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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족구왕. 족구로 대학을 평정한 유쾌한 청춘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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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왕>. 제목 그대로, 족구 하나로 군대는 물론 대학까지 평정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자마자 학교에 복학한 홍만섭(안재홍 분)은 겉모습만 놓고 보면 다른 복학생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복학생이다. 보통 또래 여대생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와 매력을 갖춘 것도 아니고, 학자금 대출 이자가 연체되어 학교까지 잘릴 판국이다. 설상가상 학점도 좋지 않다. 이쯤되면 요즘 수많은 대학생들이 그렇듯이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섭의 머릿 속에는 온통 연애와 족구 생각뿐이다. 


바늘 구멍 뚫기보다 어렵다는 취업과 나날이 치솟는 대학 등록금 때문에 낭만과 활기를 잃은 지 오래인 2014년 대학 캠퍼스에서 당당하게 '족구'를 외치는 만섭의 존재는 상당히 엉뚱하게 다가온다. 오히려 만섭에게 공무원 시험 준비를 종용하는, 공무원 시험 3년차 선배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만섭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길. 가야한다고 믿는 길을 걷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가슴이 끌리는 대로 움직이고 실행에 옮긴다. 다른 학생들이 총장과의 대화에서 등록금과 취업을 걱정할 때 나홀로 족구장 타령을 할 때도, 이미 전직 축구국가대표 출신 훈남 강민(정우석 분)과 제대로 썸타고 있던 학교 최고의 퀸카 서안나(황승언 분)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때도 만섭은 거침이 없다. 


어떤 이는 이러한 만섭에게 족구에 매달릴 때가 아니라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물음에  만섭은 이렇게 답한다. "자신이 시대에 뒤쳐진다고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감추는 것이 더 바보같아요” 





남들이 자신을 두고 뭐라고 하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몰두한 만섭의 열렬한 족구 사랑은  지루하기만 했던 대학 캠퍼스에 작지만 큰 변화를 가져온다. 소림축구를 연상케하는 현란한 기술로 전직 축구국가대표까지 무릎을 꿇게한 만섭의 족구 경기를 지켜본 학생들은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족구 열풍에 휩싸이게 되고,  생기가 없던 캠퍼스는 활기를 되찾게 된다. 


족구 하나로 무기력한 다수의 일상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의 무용담은 마치 또다른 판타지를 보는 기분이다. 실제로 <족구왕>은 주인공 만섭의 캐릭터 설정에 있어  <터미네이터>, <백 투 더 퓨처> 등 SF의 고전이라 불리는 영화들의 레퍼런스를 적극 활용하여,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주인공 만섭을 제외하곤 딱히 족구에 재능이 없는 식품영양학과 팀원들의 면면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뛰어난 스펙도 없고, 그렇다고 준수한 외모와 부유한 집안을 갖춘 것도 아닌 이들의 조화는 ‘잉여’에 가깝다. 설상가상 다른 팀원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오히려 민폐만 끼치는 이미래(황미영 분) 같은 팀원도 있다. 하지만 만섭은 괜찮다면서 미래를 너그러운 웃음으로 받아준다. 그리고 현실의 냉혹한 기준에서 낙오자라고 취급받았던 이들의 건전한 반란은 유쾌한 희망으로 귀결된다. 


만섭의 말처럼 세상에는 어떤 명확한 기준도,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잠시라도 흠뻑 빠져보는 것. 그것이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특권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단 몇 시간이라도 힘껏 족구를 하는 여유마저 여의치 않다. 





그래서 살얼음같은 취업 전선 한복판에서 독야청청 ‘족구’를 외치는 만섭의 존재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씨네21’의 이화정 기자의 한 줄 평처럼 취업 성공으로 대다수 청춘들의 목표가 획일화되어버린 2014년 대한민국에는 만섭처럼 ‘족구’ 따위 고민하는 청춘도 필요하다. 


덧) 영화 <족구왕>은 2013년 개봉작 <1999, 면회>를 만든 광화문 시네마의 두 번째 작품이다. <1999, 면회>의 김태곤 감독이 기획 각본에 참여하였고, <1999, 면회>에서 미술감독으로 참여한 우문기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 <족구왕>에서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 블록버스터 부럽지 않은 뛰어난 CG와 빼어난 영상 감각을 선사한다. <1999, 면회>팀이 다시 의기투합한 영화인만큼 <1999, 면회>에 출연하였던 주요 배우들이 곳곳에 등장하는데, 지난해 <1999, 면회>를 인상깊게 보았던 관객들에게는 놓치지 말아야할 또 다른 즐거움이다. 8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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