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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여운있는 엔딩 속에 빛난 조인성,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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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그림자 가득한 암울한 현실과 달리, 내가 즐겨 보는 드라마 주인공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하나, 유독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의 오수(조인성 분)과 오영(송혜교 분)은 드라마 속 인물들임에도 진심을 담아 그들의 해피엔딩을 응원하고 싶을 정도로 요즘 보기 드물게 참으로 예뻤다. 


단순히 두 주인공들의 외모가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한테 해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오수는 진심으로 오영을 사랑하였고, 그의 애정어린 헌신은 고드름 보다 꽁꽁 얼어있던 오영의 차가운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줌과 동시에 꽤 오랜 시간 설득력없이 극단적인 끝으로만 달려가는 드라마와 캐릭터에 지쳐있던 시청자들의 피로를 눈 녹듯이 깨끗이 씻어주었다. 





애초 사랑이란 감정이 이성적, 합리적 근거로 설명되는 존재는 아니다.  만약에 사랑이 이성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애시당초 오영은 오수를 사랑해서는 안 되었다. 오영이 오수를 오빠라고 부르기 전까지, 오수는 그저 살기 위해 오영 앞에 가짜 오빠 행세하며 나타난 사기꾼 오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겨울> 중반까지만 해도, 오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여인네들의 심장을 앗아가는 근사한 남자였지만,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되레 깊은 상처만 입히는 최고의 나쁜 남자였다. 하지만 오수가 점점 오영을 향한 진실어린 사랑을 보여주는 순간, 오영과 오수의 다소 힘들었던 여정은 수많은 이들의 진정어린 응원을 받기에 이른다. 


지난 3일 방영한 <그 겨울> 마지막회에서, 끝까지 오수를 놓치 않으려는 김사장의 교활한 계략으로 오수가 진성(김범 분)으로부터 칼맞는 순간, 행여나 비극으로 가지 않을까 싶은 조바심도 들었다. 





워낙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그 겨울>이기에 행복한 결말로 가는 얼마 남지 않은 여정 속에서도 끝까지 고비를 놓지 않는 <그 겨울> 제작진의 노림수가 더더욱 짖궃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야박한 장면 속에서도, 진성을 원망하기보다, 오영을 생각하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오수, 아니 조인성은 찬란하게 살아있었다. 


노희경 작가 특유의 완벽한 대본, 온전히 눈뜨고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케하는 김규태 PD의 감각적인 연출. <그 겨울>은 확실히 잘 될 수밖에 없는, 요즘 보기 드문 웰메이드 정통 멜로였다. 그러나 연출과 대본만으로도 훌륭했던 <그 겨울>을 더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이름이 잘 알려진 이 시대 최고 스타들을 내세웠음에도 지난 16회 동안 각각 조인성, 송혜교가 아닌 드라마 속 오수, 오영으로 몰입하게 만든 배우들의 연기다. 


송혜교의 절제된 감정선과 발성톤은 어린 시절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오빠와 헤어지고, 시력까지 잃은 이후 세상과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오영의 매력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동정과 연민을 넘어 오영의 상처에 대한 이해도를 배가시킨다. 다소 과잉된 감정을 분출하면서도, 설득력있게 그려지는 캐릭터는 조인성과 송혜교라는 맞춤 옷을 입으면서, 제대로 물 만난 고기처럼 강한 생기를 뽐내기에 이르렀다. 


유난히 겨울이 길었던 2013년. 벚꽃과 함께 상당히 짧은 봄이 시작되는 4월 첫째주. 봄의 시작과 더불어 늦겨울 가시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노희경 특유의 따스한 휴머니즘과 탐미적이라는 단어가 아쉽지 않은 미장센, 그리고 조인성, 송혜교, 김태우, 배종옥, 김규철 등의 연기가 일품이었던 <그 겨울>은 16회라는 유종의 미를 남기고 여운있게 우리 곁을 떠났다. 






오수와 오영의 행복한 재회를 두고, 엔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겉으로만 보여지는 표면을 넘어 지난 16회 동안 뚝심있게 이룩한 <그 겨울>의 미학적 성취와 휴머니즘 메시지는 이미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일종의 기적을 선사하였다. 


언뜻 차갑게 보이면서도, 햇볕보다 따스했던 <그 겨울>이 있었기에, 그 차가운 바람마저 훈훈하게 이길 수 있었던 2013년 겨울날. 김규태 PD와 노희경 작가. 그리고 조인성, 송혜교가 있었기에 행복했던 지난날. 그 아름답고도 서정적인 추억을 더듬어가며 이제 오수와 오영을 보내줘야겠다. '이렇게 아름답고도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또다른 봄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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