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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학교2013. 순화되어도 살벌한 승리고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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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 어딘가에 위치한 승리고등학교는 인문계임에도 불구, 서울 시내 178 고교 중에서도 성적이 제일 떨어지는 학교로 소문났다. 송하경(박세영 분) 등 특목고,자사고(요즘 명문대 진학은 대부분 이런 학교에서 주로 나온다) 입시에 떨어져 울며겨자먹기로 승리고에 진학한 몇 명 아이들을 제외하곤 공부에 별반 관심없고, 심지어 학생이라 믿기 어려운 수준의 사고치는 아이들도 상당수다. 그 중에서도 2학년 2반은 승리고등학교의 최고 골칫덩어리다. 참다 못한 이사장은 장학사 출신에 전에 교장으로 있던 학교를 단숨에 서울 일반고교 중 1위로 만들어낸 유능한 임정수(박혜미 분)을 교장으로 초빙한다. 


승리고를 강북의 최고 명문고로 만들기 위해 강남 대치동에서도 톱강사로 소문난 강세찬(최다니엘 분)을 교사로 임명하고, 오랜 세월 승리고의 골칫덩어리였던 학교 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칼을 뽑았다. 그래서 전에 학교에서 하던 그대로 담배피다가 교육청을 통해 신고 들어온 학교 일진 오정호(곽정욱 분)를 단박에 퇴학조치 내리려고 했는데 요즘 보기 드물게 열의있고 이상적이기까지 한 2반 새 담임 정인재(장나라 분)이 자신이 알아서 올바르게 단속 잘 하겠단다. 


정인재는 기간제 교사다. 그런데 그녀가 정규직이 아님에도 불구, 담임을 맡게된 것은 지난 학기까지 2반 담임이었던 선생이 병가를 냈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체벌로서 아이들을 다루어온 그 선생은 이제 체벌이 금지되자 더 이상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할 지 방도를 모르겠단다. 하기사, 요즘은 아이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교사가 아이들에게 맞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대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임에도 불구, 인재가 2반 담임이 되었다. 


하지만 애초 공부에 관심없고, 게다가 선생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앉아있는 아이들은 도통 인재 말을 듣지 않는다. 요즘 웬만한 선생같으면 누가 수업 중에 휴대폰을 보던, 잠을 자던 애써 모르는 척 하고, 수업만 하고 문 밖을 나갈 것인데, 첫 담임에 의욕이 앞선 인재는 끝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정호와 대치한다. 하다하다 안되니 정호와 육탄전까지 벌이게 되고, 끝내 인재는 난생처음으로 학생의 빰을 때리게 된다. 일진 정호에게 위협받았음에도 불구, 그럼에도 정호를 사랑으로 돌보겠다는 인재. 참으로 요즘 보기 드문 박애주의자 교사다. 





지난 3일 KBS에서 첫 방영한 <학교 2013>는 과거 인기를 끌었던 <학교> 시리즈물의 연장선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 현실은 과거 <학교> 시리즈가 방영했을 때보다 더 악화되었다. 학교 폭력과 교내 왕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체벌금지로 인해 몽둥이를 들지 못하는 교사들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항간에는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의 무림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은 때려야 말을 듣고, 퇴학도 시켜야하는데 요즘의 학교는 '가해자의 인권'만 강조하니 더욱 학교폭력이 심화되는 것이 아니겠나고. 


어떤 면에서는 학교의 문제아를 본보기로 퇴학시켰다는 임정수의 교육방침이 합리적이기도 하다. 임정수 같은 교사들은 대학같은 대학 갈 몇 명 외에는 하등 관심이 없다. 실제 승리고의 학생 지도방침도, 공부하는 애들 방해하지 않기 도와주는 것이다. 어쩌다 교육청을 통해 불량 학생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한, 대다수 선생들은 일진이 약간 장애가 있는 특수학생을 괴롭히던 말던 모르쇠로 일관한다. 승리고의 목표는 교내에 만연한 학교 폭력 문제를 쉬쉬 엎으면서 명문대 진학률을 크게 끌어올리는 것. 그래야 승리고의 명성을 높일 수 있고, 또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는 것이 입시지상주의 우리 나라 교육의 최대 지향점이니까 말이다. 


