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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부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모두가 주인공인 특별한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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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4일.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무료 병원에서 척추마비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가 사라진 사건이 발생한다. 최병호를 앞세운 연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촬영을 통해 기부금을 마련하고자 했던 새로운 병원장 베드로 신부는 방송 당일 발생한 최병호 실종에 당황해한다. 


어떻게든 최병호를 찾아 방송국 카메라 앞에 내세워야하는 베드로는 같은 병실 환자 정숙자, 이길례, 그리고 병원 의사 닥터리, 자원봉사자인 김정연을 차례로 만나 최병호의 행방을 추적하고자 한다. 하지만 최병호가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은 환자들은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만 할 뿐, 베드로가 정말로 알고 싶은 최병호의 종적은 묘연하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2005년 초연 이래 지난 9년 동안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 창작 뮤지컬이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가 오랜 세월 꾸준히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는 탄탄한 스토리이다. 최병호 실종 사건으로 막을 올리며, 병원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가 사라진 이유를 역추적하는 이야기는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어느 특정 주인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모든 캐릭터를 비중있게 다루는 것도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최병호의 행적을 추적하면서도, 병원에 있는 환자, 의사, 신부, 자원봉사자의 사연을 짜임새있게 펼쳐내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출연 배우 7명 모두 주인공이며, 저마다의 이야기로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닥터리가 이길례, 정숙자의 옛날 사랑이 되기도 하고, 순결한 자원봉사자로 등장한 김정연이 화려한 쇼걸 군무에서 빼어난 춤을 추는 등 한 배우가 여러 역할을 두루 소화해내는 것도, 즐거운 볼거리 중 하나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이면을 관통하는 뮤지컬이기도 하다. 노인성 치매로 병원에 입원한 이길례 할머니는 6.25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유증으로 자살을 택한 남편의 죽음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상류층 남성들에게 웃음을 파는 쇼걸이었던 정숙자는 매일 술로 외로움을 달랜다. IMF 이후 집안의 몰락 이후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뿔뿔이 흩어졌지만, 하반신이 마비된 채 병원으로 실러온 최병호의 사연은 더 극적이다. 경제 위기로 병원을 후원하는 손길이 부족하여 환자들의 방송 출연을 통해 운영금을 충당할 수밖에 없는 병원의 사정은 더 처절하다. 


하지만 병원과 방송국 등 보통의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세상이 버린 불쌍한 사람들로만 생각할 뿐,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고도, 그들의 진짜 아픔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은 마냥 씁쓸한 뮤지컬이 아니다.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품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며 즐겁게 인생을 살고자하는 환자들을 통해 따뜻한 희망을 보여준다. 2005년 겨울처럼, 2014년의 겨울 또한 여전히 춥고 경제 불황의 늪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년 공연을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레퍼런스를 보여주긴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과 그 속에서 공감과 위로를 안겨주는 따뜻한 온기. 무려 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 당신이 잠든 사이>가 매년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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