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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응답하라 1994. 쓰레기와 성나정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예쁜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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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먼저 손 잡아주는 사람. 부푼 꿈을 안고 간 의대 오리엔테이션 첫 날, 서울 출신 선배들의 텃세에 힘겨워하던 tvN <응답하라 1994>의 빙그레(바로 분)에게 쓰레기(정우 분)은 그런 존재였다. 


빙그레뿐만이 아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상한 이 남자. 하지만 이제 그는 만인의 기사가 아닌, 오직 한 여자 성나정(고아라 분)만의 기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성나정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오랜 시간 소중히 담았던 말 한 마디를 꺼낸다. "우리 정이~오빠한테 시집올래?~오빠와 결혼해주세요."





확실히 쓰레기는 여자를 감동시키는 이벤트와는 영 거리가 먼 남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996년 나정의 생일, 평소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한답시고 '거꾸리'라는 운동기구를 선물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쓰레기 아닌가. 물론 쓰레기와 나정이 40대에 접어든 현 2013년이라면, '거꾸리'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겠다만, 1996년 당시 나정은 이제 스무살을 갓 넘긴 꿈많고 낭만이 가득한 소녀다. 나정의 방에 화사한 장미꽃으로 도배하고, 20대 초반 여성이 좋아할 법한 예쁜 선물을 안겨주며 "나정아 사랑해~"라고 외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불혹 넘긴 어른이 되서야 좋아할 법한 '거꾸리'라... 세상 이렇게 낭만 없는 남자가 또 어디있을까. 


하지만 쓰레기의 가장 치명적인 매력을 꼽자면, 무드와 세심함은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무심함 속에서 슬그머니 툭툭 나오는 따뜻한 배려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이 몸에 배였다고하나,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애정표현만은 거침없고 가식 없는 이 남자. 다소 투박해보일 지 몰라도, 나정을 대하는 쓰레기의 마음과 태도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한 때, 점점 동생 아닌 여자로 다가오는 나정과 일부로 거리감을 두던 시절도 있었다. 기사가 되어 작은 공주님을 평생 지키겠다는 소년의 다짐. 쓰레기는 그 맹세에 충실하고자했고, <모래시계>의 이정재처럼 말없이 묵묵히 나정의 그림자가 되겠다고 애써 마음을 다잡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정을 향한 쓰레기의 뜨거운 가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쓰레기는 더 이상 오빠를 가장한 그림자 아닌 남자친구로서 나정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나정과 함께 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비록 병원일에 바빠, 나정의 생일조차 제대로 챙겨주는 날이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같이 살면 지금처럼 불안하지 않을 테니. 그래서 쓰레기는 자신 때문에 힘들어할 날들을 부단히 견뎌야하는 나정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지금 그녀에게 가장 하고픈 말을 시작한다. 





나정에게 쓰레기는 '남자친구' 그 이상 사람이다. 갓난 아기 때부터 친오빠처럼 허물없이 지낸 사이기에, '연인'이라기보다는 '친남매'같은 분위기가 더 익숙한 그들이긴하다. 워낙 서로를 잘 알기에 드러내는 표현은 거칠어도, 묵묵히 서로를 받춰주었던 두 사람. 때론 편안함을 가장한 익숙함이 서로에게 쉽게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박힐 때도 종종 있다. 


그러나 연인이라는 특별한 단어로 관계를 새로 시작한 쓰레기와 나정은 늘 서로를 향해 있었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417km라는 거리도, 무려 1년 이상 떨어져있어야하는 시간도 그들의 굳건한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우리 쓰레기 오빠는 감기도 안 걸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가, 성시원(정은지 분)과의 다툼으로 팔을 다친 쓰레기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나정. 혹시 나정이 자신이 다친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알게되면, 그녀가 걱정할 까봐 어떻게든 자신의 부상소식을 알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쓰레기. 자신의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이는 순간, 병원일이 급해 나가는 쓰레기에 서운함을 약간이라도 내비치기는 커녕, 오히려 빨리 나가라고 보채는 나정. 혼자 생일을 보내야하는 나정에게 너무 미안해,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나정이 있을 집으로 달려오는 쓰레기. 우렁각시처럼 쓰레기가 어지러놓은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아들 병원 찾아가는 길 헤매실까봐, 쓰레기 엄마를 병원까지 모셔온 나정. 어머니 마중을 대신 나가겠다며, 자신에게 흑심을 보이는  레지던트 동기에게 단박에 선을 긋으며, 나정의 남자임을 만천하에 공포한 쓰레기. 





어떤 오해와 유혹이 수없이 쌓일 법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서로를 향한 믿음과 배려를 잃지 않는 쓰레기와 나정. 이미 사랑의 진정한 이치를 몸소 행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그래서 참으로 멋없게도 분위기있는 음악 하나 없이 무미건조한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2층 병원 침대에서 나정에게 결혼해달라고 반지주며, 진한 키스로 마무리하는 쓰레기의 청혼은 세상 그 어떤 로맨틱하다는 프로포즈보다 가슴을 울리는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 





물론 남은 4회동안, <응답하라 1994>의 제작진은 쓰레기와 나정의 사이를 곱게 가만히 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겉으로는 틱틱 거려도,  서로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묵묵히 지켜봐줄 수 있는 사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쓰레기와 나정.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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