요근래 학교 내에서 왕따를 당한 몇몇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로 그동안 풍문으로 듣던 학교 폭력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올랐을 때, 이미 교문을 벗어난 지 오래인 수많은 어른들은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학교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10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글쓴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다. 물론 그 때도 암암리에 같은 학생을 괴롭히는 일진이 있었고, 왕따도 있었고, 흡연하는 학생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인문계라서 그런지 대놓고 교내에서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는 없었다. (모르지 남학생들 사이에는 있었을련지도) 더군다나 제 아무리 일진이라도 학생이 선생에게 대드는 경우, 그리고 선생이 학생에게 맞고 있는데 말리기보다 휴대폰 동영상으로 찍기 바쁜 학생들도 거의 없었다. 아니 생각조차 못했다. 그 당시에는 체벌이 허용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만, 굳이 선생에게 맞지 않아도 나보다 어른인 교사에게 대든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10년 전 만해도 사회가 이렇게 살벌하진 않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성적지상주의다. 이놈의 학교는 수십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부잘하는 학생만 좋아한다. 그래도 예전에는 교사들이 공부못하고 말잘 안듣는 학생들에게 많은 신경을 써줬다고 하는데, 지금 학교의 관심은 몇 명 명문대에 보내는 것뿐이다. 원래 학교라는 곳이 가정과 더불어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에 주력해야하는데, 요즘의 학교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일뿐, 민주시민으로서 응당 갖춰야할 예의도, 도덕, 윤리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국어, 영어, 수학 등 대학수학능력시험 주력 과목만 집중할 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입시교육에 특화된 학원이 더 낫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건 우리 때도 그랬으니. 학교에서는 잠을 자고, 학원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들. 게다가 대치동 학원 강사들의 스펙이 일반 학교 교사들보다 높은 편이다. 요즘은 워낙 임용고시자체가 되기 힘들어서, 신입 교사들의 스펙도 짱짱하지만 입시 교육에만 집중하는 학원 강사를 따라가기에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이 나라 교육은 아이들과 가정이 엄청난 사교육비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니, 학교가 그 일을 대신 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그래서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우리의 학교는 점점 입시사관훈련소로 화려한 변모를 꿈꾸는 중이다. 






이제 대놓고 '공부 잘하는 학생만 최고' 라는 학교에서 그렇지 못한 학생들, 특히나 부모가 제대로 돌볼 여력이 없는 학생들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타락의 길에 빠진다. 또 몇몇 부모들은 행여나 자신들의 자식이 학교 폭력 문제에 연루되면, 학교와 피해 학생에게 사죄를 하기보다, 그저 귀한 우리 아이 감싸기만 급급하다. 그리고 약해서 자신의 자식에게 맞은 피해 학생의 부족함만 탓한다. 오직 학생 개개인의 성적에만 관심있고 학교 폭력에는 쉬쉬하기 급급한 학교와 오히려 가해자들이 기세 등등한 현실에 맞물려 학교 폭력 피해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학교 현장을 비춰볼 때, 일진 학생이 대놓고 선생을 물리적으로 압박하고, 장애가 있는 학생에게 '삥'을 뜯는 살벌한 모습을 과감히 보여주는 <학교 2013>은 과장되지도 왜곡되지 않는 정확한 우리 학교의 현주소다. 아니, 오히려 많은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이보다니, 실제 상황보다 더 순화된 감도 없지 않다. 적어도 <학교2013> 속 일진들은 정인재의 말처럼 아예 몹쓸 망나니들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그 아이들은 하다못해 학생부장 엄대웅(엄효섭 분)의 말을 곧잘 잘 듣는 편이니까. 그리고 정재인처럼 아무리 학생이 자신에게 먼저 폭력을 휘둘려도 '사랑으로 다스리겠다'는 세상에도 없는 착한 선생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긴 첫 선생 발령 받으면 다들 사랑으로 아이들을 다독이겠다고 결심하다가 한해 한해 쌓이면 체념 혹은 돌변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하지만 말이다. 


현재 가상의 승리고 2학년 2반은 그 어떤 선생이 담임을 맡는다고해도 도저히 통제 불가능이다. 이건 열의만 넘치는 선생 하나 담임을 맡긴가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또 비단 승리고 2학년 2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학교 전체의 문제다. 과연 우리 학교를 어찌하면 좋을련지요. 하지만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보수 교육감 시대가 도래하여, 학생 인권조례가 폐기되고, 선생들에게 처벌이 허용되고 강제 자율학습과 학생 기록부로 학생을 압박한다 하자. 그런다고 날이 갈 수록 교사에게 대드는 강도가 높아지는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이미 대학은 물론 미래 자체를 포기한지 오래라, 고작 몽둥이와 퇴학이 무서워 온순하게 말 잘듣는 양으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 응당 갖춰야할 기본적인 인성과 예의를 가르치기보다 오직 학생들의 성적과 입시 결과에만 관심있는 우리나라 교육의 패러다임 전체가 바뀌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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