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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보고싶다. 박유천, 유승호 열연만 남은 용두사미의 나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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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생긴 일>처럼 새드 엔딩으로 갈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MBC <보고싶다>의 마지막회 엔딩은 글쓴이의 바람대로 한정우(박유천 분)과 이수연(윤은혜 분)이 이어지는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해피엔딩이였건만, 참으로 이상하게도 전혀 흡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어릴 적 상처를 이유로 무려 여섯 명을 연달아 죽인 강형준(유승호 분)에게도 죽음 대신, 기억상실증 무기징역이라는 나름 통 큰 배려(?)를 하사하였지만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도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들이 당황스러울 뿐이다. 





애초 <보고싶다>의 기본 뼈대는 어릴 적 어른들의 탐욕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은 주인공들이 재회를 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이었다. 첫 회부터 자극적인 설정으로 가득하던 MBC <보고싶다>가 그럼에도 불구, 다수의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힐링'이 있었다. 어릴 적 탐욕스러운 어른들의 욕심으로 크나큰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서서히 자신들을 둘러싼 비극의 악순환을 뚫고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하길 바라는 희망. 여타 드라마라면 애시당초 기대도 안했던 과정이지만, 그동안 훈훈한 사람 냄새 가득한 작품으로 시청자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던 문희정 작가였기에, 그리고 그간 <보고싶다>가 보여주던 여정들은 충분히 주인공들은 물론, 시청자들끼리 '힐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설령 주인공 중 한 명 이상이 죽는 새드 엔딩으로 간다해도 말이다. 


 

그러나 시청률 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진 못하였지만,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적절한 추리 요소와 반전,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몰입도 하나는 최강이었던 <보고싶다>였건만. 정작 가장 중요한 마무리로 갈 수록 해이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알고보니 원래 20회에 끝나야하는 <보고싶다>는 얼마 전 완성도를 이유로 1회 연장을 결정한 바 있다. 


최근까지 연장은 없다고 입장을 고수해오던 <보고싶다>가 1회 연장을 선택한 것은 시청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보여드리겠다는 <보고싶다>의 의지였다. 하지만 하루 더 생명을 연장한 <보고싶다>의 20회는 역대 최악의 느슨함을 자랑했다. 주인공이 성인이 된 이후, 끊임없이 과거를 찾아 헤매는 지지부진한 내용에도 불구 지금까지 비교적 늘어지는 것 없이 타이트한 전개를 유지해온 <보고싶다>라서 그런지, 막판 연장을 결정한 <보고싶다>의  마무리는 종영을 채 앞두고 질질 끄는 분위기가 농후했다. 





하지만 <보고싶다>의 본질적인 문제는 연장으로 인한 막판 느슨한 전개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보고싶다>는 한정우와 이수연, 강형준의 상처를 치유하기보다 14년 전 한정우 아버지 한태준(한진희 분)이 저지른 악행의 주변만 빙빙 맴돌며, 한태준을 향한 '사적 복수' 정당화에만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 부모 대에 벌어진 악연의 악순환을 끊고 어릴적 여자로서 큰 상처를 받은 이수연의 아픔을 보듬아주는데 힘써야할 한정우는 강형준이 연쇄 살인을 벌인 배경과, 아버지 뒷조사나 하는 탐정으로만 전락한지 오래다. 그 과정에서 메인이 되어야할 한정우와 이수연의 관계 진전은 소홀히 다뤄졌고, 설득력없이 '그저 14년 전 첫사랑이니까.' 식으로 정당화시키려던 한정우와 이수연의 운명은, 결국 이수연을 첫사랑 나타났다고 14년 동안 자신을 위해 헌신한 강형준 버린 희대의 어장관리녀로 전락시켜 버린다. 





그렇다고 각각 한정우, 이수연, 강형준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점점 막판으로 갈 수록 무너지는 대본에 비해, 박유천, 윤은혜, 유승호가 보여준 연기는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았다. 윤은혜의 잘못이라면 대본에 나와있는 이수연의 역할에 충실히 한 것 밖에 없다. 


애초 대본에 나와있는 이수연 자체가 서서히 한정우의 따뜻한 배려심에 마음이 끌렸다는 충실한 개연성있는 설명 없이, 극 중반 이상까지 한정우와 강형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가뜩이나 애정결핍 심한 강형준의 의처증(?)과 충격적 진실에 미련없이 한정우를 택하는 설정이다. 그런데 초반 이수연과 강형준의 러블리한 애정행각을 바로 뒤엎을 정도로 워낙 한정우와 이수연 사이의 러브라인 진척에 큰 공을 들인게 없다보니 정작 메인이 되어야할 한정우와 이수연의 사랑은 속된 말로 강형준의 복수에 밀린 '곁다리'로 전락한지 오래다. 


평소 드라마를 그리 즐겨보지 않는 글쓴이가 유독 <보고싶다>만큼은 빼놓지 않고 시청한 이유는 기존 멜로 통속극과 달리, 추리 과정을 통해 극악 범죄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치유하는 과정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마무리로 갈 수록 <보고싶다>는 주인공의 '힐링' 대신 이수연의 사랑을 얻는데 실패한 강형준의 치정 복수의 형태를 띄게 된다. 시청자들은 1회부터 알고 있었는데, 한정우만 몰랐던 한태준-강형준 이복 형제 관계를 20회에 가서야 깜짝 반전인양 귀띔해주는 것도 김 새게 다가올 뿐이다. 


첫회부터 남달리 벌어놓은 설정은 많은데, 정작 20회 가량 그 많은 사건들을 제대로 차곡차곡 담아놓지 못한 <보고싶다>는 21회에 들어서 황급히 모든 것을 제자리로 수습해야겠다는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한정우와 이수연, 강형준의 치유는 물건너간지 오래요, 오직 강형준의 핏빛 치정극만 남아버린 <보고싶다>이기에, 극 의도상 당연히 귀결되어야하는 한정우-이수연 해피엔딩도 찜찜한 기분만 들게 한다. 





유승호의 소름끼치는 싸이코패스 열연과, 메인 주인공으로서 맡은 바 드라마를 차분히 이끌어가던 박유천 호연만 기억에 남았던 <보고싶다>. 충분히 한국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을 명품 드라마로 기억에 남을 수 있음에도 불구, 그저 미래가 기대되는 박유천, 유승호의 앞날을 위한 교두보로 간신히 살아남은 <보고싶다>의 허겁지겁 멘붕 마무리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용두사미의 나쁜 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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