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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왕가네식구들 43회. 고민중을 놓지 못하는 이앙금의 삐뚤어진 모성애가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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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아내였던 왕수박(오현경 분) 때문에 하루 아침에 거리에 내앉은 처가 식구들,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던 고민중(조성하 분)은 수박의 자신과 결혼 전 동거 사실을 우연히 듣고 단박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일생을 함께할 반려자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모자라, 과거까지 숨긴 아내 왕수박. 더 이상 고민중에게는 왕수박과 부부로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말의 신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왕수박에게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고 하나,  미우나 고우나 아이들 엄마 아닌가. 우연히 사업 파트너와 함께 수박이 일하는 식당을 찾은 민중은 그곳에서 일하는 수박을 보고 놀란다. 수박 역시 민중의 등장이 당혹스럽다. 그래도 지난날처럼 친구들이 식당에 왔을 때는, "저 수박 아니예요" 하면서 딱 잡아 뗄 수 있었지만, 전 남편 앞에서는 표정관리조차 쉽지 않다. 


적지 않은 충격에 민중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반찬조차 제대로 올려놓지 못하는 수박. 자연스레 식당 사장의 언성은 높아져만 간다. 생전 설거지조차 안했던 전처의 고생이 자꾸만 밟히던 민중. 사장에게 다가가 수박이 하루 받는 일당을 건내며 휴가를 달라고 부탁한다. 





민중이 연이은 실수에 식당 사장에게 쓴소리를 듣는 수박의 흑기사를 자청한 것은, 다시 수박을 향한 애정이 꿈틀거려서가 아니다. 이미 민중은 십수년만에 재회한 첫사랑 오순정(김희정 분)에게 완전히 마음을 돌린 지 오래다. 


수박과 다르게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헌신을 베풀 수 있는 순정의 도움 덕분에 민중은 모처럼 만에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만나면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는 민중과 순정. 이별의 아픔을 딛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연인이 된 두 사람의 사랑이더욱 아름다운 이유다. 





하지만 수박의 엄마 이앙금 여사(김해숙 분)은 이제 수박과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린 민중의 존재가 너무나도 아쉽다. 사업 망해서 처가에 눌러앉은 민중을 구박할 때는 언제고,  왕수박 때문에 집이 송두리째 날라가다보니 다시 재기에 성공한 전 사위 민중을 놓치기가 아까운가보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난지 오래다. 아무리 딸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라고 좋게 보려고 해도 딸과 이혼한 전 사위가 혼자 살고 있는 옥탑방까지 몰래 들어가 살림해주는 여자가 있다고 분개하는 모습은 사뭇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나저나 문도 안 잠그고 사는 대범하신 고민중님...)


'막장'이라고 종종 비판을 받긴 하지만, 아예 막장의 새 역사를 창조한 임성한 작가와 달리  KBS 주말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문영남 작가는 명확한 선악 구분에 따른 인과응보가 명확한 편이다. <애정의 조건>을 시작으로 <조강지처 클럽>, <수상한 삼형제>까지.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에는 불륜이 자주 등장했었다.  배우자의 헌신을 뒤로하고 바람을 피운 이들에게는 응당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치루게 한다. 그리고 불륜으로 패가망신한 주인공은 배우자의 용서 하에 다시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존 문영남 드라마와는 다르게 남자가 아닌 여자가 바람을 피운 고민중-왕수박은 왕수박의 몰락으로 불륜의 최후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어떻게던 딸을 다시 전 사위와 엮이게하려는 이앙금 여사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민중-왕수박의 재결합은 어려울 듯하다. 


고민중-왕수박 외에도 남편의 불륜으로 파경 직전까지간 왕호박(이태란 분)-허세달(오만석 분)을 끝내 봉합시킨 전적이 있는 <왕가네 식구들>인만큼, 고민중-왕수박의 재결합도 전혀 가능성 없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여전히 민중은 이앙금 여사의 전화 한 통에 순정과의 저녁 약속을 취소할 정도로 자신들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전 처가 식구들과 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호박에게 버림받고, 심지어 불륜 상대였던 여자에게 차이고 오 갈데 없던 세달과 달리 민중은 순정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수박보다 더 민중에게 잘 어울리고, 묵묵히 그의 인생에 큰 힘이 되어줄 더 좋은 여자를 만났는데, 단지 옛 정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억지로 전 처와 다시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앙금 여사는 자신의 딸과 완전히 갈라선 민중을 여전히 자신의 사위처럼 대한다. 아무리 한 때 사위였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자신들의 외손주 친아버지일 뿐인 민중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자세가 전혀 없다. 


그런데 만약 민중이 재기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택배기사로 살고 있었다면, 아니 자신들의 집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왕수박과 왕수박 식구들 집을 들고 도주한 허우대가 사기꾼이 아닌 돈 잘버는 사업가였다면 이앙금 여사가 이렇게까지 민중과 수박의 재결합에 열을 올렸을까? 





평생 이앙금의 구박만 받고 자란 호박이 덕분에 간신히 왕봉(장용 분)의 대가족이 다리뻗고 누울 집을 구했음에도 불구, 이앙금 여사는 여전히 호박이가 못마땅스럽고 집을 사기꾼에게 도매급으로 넘긴 수박이만 안쓰럽고 전 남편을 배려해서 자리까지 비운 수박이의 깊은 속내만 기특하다. 


오매불망 큰 딸 수박밖에 모르는 이앙금 여사는 수박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민중에게 강조한다. 어떤 여자들을 사채빚까지 써가면서 명품 사는데, 그래도 그런 여자들보단 수박이 낫지 않나면서. 하지만 그보다 더 허영심이 심했던 여자가 다름아닌 수박 아니었던가. 아직도 이앙금 여사는 자신의 딸을 잘 모른다. 그저 자신의 딸 수박이를 위해서 타인의 행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앙금의 삐뚤어진 모성애. 아무래도 이앙금 여사가 현실을 직시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7회만에 모든 것을 뉘우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들 하하호호 용서하며 잘 지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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