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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루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각성과 의지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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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4년 나. 2074년의 나를 만나다." 영화 <루퍼>의 예고편을 보았을 땐 2044년의 조셉 고든 래빗이 2074년 브루스 윌리스와 만나면서 그들 앞에 놓인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내용인 줄 알았다. 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그런 패턴을 쭉 보여왔으니까. 하지만 중반까지 결국은 두 사람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뜻을 모으겠지하는 순진하고도 얄팍한 상상력을 넘어,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려나간다. 


영화가 제시하는 2044년은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거대한 범죄조직의 손아귀에 놓여있는 캔사스에는 아무런 희망도 비전도 없다. 2074년 미래 조직에서 보내온 제거 대상 타겟을 총으로 죽이고 시체를 처리하는 조건으로 얼마 간의 은괴를 받고 생활을 이어나가는 루퍼 조(조셉 고든 래빗 분)도 무기력한 도시 청년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조를 비롯한 루퍼들은 언제 조직에서 해고될 지조차 장담하지 못한다. 미래에서 온 자신을 스스로 저격하면 그 때 루퍼들은 자신을 죽인 대가로 엄청난 은괴를 받고 30년 가량의 시한부 인생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유독 루퍼들의 계약 해지가 줄을 잇고, 결국 조 또한 미래 조직을 통해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다. 그런데 자신이 죽여야할 미래의 조가 순순히 죽음에 응하지 않는다. 미래의 조(브루스 윌리스 분)은 2044년 조에게 도망을 재촉하지만, 2044년 조는 미래에서 온 자신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있을 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끝내 물과 기름처럼 온전히 섞이지 못한다 ㅡ.,ㅡ 


2044년 조는 왜 2074년 조가 순순히 죽음에 응하지 않고 다시 2044년으로 되돌아 왔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살면서 꼭 한번 겪어야하는 일이라고 하나 생명으로 태어난 지라 누구나 죽음은 두렵다. 하지만 미래의 조는 단순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꼭 살아야하는 그리고 꼭 아내를 살려내고픈 절박함이 배어 나온다. 2044년 조직에서 해고당한 이후 방탕한 삶을 이어나가던 조는 불혹의 나이를 넘겨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난다. 하지만 예정된 잔인한 운명은 조는 물론 아내의 생명까지 앗아 간다. 결국 조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2044년으로 뛰어 든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내를 죽일 미래 조직의 거두 '레인메이커'를 찾아 죽이고자 총력을 기울인다. 





미래의 조가 애타게 찾는 레인 메이커는 2044년 당시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훗날 미래 범죄 조직을 장악할 레인메이커가 아니면 아내와 오래오래 행복해질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미래의 조는 아직 10살인 레인 메이커 후보에 총귀를 겨누는 것도 서슴치 않고 벌인다. 심지어 미래의 조는 2074년의 아내를 위해 한 때 만났던 댄서가 낳은 자신의 아들까지 죽이고자한다. 레인메이커에게 제압당한 암울한 미래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자신의 소중한 추억 보존에게만 관심있는 2074년 조는 미래의 아내를 지킨다는 명분 하에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을 자초한다. 


2074년 조가 아직 10살이고 레인메이커가 될지 확실치 않은 아이들을 죽이는 '무리수'를 감행한 것은 레인메이커를 죽인 이후에도 아내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자신을 상당히 비판적, 염세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2044년의 조는 '미래의 아내' 때문에 어린 레인메이커를 죽이려고까지하는 2074년의 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지켜야해" 하는 2074년 조의 외침에 "그럼 그 여자를 안 만나면 되지."라고 시크하게 대답하는 것이 2044년의 조이다. 제 아무리 기를 쓰고 피하려고해도,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게 사람의 마음이건만, 혹시나 레인메이커 죽이지 못하면 자신의 아내 잘못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미래의 조와는 달리, 2044년의 조는 자신의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는 미래의 조 때문에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겪게 된다. 미래의 자신을 쫓던 중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조직의 추적을 피해 외딴 농가로 들어선 젊은 조는 그곳에서 우연히 미래의 조가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 어린 레인메이커를 마주하게 된다. 


