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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가족시네마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2012년 대한민국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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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현재의 20,30대를 보고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한다. 모든 젊은 세대를 '삼포세대'라고 일반화하기 곤란하지만, 가뜩이나 OECD 최저 출산국을 자랑하는 마당에 나날이 떨어져가는 출산율과 반면에 나날이 높아져가는 자살율은  희망이 사라져가는 우울한 대한민국을 암시한다. 


과연 2012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을 테마로 한 4부작 단편을 하나의 영화로 묶은 <가족시네마>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희망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염세적이고 냉철한 시각으로 현 시대의 가족을 조명한다. 


회사에서 명퇴당하고 세상에 곧 나올 둘째 출산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중년 가장의 이야기를 시작으로(<순환선>). 화재로 어린 딸을 잃고 죄책감에 사로잡혀있는 워킹맘(<별 모양의 얼룩>). 자신의 난자 기증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와 조우하게 되는 2030년 독신녀(< E.D.571 >). 출산 문제로 부당해고 위기에 처한 여직원을 둘러싸고, 여성의 임신과 육아에 이중적인 잣대를 가진 세상을 고발하는 (<인 굿 컴퍼니>) 등, 어느 하나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없다. (이중 신수원 감독의 <순환선>은 2012년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중단편 경쟁부문에서 카날플러스가 선정하는 카날플러스상을 수상했다.)





4편의 다른 이야기를 묶어 놓은 형식이지만, <가족시네마>에 담긴 이야기들은 돌림 노래처럼 각각 겹치고, 서로 이어지는 부분이 많다. 한 예로 <인 굿 컴퍼니>에서 출산을 이유로 회사에 권고사직 당하는 여자와 직장에서 해고당한 <순환선> 남자의 비애는 실직이 일반화된 이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비극이다. 


<별 모양의 얼룩>에서 유치원 캠핑장 화재로 죽은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워킹맘의 눈물은, <인 굿 컴퍼니>에서 회사 일 때문에 밤늦게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발만 동동 굴리는 엄마들로 초점이 옮겨간다. 또한 <순환선>에서 실직 당한 가장의 꿈속에서 무능한 부모는 자식을 낳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딸의 투쟁은, < E.D.571 >에서 양쪽 부모 모두에게 버림받고 눈물을 흘리는 여자아이와 오버랩된다. 



1997년 IMF와 함께 한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어놓았던 실직, 임신, 출산, 육아의 어두운 그림자는 나에게도 곧 닥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숨겨진 아킬레스건이다. 과거 성인 남녀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도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다. 지금 또한 출산은 우리 사회 체제를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지만, 문제는  경제적 이유로 맞벌이 하는 여성이 늘어난 마당에, 여성이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온전히 잘 키우는 다는 것부터가 막막하다는 것이다. 


현재 출산, 육아 휴가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있다고 하나, 마음 편안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워킹맘들이 얼마나 될까. 출산 이후 복직도 막막할뿐더러, 운 좋게 계속 회사에 다닐 수 있다고 해도 아이를 맡겨둘 곳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취업난을 뚫고 직장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수많은 직장인들은 얼마 다니지도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퇴직 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여타 직장에 비해 정년이 보장되어있는 공무원 시험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아예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젊은이들을 일컬어 '삼포세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2012년 천만원 등록금에 허덕이는 동안, 출산과 양육은 인생의 걸림돌이라는 세계관을 확립한 < E.D.571 >의 2030년 39살 민아가 낯설지 않은 이유다.



어려운 형편에 늦둥이 출산을 뒤로 미루고 싶고, 어른들의 부주의로 어린 아이들이 화염에 휩싸이고, 대학시절부터 엄청난 등록금에 시달린지라 아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2012년 여대생의 10년 뒤 모습. 그리고 마지막 원만한 직장 생활을 위해서 정관 수술을 권하는 4편의 영화는,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가족의 근간조차 흔들리는 2012년 현재의 대한민국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지금도 수많은 가장들이 명퇴 압박에 시달리고 수많은 직장 여성들이 아이들을 마음 놓고 맡길 데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현실을 돌아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 모두의 상처고 아픔이다. 다소 냉소적인 시선으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겪는 비애를 덤덤하게 관조하는 영화는, 마치 나의 이야기고 나에게 닥칠 가까운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아 등을 오싹하게 한다. 


곧 있으면 나에게도 그대로 닥칠 비극인줄 모른 채, 눈앞에 있는 작은 현실과 타협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 <인 굿 컴퍼니> 속 잔인한 먹이사슬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악순환이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족이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조차 희미해질 지도 모른다. 


계속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울분만 토하다가 계속 당하고 살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나서서 모두를 골병들게 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닥칠 미래가 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관객들에게 냉정하게 우리가 사는 세상 그대로 보여주며, 정확한 현실을 인식하게 만드는 이 영화가 지독하게 불편하면서도 상당히 고맙다. 피하고 싶다고 마냥 피할 수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말이다.  


한 줄 평: 2012년 대한민국 현실을 리얼하게 꼬집은 불편한 수작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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