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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08 ‘네루다’ 시가 되고 싶었던 영화.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완성하다 (2)

오스카 페룰쇼노(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는 칠레의 국민 시인이자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루이스 그네코 분)의 뒤를 쫓는 경찰이다. 오스카는 네루다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계속 네루다의 뒤를 쫓는다. 그런데 관객들의 눈에 비춰지는 오스카는 경찰이 아니라, 네루다를 너무 흠모한 나머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한 명의 열성팬을 보는 것 같다. 




지난 1월 국내 개봉한 <재키>(2016)의 감독 파블로 라라인이 <재키>에 이어 완성한 영화 <네루다>(2016)은 여러모로 특이하게 다가오는 영화이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를 다룬 전기 영화인데, 네루다를 쫓는 경찰의 관점에서 네루다를 바라보고 평가한다. 제3자의 시선에서 한 인물을 바라보는 영화가 <네루다> 한 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네루다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평가를 내리는 오스카의 자아도취성 보이스 오버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어울리지 않게 감성적 이면서도 시적이다. 


네루다를 바라보는 오스카의 시선은 복잡 미묘하다. 오스카는 네루다를 경멸한다. 오스카에 따르면 네루다는 공산당 거물이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게 굉장히 속물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아내 델리아(메르세데스 모란 분)를 사랑하지만, 틈나는대로 매음굴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수다. 심지어 경찰에 쫓기는 와중에도 여러 술집을 전전한다. 위선적인 면모가 다분한 네루다를 두고 오스카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잡아서 처단해야할 범죄자로 명명한다. 




그러면서도 오스카는 네루다의 시를 즐겨 읽는다. 엄밀히 말하면 네루다가 늘 간발의 차로 자신을 놓치는 불쌍한 경찰 오스카를 위해 남긴 책 속의 시들을 즐겨 읽는다. 어쩌면 네루다가 오스카를 위해 쓰였을 시, 소설들을 읽어가며 오스카는 네루다를 더 잡고 싶은 환상 속에 빠지게 된다. 단지, 네루다를 잡아 들여야하는 임무 수행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경외하는 대상을 자신의 발 밑으로 기어 들어가게 하고싶은 욕망. 그렇게 오스카는 네루다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8년 칠레는 혼돈의 시기 였다. 국민들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워주는 통제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위정자들은 칠레 곳곳에서 일어나는 민중 봉기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하고 있고,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반기를 든 네루다는 그를 잡고자 안달이 난 칠레 정부에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다. 대통령을 위시한 칠레의 귀족들은 도망자 네루다에게 ‘공산당 반역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네루다가 가진 명예와 인기를 끌어내기 위해 온갖 전락을 강구하지만 그럴수록 네루다를 향한 칠레 민중들의 사랑과 존경은 더욱 굳건해 진다. 




대통령으로부터 네루다를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은 오스카는 네루다를 체포하는 행위를 완성함으로써 위대한 경찰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왔던 오스카는 칠레의 전설적인 경찰을 자신의 아버지로 떠받든다. (마침 오스카와 그의 성도 페룰쇼노로 같다.) 네루다는 지극히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이고 오스카 자신은 그의 상상 속 아버지처럼 공명정대한 위인으로 스스로를 자화자찬 한다. 그러나 네루다와 네루다의 시에 감화될 수록 오스카는 자신 또한 속물적이고 칠레의 고귀한 귀족들에게 천대받는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서서히 인지하게 된다. 보통 민중들에게 한없이 가혹한 현실을 위로해주는 것은 네루다의 시이다. 네루다 또한 여느 위정자들과 다를 바 없이 속물적이고 영웅 놀이에 빠져있는 위선적인 존재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그는 칠레 민중들을 생각했고 민중들의 시선에서 여러 편의 시를 써내려 간다. 


오스카의 시선에서 바라본 네루다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은 아니다. 아집과 독선, 부르주아 근성으로 똘똘 뭉친 네루다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흠많고 실수하는 평범한 인간 중 하나다. 그럼에도 민중을 사랑했고 그 나름대로 민중들의 편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네루다는 어두운 현실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같은 존재다. 언제나 역사의 중심에 서있었던 네루다는 자신의 시와 소설을 통해 한낱 하찮은 존재로만 취급받았던 민중(오스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그 자신처럼 빛나는 존재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시적 감각을 활용한 독창적인 서사 문법으로 주목받은 영화 <네루다>가 더욱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네루다를 사랑하면서도 경멸하는 오스카의 시점으로 네루다와 민중들을 하나로 만든 파블로 라라인의 탁월한 관점에 있다. <재키>에 이어 <네루다>까지 실존 인물을 스크린으로 다시 호명하는데 있어서 자신만의 탁월한 경지에 오른 파블로 라라인은 그렇게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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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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