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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내가 고백을 하면, 쉽게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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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주관적인 뻘소리로 가득 합니다*


<내가 고백을 하면>은 제작자 출신 감독 조성규의 자전적 경험이 제대로 반영된 영화다. 실제 <영화는 영화다>, <멋진 하루>등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조성규 감독은 2010년 생애 첫 장편 <맛있는 인생>을 내놓았고 그의 첫 영화에 대한 평은 <내가 고백을 하면>의 첫 시퀀스에서 나왔던 것처럼 그렇게 까진 나쁘진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다. 어떤 이는 조성규 감독을 두고 연출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혹평까지 하였으니...별반개가 그냥 나온 농담이 아닌 것 같다. )


하지만 조 감독이 직접 투자에 참여하기도 했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강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어떤 이는 조성규 감독을 두고 ‘홍상수 키드’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번 영화 역시 유부남이면서도 여전히 유정(예지원 분)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김 박사(그것도 감독 본인이 직접 연기함)을 볼 때, 여전히 홍상수 감독을 향한 존경과 애정을 놓지 못하는 조성규의 정체성이 간간히 드러난다. 


어찌되었던 <내가 고백을 하면>은 조성규 감독 스스로에 대한 냉철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자기 반영이 깃든다. 박해일의 목소리를 빌린 전작 <맛있는 인생>을 고작 별반개로 표현해놓으면서도 일상의 소소함 속의 숨은 소중함을 덤덤하게 그러면서도 편하게 다루는 예사롭지 않은 솜씨. 드디어 조성규 감독만의 본연의 색이 묻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극 중 조성규가 아니라 조인성이 되고 싶었던 감독(김태우 분)은 강릉을 흠모하는 서울 남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제작자 겸 감독 조인성은 강릉이 너무 좋아, 강릉을 향한 헌정 영화 <맛있는 인생>을 만들었고, 이제는 아예 주말이 되면 강릉에서 살고자 결심한다. 





반면 조인성과 달리 강릉에서 태어나 한 번도 강릉을 벗어난 적이 없어 서울을 동경하는 간호사 김유정은 서울에만 있는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매주 주말마다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각각 자신의 집이 없는 낯선 타지에서 잠자리가 불편했던 인성과 유정은 두 사람을 서로 잘 아는 카페 주인(서범석 분)으로부터 서로의 집을 바꿔보겠다는 제안을 듣는다. 


그간 호텔과 펜션 생활이 지겨웠던 인성은 카페 주인의 제안에 솔깃하지만, 유정은 아무 사람에게나 집을 비워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는 거처 이전에 사는 사람의 취향과 정서가 골고루 배어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공간이다. 유정에게 있어서 인성은 카페 주인 걸러서 만난 ‘아는 사람’일 뿐이고 유부남 의사에게 크게 대인 이후 남자를 만나는 것이 상당히 조심스럽다. 아니, 그녀는 매주 주말마다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남자에게 몸을 기대면서 외로움을 덜어낼 겨를이 없어 보인다. 


반면 서울에서 문화생활을 지겹도록 즐겨봐, 더 이상 즐길 거리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인성은, 유정은 지겨워하는 강릉의 한적한 정취에 흠뻑 빠진다. 그가 강릉을 사랑하는 것은 번잡한 서울을 피해 자유로워지고픈 도시 남자의 일탈이다. 여자는 없어도 되는데, 맛있는 음식이 없으면 안 된다는 이 남자도 영 연애 세포와 거리가 멀어보인다. 이 남자가 제작하는 영화 모두 상업적으로 실패를 거두는 것은 솔직함과 유치함이 미덕인 연애에서 유독 소극적이고 서투름을 보이는 인성의 성향에 기인한 바가 크다. 





애초 수많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상업 영화가 아니라, 영화 속 배경이자 실제 조 감독이 운영하는 광화문의 ‘스폰지 하우스’, CGV에서 운영하는 몇 안 되는 다양성 영화 상영 전용관 무비꼴라쥬 등을 찾는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영화인지라, 이 영화에서는 그런 영화를 보기 위해 강릉에서 서울까지 찾아오는 이들의 취향과 감성을 고려한 설정들이 참 많다. 


얼마 전 <바비>를 보기 위해 찾아간 ‘스폰지 하우스’의 깨알 같은 상영시간 10분 후 입장 금지도 반갑지만,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를 통해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한 두 남녀의 설정은 매일 유재하의 노래를 끼고 사는, 행여나 나를 위한 영화 같다. 





극 중 유정이 사랑을 찾기 망설이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남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 <내가 고백을 하면>처럼 상영하는 곳이 많지 않은 그런 영화를 보기 위해 만사 제쳐두고 일부로 시간 맞춰 광화문의 ‘스폰지 하우스’, '인디스페이스' 혹은 홍대 KT&G 상상마당을 찾아가고, 바쁜 시간을 틈타 백석의 시집을 읽고 누군가가 유재하의 노래를 부르면 그 특유의 서정적인 가사에 취해 함께 눈물을 흘리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이성과 마음이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때문에 애초부터 사랑이나 연애에 비관적인 이 두 남녀의 사랑은 가슴 절절하지도, 절박하지 않다. 심지어 이 두 남녀는 겉으로만 보면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설렘이나, 애틋한 감정 징후도 보여 지지 않는다. 닭살 돋는 애교 멘트는커녕, 멜로 영화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대사에 불과한 사랑 한다, 보고 싶다는 단어조차도 없다. 


하지만 각각 서울, 강릉에 떨어져있어도 다수의 사람들은 제목도 모르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동시에 보고 있을 정도로 남다른 공통점을 가진 두 남녀의 거듭된 우연과 인연은 사소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특별함으로 기억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나를 위한 영화다. 11월 15일 개봉.


한 줄 평: 아메리카노 마시는 사람도 카푸치노 생각나게 하는 달달함. 백석의 나타샤와 유재하의 별헤는 밤의 참 맛을 아는 이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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