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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응답하라 1994. 사랑은 때로는 표현이 필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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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방영한 tvN <응답하라 1994> 11회, '짝사랑을 끝내는 단 한 가지 방법'에서 잠깐 등장한, 지금은 없어진 '스크린'의 문구를 잠깐 활용하자면, 사랑에 빠졌다는 결정적인 증거 중 하나를 꼽자면, '상대방을 바라보는 끊임없는 시선'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절한 눈빛. 이것은 즉슨, 해태(손호준 분)의 말대로 꼬맹이들도 다 아는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때로는 가장 기본을 망각하고 지나쳐버릴 때가 종종 있다.

 

 

 

 

여기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자가 둘이나 있으면서도, 그걸 미쳐 인식하지 못하는 성나정(고아라 분)이 있다. 그래도 칠봉(유연석 분)은 얼마 전 키스와 함께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기 때문에, 나정 또한 칠봉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칠봉의 마음을 선뜻 받아주지 않았을 뿐. 이미 그녀의 마음 속에는 쓰레기(정우 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나정은 쓰레기 또한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지에 관해서는 미처 알지 못한다. "오빠 좋아한다"는 고백에 내심 그가 "OK" 하면서 대답해주길 바라지만, 해태가 전한 쓰레기의 '진심'에는 위로가 섞인 농담이라고 단정짓는다.

 

 

 

 

지난 11회는, 왜 쓰레기가 나정에게 오빠 이상으로 다가갈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주면서도, 동시에 더 이상 나정을 아끼는 동생으로 대할 수 없는 쓰레기의 감정이 명확해진 한 회였다. 지난 10회 동안 나정을 향한 끊임없는 시선과 의미심장한 복선을 보여줬음에도 불구, 쓰레기도 정말 나정을 마음에 두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완전히 확신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나정과 친남매처럼 허물없이 지내기 전, 나정 오빠 훈이 세상을 떠나면서, 훈이 대신 나정을 지켜주겠다는 어린 시절 확고한 믿음이 깨져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쓰레기의 심경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당장 눈 앞의 행복만 보는 것이 아닌, 그 뒤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역경까지 고민해가며, 애써 자신의 타오르는 마음을 억누른 채, 그녀의 기사를 자청하는 남자의 진심을 알아주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성동일에게 대놓고 '반피' 소리 들을 정도로 무심해보일지라도, 이제 막 21살에 접어든 신촌 하숙생들보다 조금 더 어른들의 세계를 알고, 그래서 나정이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은 쓰레기의 깊은 뜻을 간파하지 못하는 나정. 결국 윤진(도희 분)은 술기운을 빌려, 나정 대신 쓰레기에게, 어쩌면 나정이 정말로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는 말을 속시원히 털어놓는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먼저 좋다고 고백했는데 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어찌 말이 없데요. 나정이 말로는 오빠가 아무말 안해도 된다고 했는데 아 그래도 저 가스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겠어요. 차라리 싫으면 싫다. 니는 여자로 안보인다. 그러고 딱 잘라 부려요."

 

나정은 모래시계 속 이정재를 가르키며, 묵묵히 뒤에서 지켜주는 사랑, 내를 말없이 바라보는 남자라며 딱 내 이상형이라고 꼬집긴 했지만, 나정 또한 여자다. 정작 그 현실 속 이정재가 자신을 그저 말없이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녀에게 다가와 좋다고 말도 해주고, 삼천포(김성균 분)와 윤진처럼 알콩달콩 사랑을 했으면 하는 소박한 희망. 그녀 또한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정의 현실 속 이정재는 칠봉이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도, 묵묵히 그녀의 뒤에서 지켜주는 사랑. 그래서 칠봉이는 "그래도 고현정도 이정재 쪼매 좋아한 것 같던데요."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그녀를 향한 기약없는 달리기를 이어나간다. 나정이 자신이 아닌 쓰레기만 바라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나정이 좋아해주지 않아도,  묵묵히 뒤에서 지켜주는 사랑을 자처하는 칠봉이 등장에, 오랜 시간 나정을 지켜온 기사로서 한동안 나정의 주위를 말없이 맴돌 것만 같았던 쓰레기는, 나정 앞에만 서면 머뭇거리는 자신과 달리,강렬한 구를 던지는 칠봉의 존재감에 " (곧) 나정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것이라면서." 오랫동안 혼자서만 끙끙 앓았던 사랑을 털어놓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털어놓은 그의 진심은 짖궃은 운명의 장난 하에 그리 쉽게 나정이에게 전달되지 않을 듯하다. 서로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정작 최종 목적지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쓰레기와 나정.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하염없이 가슴앓이하는 칠봉이....

 

.아무리 묵묵히 뒤에서 지켜주는 사랑, 내를 말없이 바라보는 남자가 나정이의 이상형이라고 해도. 그 세 선남선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속은 까마득히 타 들어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시선'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있어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 하지만 미처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거리게 되는 진리를 자연스럽게 되새겨본다. 야구와 마찬가지로 때론 사랑은 묵묵히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닌, 정면 승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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