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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너의 목소리가 들려. 민준국의 과거에 숨겨진 영리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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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수목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기존 공중파 드라마에선 보기 쉽지 않았던 다소 파격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취한다. 시청자들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장면을 먼저 제시하고, 차분히 그 과정을 짚고나가는 박혜련 작가의 필력은 수많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 마니아들을 형성한 비법 중 하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방영 초반 당시, 큰 화제를 모았던 ‘죄수의 딜레마’를 변형하여, 장혜성(이보영 분)과 박수하(이종석 분)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지난 31일 방영한 혜성의 납치 사건의 긴장감을 높인 부분도 향후 박혜련 작가의 차기작을 더욱 궁금케 하는 대목 중 하나다. 


지난 주 16회에서, 지난 31일 방영한 17회까지 시청자들을 불안에 떨게 한 혜성의 납치는 결국 이 드라마의 모든 불행의 씨앗 민준국(정웅인 분)의 구속으로 아무 탈 없이 마무리 되었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늘 1일 방영할 마지막 회는 시청자 대다수가 기대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동안 시청자의 허를 찌른 전개가 많았던 만큼, 시청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밀당은 드라마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계속 이어질 듯하다. 





혜성과 수하의 강적 민준국도 체포되고, 혜성이 민준국에 납치되고 수하가 구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연인은 큰 위기를 넘겼다고 안도할 틈 없이. 그간 그들이 민준국에 당한 협박에 비해서는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어쩌면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한 신뢰와 사랑에 적잖은 균열이 일어나게 할 것 같은 숙제가 남아있었다. 


수하가 자신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다 털어놓길 바라고, 또 그랬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던 혜성의 믿음과는 달리, 수하는 혜성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다. 민준국이 수하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 이후 자신이 수감되는데 결정적인 증언을 한 혜성에게까지 해코지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변신한 이유는, 다름 아닌 수하 아버지가 그 중심에 있었다. 





지난 31일 방영한 17회에 따르면, 민준국은 심장병에 걸린 아내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에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평범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내가 예정된 심장 이식을 받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그 과정에서 수하 아버지가 수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내에게 돌아갈 심장을 빼돌린 사실에 분노한 민준국은 수하 아버지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이후 홀로 남은 어머니와 아들의 아사 등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낸 민준국은 오직 복수에 악이 받힌 짐승이 되어 있었다. 





세상의 부조리로 벼랑 끝에 내몰린 남자가 세상 혹은 선량한 개인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릴 수 있다는 설정은 지난 31일 개봉한 영화 <더 테러 라이브>와 다소 닮아있다. 이는 사회가 점점 양극화되어가고 그 속에서 소외되어 절망이 커져가는 개개인이 늘어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테러를 정당화 하지 않지만, 철저히 염세적 시각에 입각한 <더 테러 라이브>와 다른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출소 이후 자신을 가족같이 대해주던 혜성의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끊임없이 혜성과 수하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악행을 일삼아오던 민준국이 꿈꾸던 최고의 복수는 자기가 수하의 아버지와 혜성의 어머니한테 그랬던 것처럼, 수하 또한 자신과 똑같은 살인범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수하는 혜성과 약속한대로, 민준국과 똑같은 짐승은 되지 않았다. 괴물이 되기까지의 민준국의 비참했던 과거는 일말의 안쓰러움을 자아내지만, 그렇다고 그가 저지른 모든 범행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용서받고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가진 자의 술수에 참다못해 저항하는 약자의 분노는 때론 몇몇 대중들의 지지와 호응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이 용인할 수 있는 절차적 방법이 아닌, 민준국과 같은 사적 복수, 혹은 <더 테러 라이브>처럼 대통령의 사과를 받기 위해 선량한 시민이 인질로 잡히는 테러는 되레 사람들의 분노만 키울 뿐이다. 


대통령의 사과를 받기 위해 마포대교를 폭파했다는 <더 테러 라이브>의 테러범처럼 민준국은 “너는 단지 짐승, 살인자이다.”라는 수하의 말에 이렇게 응수한다. 난 이렇게 짐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나도 너처럼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민준국은 가족을 위해 복수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범죄자일 뿐이다. 그리고 다행히 박수하는 그를 범죄자로 몰고 가려는 민준국의 술수에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민준국과 박수하. 장혜성과 얽히고설킨 질긴 악연도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수하 아버지, 민준국에서 시작된 악연을, 뒤늦게 알게 된 혜성이 그 진실을 숨긴 수하에게 잠시 실망할 순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현명하게 적절하게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빚은 끔찍한 사건을 향해 따스하면서도 엄중한 시선을 잃지 않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균형 감각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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