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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밀회 3회. 김희애, 유아인 키스보다 위험한 중산층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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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예술재단 기획 실장, 유명 음대 교수의 아내, 기품이 흐르는 우아한 미모.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JTBC 월화드라마 <밀회> 주인공 오혜원(김희애 분)의 일상은 완벽하다. 지난 24일 방영한 <밀회> 3회까지 드러난 오혜원의 이력을 간략하게 종합해보자만,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될 법도 하다. 상사인 서한 예술재단 이사장 한성숙(심혜진 분)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고, 결혼 생활 또한 비교적 안정적이다. 





이는 가치 이전에 고도의 생존 매뉴얼이라는 윤리 도덕을 굳건히 지켜가며 필사적으로 달려온 오혜원의 노력이 이룬 결실이다. 힘들게 올라간 자리인만큼, 그동안 자신이 이루어왔던 것을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혜원은 한 단계 높이 올라갈 때마다 더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피아노 천재 이선재(유아인 분)을 만난 이후, 그녀의 완벽했던 일상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대다수 서민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부러운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오혜원이라고 하나, 그녀 역시 상류층의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다. 말이 좋아 기획실장이지 실상은 한성숙 개인 비서에 가까운 오혜원은 고급 호스티스 출신의 한성숙의 음악, 미술 과외 선생님이자, 한성숙의 치부까지 감춰주는 온갖 일까지 도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때 자신이 모시던 서한 그룹 딸 서영우(김혜은 분)의 응석까지 받아주는 것도 오혜원의 몫이다. 오혜원의 내조 덕분에 음대 교수 자리에 오른 남편 강준형(박혁권 분)은 대외적인 젠틀한 이미지와 달리 속물근성 강한 떼쟁이에 가깝다. 





서영우와 함께 술을 진탕 마셔도, 처리할 업무가 남아 있어 취하지도 못한다는 오혜원은 항상 대기상태다. 집에 있다가도 한성숙, 서영우의 호출이 있으면 즉각 달려가야하는 오혜원은 한 시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그럼에도 오혜원이 매일매일 피말리는 서한 예술재단 기획실장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서영우처럼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지 못한 오혜원이 지금 이상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아무리 더럽고 치사한 일을 만나도 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깔끔하게 임무를 완수해야한다. 그래서 오혜원은 서한 그룹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에 슬립만 입고 오는 대형 실수를 벌이더라도 절대로 서한 예술 재단의 기획실장 자리를 놓지 못한다. 


예술계를 배경으로 한 멜로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지만, <밀회>는 그 어떤 미스터리 스릴러보다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다가온다. 설정만으로 화제를 모은 40대 커리어우먼과 20대 피아노 천재의 위험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빠른 전개를 추구하는 드라마답게,  한순간에 서로에게 달아오른 혜원과 선재는 불과 방영 3회만에 뜨거운 키스를 나눴고 4회 예고를 통해 앞으로 심상치 않은 사이로 전개될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밀회>를 자식뻘 연하 꽃미남에게 빠져버린, 미모의 중산층 여성의 일탈을 담긴 드라마로만 단정짓기에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흥미로운 요소가 여러군데 존재한다. 


<밀회>는 음악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천재성을 가진 이선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음대 입시 비리 의혹을 감추고자 하는 서한 음대 교수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뛰어난 실력은 기본, 정직하기까지 한 동료 음대 교수에게 위기 의식을 느낀 나머지, 학교 내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음대 비리 세력에 줄을 대는 강준형을 통해서는 흡사 예술계 판 <하얀거탑>을 보는 듯하다. 이선재, 지민우(신지호 분) 등 재능있는 피아니스트를 키우는 것으로 부도덕한 그룹 이미지를 개선하고자하는 서한 그룹의 이중성 또한 흥미진진하다. 


예술을 사랑하는 고귀한 이미지로 잔뜩 포장했지만, 실상은 속 빈 강정보다도 더 추악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 20살 나이를 초월한 두 남녀의 사랑보다, 서서히 우아한 가면을 벗고 진정한 민낯을 드러낼 서한 그룹과 서한 음대 사람들의 불안한 속내를 엿보는 재미가 쏠깃한 드라마 <밀회>.  <아내의 자격> 이후 중산층 여성의 일탈을 소재로 중산층의 이중성을 부드럽게 꼬집는 안판석 감독의 선택은 역시나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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