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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내 딸 서영이. 서영이는 아버지도, 우재의 곁을 떠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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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이서영(이보영 분)과 강우재(이상윤 분)가 이혼을 했다. 여타 드라마 갔으면, 두 사람이 이혼하는 과정을 두고 이혼을 하니마니로 질질 끌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45%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 연장 아닌 예정대로 끝냄을 결정했기에, 아니 엄밀히 말하면 기존 주말 드라마와 차별화를 꾀하는 <내 딸 서영이>이기에 일단 서영과 우재가 헤어지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그래야 한 번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서영이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서영이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어떤 이는 서영이를 아무리 아버지가 못할 짓을 했다하더라도, 부모의 가슴에 못박는 패륜아로 규정하고, 어떤 이는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쳐도 부모의 덫에 무너지는 자식들의 비극을 보는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서영이는 2012년을 기점으로 더욱 더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골이 깊어지는 대한민국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나라 자식들의 전형적인 얼굴인 것 같기도 하다. 


부부야 마음이 안맞으면 이혼 서류에 도장 한 번 찍으면 그만이지만, 부모와 자식은 결코 남이 될 수 없다. 물론 서영이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와 아예 인연을 끊고 살 수는 있겠다. 그러나 자식은 아무리 그래도 부모를 버릴 수 없다. 혹시나 부모와 절연한게 들통나 사람들로부터 패륜아라고 돌 맞는 것도 두렵기도 하겠지만, 어찌되었던 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사람아닌가. 하긴 요즘들어 자살율이 높아지는 현실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는데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나를 왜 세상에 낳았어요하면서 부모를 원망하는 이도 있겠고, 죽지 못해 악착같이 산다는 이도 더러 있겠다. 하지만 자신의 엄마는 차지선 여사(김혜옥 분)뿐이라며 윤실장(조은숙 분)에게 떠나달라며 간청했으나 끝내 자신이 낳아준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성재(이정신 분)처럼 자식에게 부모는 떠날 수도 외면할 수 없는 근원적인 정체성이다. 





서영이의 이혼 소식을 뒤늦게 접한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은 "왜 우재를 붙잡지 않았나고." 호통을 친다. 그도 안다. 아무 배경없고 오히려 딸의 인생에 걸림돌만 된 아비있는 서영이가 위너스라는 굴지의 기업체를 가진 귀족의 집에서 버텨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거. 


더군다나 고의는 아니였다만 서영이가 결혼 과정에서 고아라고 속인 것이 제대로 걸린 마당에 말이다. 그럼에도 삼재 나이 정도의 부모들은 쉽게 딸을 용서할 것 같지 않은 시댁과 남편에게 빌고 또 빌어서라도 그 집 귀신이 되길 바란다. 아무리 지천을 받는다 해도, 여자 혼자서 살기 힘든 세상, 그래도 남편과 시댁이라는 든든한 보호망이 있어야한다고 말이다. 거기에다가 서영이는 자신을 보호해줄 친정도, 아버지도 없이 모든 것을 혼자 해왔기 때문에 그게 평생 마음에 걸렸던 아버지는 약간 외골수 기질은 있어도 자기가 봤을 때 진정으로 서영이를 보듬아주고 사랑하는 것 같은 우재와 살길 원한다. 우재가 그나마 서영이를 지켜줄 수 있기에 말이다. 





그러나 서영이는 아버지의 호통에 단호하게 맞선다. 아버지가 우재에 대해서 뭘 아나고 말이다. 강우재라는 인간과 많이 부딪쳐본 쪽은 서영이다. 서영이의 말마따라 삼재가 본 우재는 그가 가지고 있는 따뜻한 성품의 일부일뿐, 그가 가진 차갑고도 단호한 면은 전혀 알지도,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허나 우재와 무려 3년 이상 부부로 살았다는 서영이도 우재의 전부에 대해서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한 때 우재만을 믿고 그와 함께 거친 풍파를 헤쳐나가기로 결심했던 서영이가 결정적으로 우재에게 등을 돌린 계기는 서영이조차 감지하지 못했던 우재의 또다른 면이다.물론 서영이는 고의는 아니였다면 결혼 과정에서 남편을 속인 원죄가 있고, 아버지의 정체를 속여야만했던 서영이의 속사정을 알리 없는 우재는 당연히 서영이에게 큰 배신감과 동시에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서로 한 걸음만 물러나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솔직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털어놓는다면 일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잘난 사람들이나보니,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던 서영과 우재는 그저 상대방이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와주길 바랬을 뿐, 도통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서영이와 우재 부류다. 사람이란 동물은 보통 궁지에 몰렸을 때, 자기 아쉬운 것만 우선 고려할 뿐, 타인의 입장은 대개 뒷전이거나 전혀 감지조차 되지 않는다.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를 두고 세대 간에 각각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유도 매한가지다. 삼재와 비슷한 연배의 어른들은 아무리 그래도 부모를 버릴 수 있나고, 하루 속히 서영이가 삼재의 마음을 알고 그의 뜻을 따라주길 바란다. 





