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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아티스트 봉만대. 그저 평범한 에로 영화인줄만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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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에로 영화’를 B급이라고들 한다. 보통 저예산으로 제작되고, 남녀 간 성적 관계를 다소 과감한 연출로 표현하는 에로 영화는 분명 주류 상업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기보다, 집에서 은밀히 비디오, 혹은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봐야할 것 같은(?) 에로 영화. 하지만 B급을 지향하는 에로 영화라고 한들, 과연 그 작품성마저도 B급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29일 개봉한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의 감독 겸 주연 봉만대는 한국 영화계에서 철저히 ‘B급’으로 분류되는 감독이다. 7년 전 도지원, 신세경이 주연을 맡은 <신데델라>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대기업이 투자 배급하는 공포 상업 영화도 찍었지만 여전히 봉만대 감독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에로’다. 하지만 봉만대 감독은 자신에게 낙인찍힌 ‘에로 영화 감독’ 타이틀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로 영화’로 각광받는 자신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키는 <아티스트 봉만대>를 세상에 내놓으며, 에로 영화 거장(?)으로 추앙받는 자신의 위치를 공교히 한다. 





영화의 시작은 대략 이러하다. <남극일기>, <헨젤과 그레텔> 임필성 감독이 곽현화, 성은, 이파니, 여현수와 함께 에로를 표방한 공포영화 <해변의 광기>를 연출하는 도중, 임 감독의 무난한 에로 씬에 실망한 제작자는 급기야 감독을 교체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임 감독을 대신해 구원 투수로 투입된 감독은 ‘에로 영화 거장’ 봉만대 감독. 하지만 임 감독보다 강도 높은 노출과 에로 씬을 요구하는 봉 감독의 주문에 행여나 에로 배우로 굳혀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여배우들은 봉 감독에게 반기를 들고, 촬영 현장은 봉 감독 생각 이상으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아티스트 봉만대>는 에로 영화 촬영 현장을 리얼하게 담아낸 일종의 페이크 다큐다. 봉만대 감독 외에, 곽현화, 성은, 이파니, 여현수, 이선호, 임필성 감독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실명 그대로 등장한다. 출연 배우들 간의 서로에 대한 디스도 서슴지 않는다. 여전히 에로 배우의 딱지를 떼지 못하는 성은, 노출로 더 유명한 개그우먼 출신 곽현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외에 이렇다 할 필모그래피가 없는 여현수의 아픔까지 적나라하게 건드린다. 


짧은 등장에도 불구,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악당의 진수를 보여준 임필성 감독도 이 진흙탕 같은 디스전 에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백미는, 여현수와 곽현화의 난투극도 아닌, 봉만대 감독 스스로의 셀프 디스이다. 대역 배우가 봉만대 감독을 두고, “봉준호 감독 친척 아니냐는?” 웃지 못할 설정 외에도, 에로 씬만 다시 찍는다는 조건으로, 고작 300만원을 받아도 3개월 쌀 걱정 없다고 기뻐하는 봉만대 감독의 표정은, ‘에로 감독’으로 고착되어 버린 본인에 대한 통렬한 자아비판이다. 


하지만 <아티스트 봉만대>는 서로의 입을 통한 공격에만 그치지 않는다. 영화 촬영 당시, 출연 배우들 간의 소통을 중시하는 인간미 넘치는 봉만대 감독답게, <아티스트 봉만대>는 노출로 떴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싼티’로 낙인찍혀야하는 여배우들의 비애를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에로 배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서 노출 장면을 거부했으나, 결국은 봉 감독의 설득에 어렵게 벗은 성은의 힘겨운 결심이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숭고한 감정이 물씬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타 영화와 달리, 고강도의 노출 씬이 필수인 에로 영화의 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티스트 봉만대>는 에로 영화 촬영현장으로 이야기를 한정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 임필성 감독의 교체, 그리고 에로 씬을 사이에 둔, 봉만대 감독과 제작자의 끊임없는 갈등을 통해 연출자의 표현을 존중해주기보다, 제작자와 투자사의 입김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한국 영화 제작 현장을 넌지시 보여준다. 





어쩌면 영화 제목의 ‘아티스트’는 대중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명분하에 자본 논리에 철저히 예속될 수밖에 없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 아티스트가 될 수 없었던 봉만대 감독. 그리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의 모든 영화감독, 예술가들의 마지막 자존심이 아닐까. 그래서 이 영화가 웃기고 슬프다. 8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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