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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김태우. 잔혹함에 가려진 눈물겨운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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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무철(김태우 분)은 오수(조인성 분)을 싫어한다. 너무 싫어한 나머지 오수를 죽이고 싶어한다. 때마침 그토록 염원하던 오수를 죽일 날이 왔다. 하지만 이대로 조무철의 손에 허망하게 죽을 오수가 아니다. 그래서 조무철은 현재 재벌가 상속녀 오영(송혜교 분) 가짜 오빠로 살고 있는 오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틈나는대로 오수에게 찾아와, 78억원을 환기시키는 조무철은, 김사장이 요구한 빚을 갚는 것보다 자신의 손에 죽는 오수의 최후를 더 간절히 원하는듯하다. 아니면, 오영이 오수 대신 죽어, 오수의 가슴에 희주에 이어 평생 잊지 못할 또 하나의 대못을 박게 하던가. 


첫 회 칠흙같은 어둠처럼 등장하여, 오수를 단박에 제압하는 조무철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보였다. 오죽하면 그가 한 짓은 하늘도 땅도 모른다고해서 하늘땅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인가. 




하지만 11년 전, 조무철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해맑은 미소와 순수함을 가진 천상 착한 남자였다. 문희주를 알기 전까지, 아니 문희주가 좋아하는 오수를 알기 전까지, 심지어 희주가 오수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조무철은 착했다. 


희주가 사랑하는 오수가 자기보다 희주를 더 사랑한다고 굳게 믿었기에 무철은 자기 아닌 오수를 좋아하는 희주의 마음마저 사랑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오수놈이 희주가 자기 아이 임신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되레 화만 낸다. 오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를 따라 오토바이 타고 나선 희주가 돌연 덤프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오수가 임신한 희주에게 화를 내고, 희주가 오수를 따라가다 죽는 그 순간에도 무철은 그 자리에 희주를 지키고 있었다. 


희주가 무철의 곁을 떠난 이후, 무철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순박한 치킨 가게 알바생이였던 무철은 조직 폭력배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고, 희주를 하늘나라로 보내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오수의 목을 치기 위해 조용히 칼날을 갈았다. 애초 착했던 사람이 돌변하면 더 무섭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 이가 조무철이다. 


희주의 죽음은 조무철뿐만 아니라, 그녀의 동생인 문희선(정은지 분)의 삶까지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조무철의 대사에 의하면, 희주는 오수가 너무 좋은 나머지, 부모, 동생까지 버리고 집을 뛰쳐 나와 오수와 살림을 차릴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 게다가 그녀의 뱃속에는 오수의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오수는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 했고, 그의 순간적인 무책임은 희주는 물론 오수, 무철, 희선에게까지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온다. 


희주가 오수 때문에 죽은 이유로 무철은 오수를 제손에 죽일 날만 기다리고 있고, 희선은 오수의 주위를 뱅뱅 맴돌며, 언니를 그렇게 죽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여자 만나서 잘먹고 잘사는 오수의 무심함을 탓한다. 시종일관 오수의 모든 것에 트집잡으며, 그를 괴롭히는 희선의 행각은 다소 싸이코스러운 집착을 넘어 짜증을 유발할 정도다. 그런데 자신의 언니를 죽인 웬수라고 경멸을 보내는 오수를, 희선은 사랑한다. 그래서 희선은 말그대로 애증을 품고 있는 오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주체를 못할 정도로 커질 때마다, 오수에게 화를 내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며 그를 곤경에 빠트린다. 


그동안 노희경 작가 작품답지 않게, 조인성, 송혜교의 우월한 비주얼을 앞세운 화보라는 찬사가 앞서긴 하지만, 역시 노희경 작가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 있다면, 미워할래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의 서툰 사랑투정이다. 4회까지만 해도, 오수의 목을 차츰 죄어오는 조무철은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시련을 주는 반동 악역인물에 불과했다. 2회에선가, 희선의 대사를 통해 조무철 또한 희주를 사랑했음이 어렴풋이 드러나긴 했지만, 지난 21일 방영한 5회에서 오수의 악행(?)이 드러남에 따라, 오수를 향한 조무철의 불타는 복수심이 본격적으로 이해받기 이른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오수를 미워할 수 없다. 오수를 연기하는 배우가 조인성인 덕분도 있겠다만,,,,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은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이제 막 풋내기 어른이 된 고아 오수에게 임신 소식은 행여나 태어날 아이가 자기의 비극이 되물림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혼란을 안겨줄 법도 하다. 좀 새는 말이긴 하지만,  삶이 불안할 수록,  출산률이란 수치가 자꾸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오수는, 그가 직접 희주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해도, 그녀의 죽음에서 한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에게 오랜 세월 앙심을 품은 조무철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한, 희주 죽음 이후 오랜만에 오영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는 오수는 행복해질 수도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 


막판에 오수와 조무철이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화해하고 죽어서도 두 남자 사이에서 빙빙 맴도는 희주를 자유롭게 놔주면 좋을련만, 원작<사랑 따위 필요 없어, 여름>과 지금 흘러가는 극 정황을 고려하면, 원작 못지 않은 엄청난 비극으로 끝날 확률도 높아 보인다. 


하지만 악랄함 속에 숨겨진 10여 년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착했던 순수한 눈빛과, 희주의 기일 오수의 멱살을 잡고, 희주를 향한 자신의 순정을 토로하는 조무철은 그저 조인성과 송혜교의 눈호강 제대로 하는 화보에 그치는가 싶었던 노희경 드라마의 본래 매력을 되살려놓기 충분했다.

한 때, 홍상수 감독 영화 특유의 찌질하면서도 나약한 지식인으로 친숙한 배우 김태우의 17년 연기 진가가 반짝반짝 빛났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5회. 역시나 노희경의 마력은 계속 이어진다. 


(진짜 개인적인 여담이지만, 배우 김태우도 그 동생 배우 김태훈도 참 매력적이다 ㅋㅋ. 그러고보니 김태우 배우 웃는 모습이 동생 김태훈 배우랑 참 많이 닮은듯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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