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전망대

내 딸 서영이. 완벽한 해피엔딩에 숨겨진 진짜 메시지

반응형





시종일관 우울하고 날카로웠던 지난날과 달리, 너무나도 행복하고 포근한 분위기가 지배했던 KBS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 마지막이였다. 지난 3일 방영한 <내 딸 서영이> 마지막회는 그동안 49회 동안 흘렸던 서영이(이보영 분)과 삼재(천호진 분)의 눈물을 고스란히 보상이나 하듯이, 드디어 화해한 부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고 정겨웠다. 


첩첩산중 쌓인 오해 더미에 가려 서로를 반목하고 살아왔던 이들이 각각의 원망을 풀고 행복해지는 모습은 전형적인 가족 드라마의 클레셰를 넘어,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였다. 특히나 <내 딸 서영이>는 여타 주말 드라마와 달리 시크한 모습을 보여왔기에, 그 닭살돋음이 더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일일, 주말 연속극의 고질병이라고 볼 수 있는 지독한 '행복강박증'이라고 하더라도, 이상하게 그 진부한 해피엔딩이 싫지 않다. 


<내 딸 서영이>는 스토리 전개 방식이나, 인물 구도 면에 있어서 전형적인 주말 드라마 형태를 답습한다. 어느 주말 드라마가 그랬듯이, <내 딸 서영이> 주 무대는 가족이고, 끝내 가족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극 중후반부에 여주인공 서영은 가족의 품을 떠나 홀로 서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그녀의 선택은 완벽한 가족의 품안에 포근히 안기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여주인공이 남편이었던 우재(이상윤 분) 재결합없이 정말로 그녀 혼자 나름대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줄 법도 하다. 하지만 가족 체계가 나날이 무너지는 시대, 무엇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중장년층 세대가 주시청자로 꽉 잡고 있다는 KBS 주말연속극 시간대에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도전이다. 가족 없이 나 혼자 잘 살 거야를 외치던 서영이가 오랫동안 등을 돌리던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별을 선언했던 우재와 재결합하여 아이까지 낳고 알콩달콩 사는 결말은, 아무리 요즘 '싱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나, 이왕이면 내 자식은 결혼해서 아이낳고 살았으면 하는 다수의 부모들의 판타지를 완벽히 대변한다. (우리 부모님도 매한가지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가 단순히 보수적 중장년층 판타지 충족에만 머물렀다면, 오늘날 '국민드라마'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인기를 끌긴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대 특성상 뭘해도 시청률 30%는 보장한다는, KBS 주말연속극이라고 하나, <내 딸 서영이>는 기존 중장년층 시청자외에 주인공 서영이 또래인 20~30대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주말 드라마였다. 




솔직히 말하면 글쓴이는 평소 KBS 주말 연속극을 즐겨보지 않았다. 그 시간대의 드라마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가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시간대 드라마는 대부분 그래왔다. 하지만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서서히 젊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온 KBS 주말 연속극은 <내 딸 서영이>를 정점으로 완벽히 젊어지고 있었다. 비록 결말에서 '결국은 가족'이라는 보수적 가치관과 완전히 타협하긴 했지만, 서영이와 아버지와 갈등을 빚고 서서히 해결하는 과정은 무조건 보수적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는 기존 가부장적 시각으로 봤을 때,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부모를 등진 패륜 자식에 가깝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는 서영이를 단순 악녀로만 바라보기보다 그녀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한다. 서영이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듣고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 서영이 아버지 삼재는 내가 서영이라도 등을 돌리고픈 무늬만 부모였다. 물론 자식된 입장에서 아무리 못난 부모라도, 부모를 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불구, 부모와 가족을 등지고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서영이의 도전은 요즘들어 더더욱 부모 세대와 격한 갈등을 벌이는 젊은 세대에게 큰 공감대와 지지를 받기 이른다. 비록 서영이의 홀로서기는 다시 가족의 편입으로 급마무리 되었지만,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에서 젊은이들의 시각이 반영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혁명'인 셈이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인 서영이와 아버지의 화해를 위해 한걸음씩 잘 나가다가, 갑자기 삼재가 복막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생사의 위기를 넘길 당시엔, 누구 하나가 아파야 모든 것이 해결되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형적인 고질병 재림을 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곯아야지만, 겨우 터질 정도로 극화된 부모, 자식 세대의 갈등을 고려해볼 땐 그리 억지 전개로 보긴 어렵다. 




<내 딸 서영이>가 주말 드라마 고정 시청자인 중장년층은 물론, 청년층이라는 신규 애청자 유입에 성공한 것은, 드라마가 보여줬던 세대 갈등과 해법이 각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대 형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음에도 불구, 죽을 고비를 넘어서야 자식의 용서를 받은 삼재는 이 나라 다수의 부모를 상징했고, 반면 부모는 자신의 인생에서 짐만된다고 생각한 서영은, 지난 대선 이후 부모 세대에 의해 완벽히 좌지우지당한 앞날에 힘들어하는 자식 세대의 표본이었다. 


너무나도 완벽했던 <내 딸 서영이>의 행복한 마무리를 두고, 중장년층은 그토록 기다리던 결말에 함박웃음을 지을 법도 하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았던 딸이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부모와 남편의 곁으로 회귀했으니 이토록 완벽한 보수적 해피엔딩이 또 어디있을까. 


하지만 철옹성같았던 서영이가 다시 아버지에게 마음의 문을 연 것은, 딸의 울부짖음에 완전히 새 사람이 된 아버지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한 때 이혼 위기까지 갔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사이가 돈독해진 강기범(최정우 분)-차지선(김혜옥 분) 부부도, 소위 '꼰대'로 불리던 강기범이 변했기에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식으로서, 여성으로서 독립을 선언했던 서영이가 다시 아버지와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치관 회귀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영이가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무작정 자식과 아내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지 않았다. 단순히 자식 세대는 무조건 부모 세대를 공경하고 따라야한다는 것이 아닌, 부모 세대의 자식 세대를 향한 배려와 이해를 함께 보여주는 진정한 소통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서영이를 비롯한 자식 세대는 결코 부모 세대를 버리거나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 이삼재와 강기범이 자라던 시절처럼 기성 세대의 가치관을 무조건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거나 주입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어느 때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격렬해지는 지금, 상대를 향한 일방적 양보만을 바라는 것이 아닌  마음의 문을 여는 대화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것은 어떨까. 


같은 시대를 산다고 해도, 각각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긴 하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자식과 부모, 혹은 가족 사이에 진솔하게 마음을 털어놓아야한다는, 당연하지만 잊고있던 소중한 진리를 몸소 깨닫게 해준 것만으로도 <내 딸 서영이>는 '국민드라마'로서 완벽히 성공한 것이다. 




<내 딸 서영이>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삼재와 이서영의 진정한 화합은 전적으로,  함께 얼굴 맞대면서 살아야할 이 시대 모든 부모와 자식의 몫이다. 단순히 판타지에 불과한 주인공 가족의 되찾은 행복에 대리만족에 머무르게 하기보다, 우리가 사는 현실까지 되짚어 보게 하는 <내 딸 서영이>의 마지막 회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역시 <내 딸 서영이>가 국민 드라마 맞긴 맞는가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