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러 라이브. 하정우의 열연에 숨겨진 염세적이고도 현실적인 악몽

오늘 31일에 개봉하는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한정된 공간 하에, 우연히 시작된 통화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의 <폰 부스>외에도 1963년 개봉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의 전반부를 연상시킨다. 

일정한 실내 한 공간에서 이야기 펼쳐진다는 공통점 외에도 급격한 사회화 구조에서 벌어진 계급 간의 모순을 적절히 투영시키는 치밀한 스토리텔링 구조에 위기 상황에 직면한 주인공의 끊임없는 내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천국과 지옥>과 견줄 만한 <더 테러 라이브>는 오히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에드 멕베인의 소설 <왕의 몸값>보다도 더 주인공을 궁지에 몰리게 하면서, 60년대 일본보다 더 계급 격차와 자본주의 모순이 뚜렷해진 2013년 한국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천국과 지옥> 외에도 <더 테러 라이브>는 묘하게도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소식들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3년 전 마포대교 다리 보수 공사에 투입되었다가 근로자의 안전보다도 공사 진행에 몰두하다가 벌인 사고에 목숨을 잃은 인부들의 보상금과 대통령 사과를 받기 위해 테러를 벌인 범인의 주장은, 지난 15일 장마철 도중 벌어진 노량진 배수 공사현장 수몰 사고와 26일 울산 삼성정밀화학 공장 물 폭탄 사고,  30일 발생한 방화대교 연결 램프 공사장 붕괴 사고 중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들의 희생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공교롭게도 ‘마포대교’에서 벌어진 사고라는 점 외에도 비운의 사고를 자초한 언론의 도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지난 29일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투신사고도 연상케 한다. 

자타공인 한국의 최고 남자배우로 등극한 하정우의 원톱 주연만으로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든 <더 테러 라이브>이지만, <더 테러 라이브>는 하정우의 리얼한 재난 연기, 심리 변화만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화 마지막에 공개되는 테러범의 정체에 영화의 모든 촉각을 기울인 것도 아니다. 극 중 등장인물들처럼 범인을 잡는데 모든 힘을 쏟아 붓는 대신, 영화는 왜 범인이 마포 대교 폭발이라는 끔찍한 테러를 저질렀는가의 과정에 주력한다. 

극 중 방송국 앵커로 분한 윤영화(하정우 분)은 대외적인 이미지와 달리, 정의롭고 선한 인물과 거리가 먼 캐릭터다.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으며, 앵커로서 성공하겠다는 목표 하에 남의 기사를 가로채는 비도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윤영화는 그 일로 라디오 앵커로 밀려남은 물론, 아내 이지수 기자(김소진 분)와도 이혼한 상태다. 그럼에도 전 아내를 잊지 못하는 윤영화는, 특종을 잡아 아내와의 재결합, 그리고 다시 TV 뉴스로 진출하겠다는 목표 하에 테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범인의 경고를 묵살하고, 그와 위험천만한 거래를 시작한다. 

특종 욕심에 눈이 멀어 언론인의 도덕적 책임을 망각한 윤영화 외에도 <더 테러 라이브>는 보통 선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청률’과 사건 은폐, 조작 등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최우선인 인물들의 치열하고도 야비한 두뇌싸움이 펼쳐지는 방송국과 정부에서 테러로 다리에 갇힌 시민들의 안전은 뒷전이다. 

하나같이 비도덕적이고,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그저 “나만 아니면 돼.” 논리에 충실한 언론사와 정치인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영화는 그 답답하고도 화가 나는 장면을 통해 민주적이고도 법적인 절차에 따른 평화적인 의사 표현 대신, 자신의 뜻을 세상에 표출하기 위해 잔인한 무력을 쓰고야 마는 힘없는 이들의 반란으로 귀결시킨다. 하지만 <더 테러 라이브>는 상위 1%를 위한 굳건한 세상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울분을 잠시 토해내게 할뿐, 그 이상의 미화나 테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익 창출 목표 하에 대중성과 오락성을 우선 고려하게 되는 한국 상업 영화에서 정치와 언론을 여실히 꼬집으면서, 그에 폭발한 계급 모순의 피해자가 사회의 근간을 잠시 흔들어놓을 수 있는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보여주는 시도는 가히 놀랍기까지 하다. 

허나 이는 오직 <더 테러 라이브>에만 국한되는 소재가 아니다. 최근 개봉한 <명왕성>에서부터, 7월 31일 <더 테러 라이브>와 같은 날 개봉하는 <설국 열차>까지. 계급 고착화가 뿌리 깊게 내려 박은 2013년 대한민국에서 1963년 일본을 배경으로 한 <천국과 지옥>보다 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민들의 답답한 애환을 급진적인 결말로 위로 이상의 충격을 안겨주는 영화의 흐름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 지극히 염세적, 현실적이고, 자칫 이 상태에서 변하지 않을 경우, 머지않은 가까운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한  <더 테러 라이브>. 그리고 <설국 열차>의 흥행 결과가 궁금하다. 

뻘소리 하나: 아마 더 어메이징한 영화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 한국 유수(?) 영화제 남우주연상은 <7번방의 선물> 류승룡과 <더 테러 라이브> 하정우(의 피부트러블)의 대결로 굳힐듯... 암튼 류승룡, 하정우 모두 이름만 들어도 믿고 보는 배우로...연기도 연기지만 작품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줌...

한 줄 평: 하정우 열연을 넘는, 상상 이상의 염세적이고도 급진적 결말이 안겨주는 놀라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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