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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무한도전 무한상사 정리해고 정준하의 눈물. 대한민국 직장인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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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위기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직장이란 평생 다니는 일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들이 연이어 부도를 맞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회사 구성원에게 분담되었다. 수많은 가장들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고, 단란했던 가정은 풍비박산했다. 그 당시 아버지의 정리해고를 몸소 겪은 20~30대 세대들이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공무원, 공기업 취업을 유독 선호하는 것도, 그 때 악몽과 무관하지 않다. 


IMF 위기가 끝나고, 경제가 많이 좋아졌음에도 불구, 지금도 기업 내 경영 합리화를 위한 정리 해고는 계속 진행 중이다. 회사 오너의 가족이 아닌 이상, 직장인들의 항상 언제 자신에게 닥칠 줄 모르는 해고의 공포와 반드시 살아남아야한다는 압박에서 살아남아야한다. MBC <무한도전>의 수많은 아이템 중에서도 ‘무한 상사’가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는 것은, ‘무한 상사’의 모습에서 2013년의 대한민국 회사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투영되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무한도전> 8주년 기념으로 뮤지컬 특집으로 방영한 ‘무한상사’의 아침은 어느 날과 다름없이 평온했다. 유능한 업무 능력으로 고속 승진한 유재석 부장의 잔소리를 시작으로, 자기보다 나이 많은 부장을 모신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박명수 차장, 눈치 없는 만년 과장 정준하, 생계를 위해 대리 운전까지 한다는 정형돈 대리, 뛰어난 처세술을 가진 노홍철 사원과 만날 노홍철과 비교당하는 철없는 하동훈 사원, 그리고 얼마 전 인턴딱지를 떼고 정직원이 된 길성준 까지. 어느 직장에 가도 있을 법한 ‘무한상사’ 일곱 직원들의 일상은 정겨움이 느껴질 정도다. 


평소 회사 내에서 팀워크가 좋은 팀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재석 부장이 이끄는 팀마저도 정리 해고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피할 수 없었다. 유재석 부장은 감원을 막기 위해 영화 <아이언맨>을 연상시키는 ‘아연맨’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사장님의 마음을 돌려놓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윗선의 결정을 돌려놓기는 역부족이다. 





자기 손으로 자기 부하를 내보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유재석 부장. 심지어 유재석 부장은 직원들을 대신 자신이 사표를 낼까 하는 심각한 고민에 정리한다. 결국 유재석은 고심 끝에 팀원들 중에서 업무 능력이 제일 떨어지는 정준하 과장을 정리해고 대상자로 결정한다. 





나머지 직원들을 위해 정 과장에게 ‘해고’라는 주홍 글씨를 새긴 유재석 부장은 억장이 무너진 채, 회사를 떠날 정준하 과장을 그가 좋아하는 초밥으로 조용히 위로한다. 정 과장의 해고 통보 이후, 정 과장의 눈치만 보는 남은 직원들.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직원이 떠난다는 아쉬움과 그래도 다행히 나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가 교차하는 사무실 안. 여전히 ‘정리해고’가 만연한 2013년 대한민국 사무실의 생활백서는 한없이 우울하면서도 잔인하다. 


그래도 예능이니까, ‘무한 상사’의 정 과장이 정말로 해고 통보를 받지 않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짐 싸서 나가는 정준하 과장에게 기적적으로 해고는 없었던 일로 하겠다는 반전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끝내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즐겁고 행복하게 무려 8년의 시간을 버틴 것을 ‘자축’ 해야 할 것 같은 8주년 특집에 아이러니하게도 <무한도전>은 마마, 호환보다 100배 무서운 ‘정리 해고’를 전면에 내세웠다.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을 통틀어 8년을 버텨온 동안, 그와 함께 세상에 나왔던 수많은 프로그램은 종적도 감추고 사라진 경우가 대다수다.  무언의 언급도 없이 해고당한 정준하 과장의 눈물에게서 <무모한 도전> 앞서 방영하며, 토크쇼 최강자로 각광받다가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작별 인사도 없이 폐지당한 유재석의 <놀러와>가 오버랩 되는 순간, ‘무한상사’는 동시에 무분별한 프로그램 정리해고 위협이 끊임없이 도사리는 MBC가 연상된다. 





오랜 세월 토요 예능 최강자로 사랑받는 <무한도전>의 안위마저 장담할 수 없는 현재의 MBC. 그곳에서 <무한도전>은 머리를 쥐어짜가며, ‘아이언맨 수트’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창출해야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뮤지컬 ‘레미제라블’ 수록곡 ‘원 데이 모어(내일로)’를 개사한 노래로 정리해고의 공포에 떨고 있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완벽히 그려낸다. 


현재 영화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아이언맨3>을 재치 있게 끌어온 <무한도전>의 패러디 정신은 2012년 겨울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레미제라블>를 통해, 정리해고라는 살인 위협에도 그럼에도 용케 버텨내야하는 직장인들을 위로한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파크가 수트로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하고,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목숨까지 내건 선의로 감동을 선사한다면, <무한도전>의 무한상사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진정성 있는 연기와 연출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지난 27일 방송에서 ‘무한상사’에서 정리해고 당한 정준하 과장이 ‘치킨집’을 창업하는 사진이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긴 했지만, 정준하 과장은 다시 ‘무한상사’로 돌아와야 하고, 정준하 과장 이후 다시는 정리해고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리해고’는 한 개인은 물론 그의 가정까지 파멸시킬 수 있는 ‘살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정리 해고 통보를 받은 정준하 과장의 눈물이 결코 가상의 ‘무한상사’에만 벌어지는 픽션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기에 더욱 가슴 아팠던 <무한도전-무한상사>. 정리 해고라는 칼바람에 희생되어 회사를 떠나는 정준하의 처진 어깨와 정준하를 힘겹게 보내는 와중에도 애써 눈물을 꾹 참는 유재석 부장과 함께 따라 울면서, 그동안 쌓인 울분을 잠시나마 털어낼 수 있는 21세기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레미제라블’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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