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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내 딸 서영이. 아버지 부인한 딸 이해하게하는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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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 자식 등록금까지 빼서 도박하다가 애들 애미 수술 못하고 죽게 한 사람이오."


지금에서야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딸 서영이만 생각하는 아버지로 보여지는 삼재(천호진 분)이라고 하나, 사실 그는 수도 없는 사업 실패와 노름으로 가족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간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그렇다고 서영(이보영 분)이 강우재(이상윤 분) 정도의 넉넉한 가정 환경을 원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한 달에 50만원이라도 벌어주는 부모, 아니 최소한 자신이 고등학교 자퇴하면서 힘들게 알바해서 모은 돈 손대지 않는 아버지면 족했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아버지는 엄마라도 살려달라는 딸의 간곡한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삼재의 노름빚은 나날이 늘어갔고, 결국 서영이는 자신이 휴학을 밥먹듯이 하면서 간신히 모았던 등록금 420만원을 아버지에게 내놓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제발 아버지 이제 정신 좀 차리고...나 좀 힘들게 하지 말라고..


보통 아이같으면 삼재의 표현대로 벌써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만약에 서영이가 그 때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삼재를 떠나지 않았다면 벌써 등골 다 빨리고 산송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를 버릴 수 있나고, 천륜을 어긴 서영이의 행동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뒤늦게 서영이 아버지 존재를 알게된 우재 부모님은 자신들을 속이고 아버지를 부정한 서영이가 너무나도 괘씸한 나머지, 당장 이혼하지 않으면 사기결혼으로 정신적 위자료까지 청구할 기세다.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듯이, 자식 또한 부모를 버릴 수 없다. 아무리 우재와 우재 부모님이 삼재를 숨길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한다고해도, 부모와 절연을 선언한 서영이의 원죄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불효다. 게다가 부모에 대한 효와 어른들에 대한 공경을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왔던 기성세대에게 제 아무리 자식 등골 빼먹는 아비라해도 그 아비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서영이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향후 미래를 자신들의 기준에서 정하고자하는 부모 세대와 그런 기성세대의 선택에 속수무책 따를 수 밖에 없는 자식 세대의 갈등은 이제 수많은 드라마의 단골 레퍼토리다. 기성세대의 잘못된 행동에 의해 자식세대가 고통을 당하는 경우는 비단 <내 딸 서영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종영한 <보고싶다>도 그랬고, <메이퀸>의 아이들도 그랬다. 반면 어릴 적 트라우마로 연쇄살인까지 저지른 주인공의 행위를 오직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물쩍 몰고가기 바빴던 <보고싶다>에 비해, <내 딸 서영이>는 법적으로는 처벌 대상은 아니다만, 도덕적으로 따져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서영이의 잘못만큼은, 위너스의 맏며느리와 우재 아내 자리를 내려놓게 하며 철저히 책임지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딸 서영이>가 아무리 부모가 자식에게 고통만 전가했어도, 그럼에도 자식은 부모를 이해해야식의 보수적인 메시지만 전파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무조건 서영이 편을 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만, 적어도 <내 딸 서영이>는 서영이가 아버지에게 등을 돌릴 수 밖에 없는 기구한 사연을 충분히 우재는 물론 시청자들에게조차 납득시킨다. 


아무리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해도, 고3 때 자퇴시켜 중국집 배달시키게 한 것도 모자라, 허구헌날 사고를 쳐 힘들게 모은 등록금까지 홀라당 가져가버리는 순간, 살려달라고 애원했음에도 불구 오히려 화만 내는 아버지는 해도해도 너무했다. 그러나 우재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서영이가 아버지의 존재를 속인 것만 괘씸하게 여길 뿐, 어느 누구도 서영이가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 놔두고 고아로 만든 속사정까지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재벌 며느리가 탐나서 계획적으로 접근했다고 자기네 나름대로 판단하려고 들뿐이지. 

그런데 서영이와 경우는 다르지만, 우재네 가족들 중에는 서영이와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를 속인 미경(박정아 분)이 있었다. 자신의 남다른 배경이 아닌, 오직 자기만을 보고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던 미경은 의대에 진학한 이후, 10년가량 자신이 위너스 그룹 딸임을 철저히 속이고 다녔다. 허나 하루라도 빨리 미경을 좋은 집안으로 시집보내고픈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정체가 뽀로록 들통나게 되고, 동료 의사들은 10년 가까이 고아 코스프레한 미경에게 등을 돌린다. 


분명 미경이 자신의 정체를 속인 것은가진 자로서 서민들을 놀려먹겠다는 나쁜 뜻은 없었다. 그런데 서영이 또한 마찬가지다. 서영이가 우재 가족들에게 고아로 밝힌 것은 위너스 며느리가 되기 위함이 아닌, 차라리 고아로 밝혀 우재 부모의 더 큰 반대를 이끌어낼 심산이었다. 오히려 고아라서 더 좋다는 쪽은 다름아닌 우재 가족이었다. 허나 이제와서 모든 진실이 밝혀지니 자신들을 속이고 고아로 결혼한 서영이의 거짓말만 남았다. 


뒤늦게 서영이와 삼재를 둘러싼 모든 비밀을 알게된 우재는 이혼하겠다는 서영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라부라 상우와 만남을 가진다. 하지만 전날 서영이로부터 이제부터라도 아버지 딸, 우재 아내가 아닌 이서영 스스로의 삶을 살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전해들은 상우는 서영이의 마음을 돌려달라는 우재의 부탁을 단박에 거절한다. 





"우재씨는 머리로만 서영이를 이해하지, 그래도 서영이가 했던 행동은 그대로 남잖아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도,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절박하게 살아보지 않았던 우재와 같은 사람들은 쉽게 서영이를 이해할 수 없다. 지금 글로는 서영이의 딱한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다행히 그녀처럼은 힘들게 살진 않았던 나같은 사람도 말이다.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를 보고 있자면, 적어도 나는 서영이처럼 자식 앞길 가로막는 부모는 만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는 감사 기도를 종종 올린다. 한창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부모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싶을 나이, 아버지 때문에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했고, 그랬기에 자신의 삶마저 살아볼 기회가 없었던 아이가 다름아닌 서영이다. 


더 자고 싶어도, 한번도 늦잠을 자본 적이 없기에 저절로 이른 시간에 눈이 떠지고, 느지막이 빵을 사러 나가면서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혼자서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우르르 몰려다니며 네일아트를 받으려 가는 여대생들을 바라보며, 난생 처음 찾아온 여유마저 어색해하는 서영이를 바라보니, 그간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야했지만, 서영이의 지난 인생들이 안쓰럽게 다가올 정도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살려달라는 딸의 울부짖음에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서영이가 자신에게 굽히고 들어가길 바랄 뿐, 한번도 그녀의 입장이 되어본 적도, 되려고도 하지 않았던 우재에게 찾아가 무작정 딸을 봐달라고 비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지난 과오를 털어놓으며 서영이를 이해시키고자한다. 어찌보면 딸의 애원을 듣고 그제서야 개과천선한 삼재 캐릭터는 용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자식세대에게 부모세대의 선택에 대한 일방적 순종을 강요하는 시대. 이미 딸에게 용서를 구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다하다 아버지를 등지는 자식의 속사정도 모른채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까지 진실을 알리는 부모의 뒤늦은 깨달음이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내야하는 수많은 자식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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