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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야왕. 수애도 살리지 못하는 정형화된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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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많지만 스타성있는 권상우와 연기력 검증된 수애. <49일>로 감각적인 연출을 인정받은 조영광 감독과 <옥탑방 왕세자>로 녹슬지 않은 필력을 보여준 이희명 작가. 그리고 <야왕전>이라는 유명한 원작. 드라마 스케일을 보나, 주인공들이 청와대 내에서 총격씬을 벌이는 예고편을 보나 <야왕>은 곧 방영 예정인 <그 겨울,바람이 분다>와 함께 SBS에서 기대하는 라인업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 2회가 방영되었을 뿐이지만, <야왕>이 여타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요소는 오직 첫 회, 몇 분 보여주던 청와대 내 총격씬이 전부다. 하필이면 <야왕> 초기 내용이, 그것도 불과 얼마 전에 인기리에 종영한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와 비슷하다는 게 드라마로서는 천추의 한으로 다가오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야왕>은 <착한남자>를 뛰어넘는 개연성도 21세기 시청자들에게 기발하게 다가오는 전개도 없다. <야왕>이 <착한남자>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착한남자>의 악녀 박시연보다 못되먹은 주다해까지 이해시키는 수애의 뛰어난 내면 연기뿐이다. 





<야왕> 2회까지 본 시청자들의 소감은 대략 이렇다. <착한남자> 2탄이나, 남자판 <청춘의 덫>이나 혹은 한국판 <백야행>이나. 애인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호스트바에서 몸바쳐 일한 남자의 이야기는 <야왕>의 원작 <야왕전>이 먼저이기 때문에, <야왕전>의 정식 판권을 사고 드라마를 방영하는 <야왕>으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가 상대방에게 버림받고 복수를 꿈꾸는 내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번 인간의 얄팍한 상상력을 통해 변주되어 전해지는 이야깃거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어느정도 재미만 갖춘다면, 이 식상하고도 뻔한 복수극에 관심을 보여준다. 사랑과 배신, 음모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이, 여전히 드라마, 소설, 만화 속 치정에 의한 복수에 흥미를 보이는 대중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것이다. 


<야왕> 또한 사랑하는 이는 물론이고, 자신마저 파국으로 몰고 가는 개인의 욕망을 그려내는데 충실히 하고자 한다. 그 노력의 결실이 만든 캐릭터가 주다해다. 어릴 적부터 순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주다해는 모욕과 멸시를 견디어내며 성공에 대한 강한 집념을 불태우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하류(권상우 분)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출세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런데 하류에게 만족할 수 없었던 다해는, 자신에게 먼저 구두를 내미는 백학 그룹 왕자 백도훈(정윤호 분)이 나타나자마자 미련없이 하류와 하류 사이에서 낳은 어린 딸을 매몰차게 버린다. 





그런데 끝없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에게 한없이 소중한 사람까지 코너에 몰리게하는 주다해의 배신은 <착한남자>의 설정과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착한남자>의 강마루(송중기 분)은 사랑하는 누나의 살인죄까지 대신 뒤집어 감옥까지 다녀왔지만, <야왕>의 하류는 다해가 죽인 양부의 시체를 함께 암매장하면서 사건을 함께 묻히고자 한다. 그리고 <착한남자>에서 강마루와 한재희(박시연 분) 사이에는 아이는 없었지만, <야왕>의 하류와 주다해는 혼인신고와 별개로 딸까지 둔 사실혼 관계다. 그것도 주다해가 대학에 다닐 당시 딸을 출산한 설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 상 주다해가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철저히 공부만 한건지, 아님 특유의 영악함과 주도면밀함으로 용케 결혼, 임신을 숨긴건지 어느 누구도 주다해에게 그렇고 그런 남자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다해와 도훈이 처음 만났을 때, 그 어떤 여자도 거들떠보지 않은 백마탄 왕자 도훈이 그 비좁은 인파 속에서 첫눈에 다해에 반한 다는 설정은 식상하다 못해, 또 하나의 우연의 남발일 뿐이다. 


그 이후에도 <야왕>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과 '복선'에 유독 공을 많이 들이는 뉘앙스를 보인다. 가령 하류와 똑같이 생긴 자가 우연히 나타난다는 설정, 여자 인턴사원들과의 회식으로 호스트바를 찾은 다해가 그곳에서 일하는 하류를 보고 '기겁'을 하는 장면은 애써 다음 전개의 당위성을 부과하기 급급한 '복선' 깔기에 치중할 뿐이다. 


상당히 심각한 내용이지만, 워낙 기존 드라마를 통해 수도없이 답습되었던 내용의 재탕에 충실한 <야왕>인지라 두 주인공의 운명이 안타깝기보다 '왜 하류는 <착한남자> 강마루보다 바보같이 다해에게 헌신할까?'라는 물음표만 남긴다. 나름 악역으로 변할 수 밖에 없는 다해의 캐릭터를 이해시키고자 나름 공을 들이기도 했지만, 하류와 딸까지 낳고 잘 살던 다해에게는 하류와 딸을 배신할수밖에 없는 검은 욕망의 치열함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해의 배신에 진한 설득력을 안겨줘야할 백도훈의 정체가 하류와 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돌진할 정도로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도 아니다. 그저 돈많은 재벌 3세 후계자만으로 다해가 하류는 물론 딸마저 매몰차게 배신할 당위성을 부과하는 것이다. 





물론 21세기 현실에서도 재벌3세이기 때문에 부모, 자식, 도덕성까지 버릴 정도로 다 용서될 수도 있겠다만, 드라마는 돈때문에 접근하는 여주인공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움직여야하는 숙명까지 짊어지고 가야한다. 그런데  "아 걸어다니는 로또다."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영혼까지 팔아 넘길 정도로 완벽의 결정체를 이뤄야하는 왕자님 도훈 캐릭터 자체가 덤덤하게 다가온다. 





이건 비단, 도훈을 연기하는 배우 정윤호의 문제가 아니다. 백도훈도 그렇지만, 주인공 하류, 다해, 그리고 백도훈 가족들까지, 모두 어느 드라마에서 여러번 보았던 캐릭터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극 중 백도훈의 누나로 등장하는 백도경(김성령 분)이 실은 누나가 아니라 도훈의 엄마를 암시하는 부분은 <파리의 연인>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단 2회만 방영했을 뿐인데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만 돋는 <야왕>의 그렇고 그런 '뻔'한 스토리와 정형화된 캐릭터들의 진부한 향연. 이 정도면 <야왕>에 붙은 19금딱지와 배우들의 열연이 무색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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