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남영동 1985. 그 시대 아픔을 잘 모르는 세대에게

반응형






1985년생이다. 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 대학교를 다닌 젊은 세대에게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지낸 재야 출신 정치인으로 친숙하다. 고 김 고문이 과거 민주화 운동 시절, 엄청난 고문을 받은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2011년 12월 30일 세상을 뜨신 후에야 그분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왔는지 알게 되었다. 


<남영동 1985>는 서슬 퍼런 그 시대를 주제로 한 영화다. 고 김 고문이 남긴 <남영동> 수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정지영 감독 전작 <부러진 화살>이 그랬듯이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고 김 고문은 김종태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이두한으로 등장한다. 


1980년대 중반 당시 민청학련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잠시 보직을 내려놓은 김중태(박원상 분)은 영문도 모른 채 어디론가 끌러간다. 의식을 차리고 눈을 뜬 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남영동. 한 번 들어가면 온전히 살아서 돌아가기 힘들다는 그 곳이다. 





남영동 사람들은 김종태에게 “폭력혁명을 계획하는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모진 고문을 가한다. 하지만 김종태는 북한에 가본 적도 없고, 폭력혁명을 꿈꾸어 본 적도 없다. 


웬만한 고문에 꿈쩍도 안하는 김종태의 입을 열기 위해 장의사라고 불리는 이두한(이경영 분)까지 초빙한 서장(문성근 분). 무지막지하게 괴롭히는 박 전무(명계남 분)과 달리, 대한민국 최고의 고문 기술자로 악명높은 이두한의 기술은 섬세하고 지능적이다. (오죽하면 형무소에서 출두하여 목사로 변신한 이근안이 자기 고문은 ‘예술’이라 칭했다고 목사직까지 박탈당하셨을까..)


극 중에서 이경영을 포함, 명계남, 김의성, 이천희 등 극중 김종태를 고문하는 역할을 하였던 이들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되었다. 아니 그들도 남영동을 벗어나면 하루하루 삶에 충실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아들과 야구장을 찾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김과장, 행여나 운동권 여동생이 남영동으로 올까 전전긍긍하는 백계장, 좋아하는 여자의 어장관리에 상처를 입은 이계장.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남영동 내에서 저지르는 수많은 고문들은 그래서 더욱 소름끼치고 슬프게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이두한이 된 이경영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이경영의 옷을 입은 이두한은 겉으로 보면 한없이 젠틀 하지만 계획적으로 민주화 운동가를 고문하는 그의 본성은 천부적이다. 자신의 뜻대로 수사에 협조해주지 않으면 피해자들을 단숨에 개로도 만드는 이두한은 자신이 저지르는 악행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남영동에서 벌이는 모든 고문이 그저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받아들일 뿐이다. 


한 시간 30분 남짓 동안, 별의 별 고문이 나오는 <남영동1985>는 촬영하는 배우도, 스태프들도 힘든 작품 이였겠지만, 보는 이들도 힘든 영화다. 화면으로 걸려 다가오는 고통도 이 정도인데, 연기하는 배우들. 그리고 실제 남영동에서 고문을 당하던 피해자들의 아픔은 오죽할까. 1985년 9월. 남영동에 있었던 끔찍했던 22일 동안 모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한 탓에 고 김근태 상임고문은 그 후유증으로 파킨스 병까지 얻어 끝내 세상을 떠났다. 





혹자는 “요즘 젊은이들 당해보지도 않으면서, 싫어한다.”는 말을 참 쉽게 한다. 하지만 당해보지 않아도 아는 고통이 있다. <남영동1985>는 그 시대 아픔을 모르는 세대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가슴 아픈 영화다. 1980년대 초중반 아픈 역사의 대물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 시대에 태어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소중한 투표권의 행사다. 


<남영동 1985> 정지영 감독은 크레딧 엔딩을 통해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했는데 관객들은 김종태 박원상을 포함, 연기를 위해 용기를 내어준 이경영, 명계남, 김의성, 서동수, 이천희, 김중기, 특별 출연 문성근. 그리고 정지영 감독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다. 


정치적으로 다소 민감한 소재이긴 하지만, 영화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만 놓고 보아도 저예산 영화가 구가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을 보인 수작이다. 11월 22일 이후 절찬 상영 중. 


한 줄 평: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도 아프기에 똑똑히 기억해야하는 역사(영화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뻘소리 덧: 아직도 사람들은 참 살만한가보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하시면 손가락을 꾸욱 눌러주세요^^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