반면 부모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겨울을 맞이해야하는 서영이 또래들은, 오죽하면 경우없지않은 서영이가 삼재를 버리겠나고,  그녀를 옹호한다. 그들의 말마따라 사업실패와 노름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오히려 자식들에게 큰소리 뻥뻥치던 아비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한 그 자체가 평범한 여성과 재벌3세의 결혼보다 더 어메이징한 판타지로 보일 정도다. 


어찌되었던 초반 무능을 넘어 자식의 등골만 빨아먹던 공포스러운 아버지에서 오직 딸의 안위만 걱정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아버지로 변한 삼재는 자신의 정체가 시댁어른들에게 들통나 그 좋은 집에서 나와 다시 혼자가 될 서영이가 걱정스럽다. 


하지만 서영이에게 삼재는 3년 전과 똑같은 아버지일 뿐이다. 그동안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쌍둥이 동생 상우(박해진 분)은 지금 아버지는 예전 아버지와 다르다면서, 삼재와 계속 거리를 두려는 서영이를 다독거리지만 서영이에게 삼재는, 여전히 외면하고픈 무늬만 아버지일 뿐이다. 상우 말마따라 3년동안 아버지와 떨어져지내 참으로 드라마틱컬한 부성애로 중무중한 삼재의 애틋한 부성애를 서영이가 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서영이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신의 숨통을 턱턱 조이던 아버지가 3년 만에 딴 사람이 되었다는 그 자체를 쉽게 믿을 수 없다. 그것 또한 아버지의 단면만 보고 이럴 것이다라고 단정짓는 무지가 만든 편견일 수도 있겠다만, 아버지 이름만 들어도 학을 뗄 정도로 아버지 때문에 고통스럽게 살던 서영이 아니였던가. 


하지만 서영이는 결코 아버지 삼재를, 그리고 우재의 곁을 떠날 수 없다. 여러가지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고 붕괴되는 시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기획된 홈드라마 특성상, 그렇게 귀결되고야 말겠지만 서영이 말대로 홀로서기와 한 때 가족으로 엮인 사람들과 인연 자체를 끊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고 서영이와 우재가 다시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장면이 이뤄질 것 같다고 단정짓고 싶지 않다. 의외로 기존 가족 드라마 문법과 다르게 접근하는 <내 딸 서영이>는 두 사람의 재결합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힘들 때 기대고 싶은 존재로 남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서영이가 정말로 우재와의 재결합을 원하는 감정변화가 일어나면 모를까, 서영이는 지금처럼 혼자서 당당히 살고 싶은데,  임신이니, 우재 아버지 부도 등으로 빚어지는 억지스러운 재결합보다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미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진정한 파트너로 남는게 더 여운이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서영이와 우재가 어떤 식으로 남던 간에 서영이는 아버지 삼재는 물론 우재의 곁을 떠날 수 없다. 우재 동생이자 한 때 상우의 연인이었던 미경(박정아 분)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자존심 쎈 서영이가 오빠 우재에게 초라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과 바꾸지 못할 만큼 오빠를 사랑했다고. 


<내 딸 서영이>를 볼 때마다 위기에 닥칠 때마다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고 싶었던 서영이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솔직한 진심까지 숨길수 밖에 없는 그 자존심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다행이도 서영이는 차츰차츰씩 자신을 지독하게 옭아맸던 자존심과 고독함을 내려놓고 서서히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 속으로 뛰어들고자 한다. 이제는 달라진 헤어스타일만큼 자기의 솔직한 속내를 남에게도 비추려고 노력하는 서영이.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진정으로 아버지와 우재의 진심을 이해하고, 서영이 또한 그들에게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 곧 오지 않을까. 기존 주말 드라마처럼 결국 자식과 아내는 부모와 남편을 버릴 수 밖에 없어 식의 가부장적 규범만 내세우는 것이 아닌, 진정한 여성의 독립과 부모와 자식의 화해를 이루는 명작으로 남길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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