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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명량. 불세출의 영웅보다 희생의 리더십 보여준 이순신 신드롬은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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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개봉한 영화 <명량>의 흥행 기세가 무섭다. 





개봉 당일 역대 오프닝 최대 관객수(68만명,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를 기록한 <명량>은 지난 5일, 개봉 7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일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수립 중이다. 


올해 개봉작 중에서도 최고 기대작이었던 <명량>이 연일 수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분명 스크린 독과점의 혜택 덕분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또다른 한국형 해양 블록버스터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첫 선을 보이는 개봉 둘째주에도 60%에 육박하는 예매율을 과시하며, 좌석점유율 또한 60%에 웃도는 결과(8월 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를 보여주는 것은, <명량>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상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올해 극장가 최대 블랙홀로 입지를 제대로 굳힌 명량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단순한 내러티브와 캐릭터를 상쇄하는 스펙터클과 묵직한 정공법 


엄연히 말하면, <명량>은 믿고보는 연기의 신 최민식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손꼽는 위인인 이순신을 연기를 한다는 것만으로 궁금증을 유발하던 영화였다. 거기에다가 2011년 <최종병기 활>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장을 연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종병기 활>에서 악역으로 주목을 받은 이후 충무로에서 제일 잘나가는 남자가 된 류승룡과, 한국 영화 최고의 씬스틸러에서 <끝까지 간다>로 흥행 주연배우로 우뚝선 조진웅이  각각 해적왕 구루지마, 왜군 장수 와키자카로 출연한다. 


그런데 류승룡, 조진웅, 진구, 이정현 등 한국 영화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즐비함에도 불구, <명량>은 오직 최민식이 맡은 이순신에 초점을 맞춘다. 이순신을 제외한 나머지 배역들은 이순신이 맞서 싸워야할 적, 조력자로 압축된다. 이순신 외의 캐릭터들의 비중을 최소화하는 대신, 아군조차 등을 돌려 외롭게 왜군과 맞서 싸우는 이순신의 피로함과 고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같은 대승을 이끌었던 명량대첩(해전,1597년)에 집중한다. (영화 속에서 이순신의 가장 강력한 적(?)인 구루지마조차 자신의 동생을 죽인 이순신에게 원한을 품고, 왜군 장수들에게 집중 견제를 당하고 있다 정도만 은연 중에 드러날 뿐이다. 그나마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임준영(진구 분)과 정씨 여인(이정현 분)의 짧지만 강렬한 애틋한 사연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순신과 명량해전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기 때문에, 영화의 내러티브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심지어 역사가 스포일러인지라, 결말까지 훤히 드러난다. 한국 관객이라면 모두다 알고 있는 사실인만큼, 작가의 상상력보다 실제 일어난 사건에 입각하여 극을 구성해야하는 이 영화는 잔재주를 부리는 대신, 묵직한 정공법을 택한다. 


<명량>에는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머코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힘겨운 전투가 끝나고, 승리의 주역인 조선 병사들이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힘이 덜 들어간 씬이라고 하나, 이 또한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후손들이 알까?” 하는 대사에서 고개가 절로 숙연해진다. (이것은 호로자식이 아니라는 일종의 방증이기도 하다). 





결과만 놓고보면 세계 해전사에도 전무한 최고의 승전보라고 하나, 고작 배12척으로 330척의 왜군을 무찌른 힘겨운 과정이었던만큼, 영화는 2시간 러닝타임 내내 비장하고 묵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명량>은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진다. 전반부 한시간 가량, 왜군은 물론이거니와, 패배의 두려움에 자신을 믿고 따르지 않는 장수들과 군사들,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힘겹게 싸우는 이순신의 좌절과 고난이 드러난다면, 나머지 한 시간은 우리가 잘 아는 명량대첩이 펼쳐진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흔치 않다는 실제 해양 전투신이 스펙타클하게 벌어지는 <명량>은 전투신 자체의 완성도만 놓고 봐도 수준급이다. 그러나 일종의 상상력이 가미된 재연이긴 하지만, 역사책에서만 본 명량대첩을 눈으로 본다는 것만으로도 극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더욱 배가가 된다. 


최민식을 통해 재해석된 이순신. 우리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의 진수를 보여주다. 


 <명량>이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유발한 것은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실존 인물이 안겨주는 힘이기도 하다. 이순신은 성웅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세종대왕과 더불어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늘 이순신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왔고, 이순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2001년 발간한 공전의 베스트셀러 김훈의 <칼의 노래>가 있었고, 2004년에는 배우 김명민을 자타공인 연기본좌 반열에 오르게한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 이순신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은 이순신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반대로, 워낙 뛰어난 인물이고 이순신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대중들이 많은 만큼,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이순신을 해석하는 눈이 엄격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순신의 명성과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잘 만들어야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도 뒤따른다. 오죽하면 이순신 역을 맡은 최민식이 언론 시사회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완벽한 존재앞에서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완벽한 장군에게서 사람의 모습을 찾고자 집착했다는 이 당대 최고의 배우는 끝내 모두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50대의 이순신으로 재탄생한다. 모함에 의해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고된 백의종군 끝에 간신히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이순신은 이제 전투에 나가기엔 몸과 마음 모두 지쳐보인다. 설상가상 칠천량전투(1597년) 패배 이후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는 조선군은 장수들조차 왜의 수군과 맞서 싸우길 거부한다. 


배12척으로 왜군 300여 척을 막아야하는 절체절명 위기에 모자라,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군사들의 동요까지 잠재워야하는 이순신. 오히려 그에게는 눈에 훤히 드러나는 왜군과의 싸움보다 그를 믿지 못하는 휘하 장수들과의 보이지 않은 알력들이 더 힘겨워보인다. 이름만 들어도 왜군을 벌벌 떨게하는 전설의 장군이라고하나, 잔혹한 고문으로 심신이 상할대로 상하고, 그의 최고 무기였던 구선(거북선)까지 장수 배설(김원해 분)의 반란으로 잃어버린 이순신이 감당하기에 한없이 버거운 짐이다. 







아들 이회(권율 분)의 말처럼,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릇 장수된 자는 충을 따르고, 충은 백성을 향하고,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임금이 있다.”는 백발의 장수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운다. 


모두가 불가능한 전쟁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며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선봉에 나선 노장의 ‘필생즉사 필사즉생’의 정신은 조선 수군에 만연한 두려움의 바이러스를 용기로 바꾸는데 대성공을 거둔다. 





이순신 또한 명량해전 직전, 자신의 군명에 저항하는 장수와 군사를 엄중이 군법에 다스리는 방식으로 칠천량패배 이후 혼란에 빠진 조선 수군을 통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무조건 왕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인물도, 그렇다고 아랫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고, 질책만 하는 리더가 아니었다. 


왜군의 칼에 죽을까 두려워 뒤로 숨는 장수들을 탓하는 대신, 백성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몸소 왜군과 맞서는 이순신의 솔선수범은 그에게 등을 돌린 겁많은 군사들마저 한마음 한 뜻으로 용맹하게 싸우게한다. 오랜 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잃고 고통받는 백성들도 이순신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충은 백성으로 향해야 할 정도로,  진짜 백성을 사랑한 위대한 장군 이순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도처에 만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용기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 불세출의 영웅이 아닌, 자기희생의 리더십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량>으로 시작된 2014년 이순신 신드롬은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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