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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미운오리새끼 톱스타 없이도 빛났던 예비 백조들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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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영화 <친구>의 성공 이후 곽경택 감독은 줄곧 '남자'를 이야기해왔다. 그의 열한번째 영화 <미운 오리 새끼> 또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야생미넘치는 거친 남자들과는 다르게 이번에 곽경택이 선택한 남자는 한없이 섬세하고 여리고 어버러리 하기까지 하다. 거기에다가 장동건, 정우성, 이정재, 주진모, 권상우 등 당대 꽃미남들과 작업했던 전작들과 달리, 연기자 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이 경력이 전부인 생짜 신인을 메인 주연에 등극시킨다. 여러모로 곽경택 감독에게는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2006년 야심차게 준비했다가 엎어진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든 것은, 작년 곽경택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SBS <기적의 오디션>에서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참가한 배우 지망생들을 보면서부터다. 그리고 곽경택 감독은 자신의 신작 영화에 <기적의 오디션> 당시 자신의 클래스에 속했던 예비 배우들을 골고루 주요 배역에 포진시킨다. 그 중에서 관객들과 낯익은 이는, 주인공 낙만(김준구) 아버지 역을 맡았던 오달수밖에 없다. 특히나 주인공 낙만 역을 맡은 김준구는 이번 <미운 오리 새끼>가 그의 공식 첫 데뷔작이다. 곽경택 표 새로운 신데렐라 탄생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곽경택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 곽 감독은 80년대 '육방(후방 근무를 지원하기 위해 소집된 병역 인력 중 6개월만 근무하는 방위)는 아니었지만, 18개월 방위로 복무했던 경험을 자연스럽게 극 속에 풀어내었다. 


유복한 의사 아들로 자라 남부럽지 않게 살아온 곽 감독에게도 군대는 고난과 억압의 시기였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곽 감독은 부모님의 바람대로 의대에 진학했으나 중도 포기한 터라 집안의 눈치, 미래에 대한 고민도 절정에 이루던 시기였다. 


게다가 1987년은 군대라는 조직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어두었고 자유를 향한 열망이 최고조에 이루던 해였다. 파란만장했던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386 선배로서 그 이상으로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허심탄회한 고백을 통해 일종의 '용기'를 주고 싶었던 곽 감독은 실제 보통 청춘들과 다를 바 없는 신인 배우들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메시지의 진정성을 획득한다. 


극 중 낙만은 사진 기자 였던 아버지가 고문으로 인해 정신이상자가 되면서 '육방'으로 근무하는 '특혜'를 누린다. 남들은 육방인 낙만을 보고 '신의 아들'이라 부러워 하지만, 집에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육방 낙만은 오후 6시 퇴근까지 그가 근무하는 헌병대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야했다. 낙만에게 민주화 운동으로 고초를 치룬 아버지는 인생의 걸림돌이며, 그 때문에 낙만은 스스로를 '미운 오리 새끼'로 규정짓는다. 소집 해제 이후 낙만의 유일한 목표는 엄마가 계신 미국으로 건너가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벗어나는 것. 그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실적을 채우기 위해 매번 '꼴통'짓을 벌이는 중대장(조지훈)의 눈에 잘못 들어 끝내 영창 근무까지 하게된 낙만은 정말 억울하게 영창으로 끌러온 행자(문원주)를 만나고, 본의아니게 사상범으로 몰리게 되면서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다고 세상을 원망했던 자신의 지난 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달리 위에서 시키는 대로 조용히 살겠다는 그간 다짐을 뒤로하고, 세상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남들과 달라 '미운오리새끼'로 천대받았던 예비 백조가 서서히 우아한 날갯짓을 시작하는 것이다. 


육방 근무를 통해 잠재력있는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 낙만처럼, <미운 오리 새끼>의 신인 배우들은 <기적의 오디션>에서 곽경택 감독에 눈에 들기 전까지는 연기를 하고 싶어도 여러 사정상 자신의 끼를 마음껏 펼치지 못했던 오리들이었다. 





톱스타 하나 없이 제대로 영화 만들기 어렵다는 우려를 깨고, 순수 가공이 덜 된 원석들을 정성껏 다듬었던 곽경택 감독은 보란듯이 평범한 오리로만 보였던 그들을 제법 우아한 백조로 만들어낸다. 


이미 사람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백조가 아닌, 예비 백조들을 전면에 내세워 오히려 곽경택이 말하고 싶은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미운 오리 새끼>. 곽경택 감독의 바람처럼 스스로 백조인 줄도 모르고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청춘들이 이 영화를 보고 다시끔 희망을 얻을 수 있는. 투박하지만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던 <미운 오리 새끼>는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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