미래의 조의 설명에 따르면 레인메이커는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인공 턱에 의지하는 의문의 사나이다. 그러나 젊은 조가 바라본 어린 레인메이커 시드는 앞으로 어떻게 자랄지 예상할 수 없는 아이일 뿐이다. 그리고 어린 레인메이커와 그의 엄마의 삶에 끼어든 젊은 조 덕분에 주체할 수 없는 강한 염력을 가진 시드는 어릴 적 소망 그대로 ‘혼탁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꿈을 꾸게 된다.


오히려 시드의 선량한 꿈을 방해하는 이는 미래의 아내를 지키겠다고 어린 레인메이커를 죽이려 찾아온 미래의 조다. 자신의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 2044년의 레인메이커를 죽이기 위해 과거로 타임슬립 하였지만, 결국 그토록 막고 싶었던 레인메이커 등장과 아내의 죽음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비극의 시초를 키워낼 위기다. 


미래의 조가 목숨을 걸고 2044년으로 되돌아온 계기는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고픈 소박한 바람이었다. 그의 동기는 거창하진 않았지만 그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선하다. 그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의 불행은 아랑곳하지 않았던 미래의 조의 불순한 과정은 예정된 비극에 종지부를 찍기는 커녕, 정해진 운명의 굴레 속에 갇혀있게 한다. 


역으로 미래의 조가 머리를 더 잘 굴려서 어린 레인메이커를 죽이는 쪽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더라면 그래도 자신에게 돌아올 비극을 막을 수는 없었을 지는 몰라도, 아내를 만나기 전 조가 살았던 무기력함이 아닌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살아보지 않았을까. 





범죄자들이 장악한 도시에서 부랑자의 아들로 태어나 반강제적으로 루퍼의 삶을 살게된 조는 한번도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조 뿐만 아니라 그 도시의 모든 청년들이 마찬가지다. 도시를 수렁텅이에 빠트린 조직과 대적하기보다, 기존 체제에 순응하면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젊은이들은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는  막강한 염력이 있어도 우울한 도시를 구할 의지조차 보여지지 않는다. 이러한 희망없고 범죄자들이 드글거리는 도시 속에서 '레인메이커' 같은 슈퍼 악당이 출연하는 것은 너무나도 필연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죽음을 몇 년 앞둔 상황에서야 한 여자를 만나 비로소 '삶의 의지'를 얻게된 미래의 조는 자신과 아내가 불행해진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 그저 '레인메이커'가 될 싹만 잘라놓으면 그만인줄 안다. 미래의 조뿐만 아니라 세상의 대부분 문제해결이 다 그런 식이다. 그 뒤에 더 무시무시한 암세포가 도사리고 있는 것도 모른채, 겉으로 드러난 종기만 제거하면 만사형통인 줄 안다. 


애시당초 조에게는 악의 수렁에 빠진 세상을 구하겠다는 시대정신도 없었지만, 일개 개인이 혼탁한 세상을 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2044년 조를 포함 대다수 젊은이들처럼 마냥 모순된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2044년 범죄조직보다 악성 종양이 발생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다소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한다. 


하지만 자신은 방관자 입장일 뿐이고 그저 남이 앞장서서 자신과 세상을 위해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고, 타인의 희생만을 바라는 이기심으로는 세상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 구할 수 없다.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각성과 희생이 뒷받침된 의지인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자기 자신조차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것은 중단해서는 안된다. 설령 현재에는 사과가 열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래 후손들은 그 풍성한 과실의 결실을 보도록 도와줘야하지 않을까. 


한 줄 평: 미래를 바꾸는 것은 결국 개인의 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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