 시각적 효과도 좋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메시지도 확실히 제시한다. 


단순히 오락성만 놓고 평가하자면 <군도>는 적당히 재미도 있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는 강동원의 활약상 덕분에 웬만한 단점은 보이지 않는 잘 만든 오락 영화다. 재미가 우선시되는 영화임에도 불구, 좀 더 효과적으로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피력하고자했던 윤종빈 감독의 고뇌가 한눈에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대의 꼰대를 상징하는 최익현(최민식 분)의 능구렁이 같은 몸짓과 "살아있네" 대사만으로도 성인 관객들을 키득키득 웃기면서도 씁쓸한 뒷맛까지 제공했던 <범죄와의 전쟁>을 생각하면, 지극히 평범한 오락영화로 돌아온 <군도>가 아쉽다. 그것도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뭔지 알겠는데,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은 나머지 정작 해야할 이야기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이렇게 매끄럽게 다듬지 못한 부분이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도>는 137분의 긴 러닝타임과 티켓값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강동원의 뛰어난 비주얼덕분에 제대로 눈호강하는 기분이다. 정우성의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대부분의 허술한 점이 쉽게 용서되었던 <신의 한수>처럼 말이다. 





윤종빈 감독과 유명 배우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아쉽다는 평이 지배적이나, 상업 오락 영화로서는 미덕이 많은 <군도: 민란의 시대>. 하정우와 강동원의 활약상과 요즘 충무로에서 대세로 평가받는 배우들의 앙상블만 집중해서 본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7월 23일 개봉.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너돌양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