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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무한도전 토토가. 90년대로의 완벽한 귀환. 시대의 위로로 다가온 최고의 추억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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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IMF 이후 힘든 나날을 보내는 동안, 행여나 세기말 우리가 사는 지구가 망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도, HOT, 젝스키스, 신화, SES, 핑클 등 잘생기고 예쁜 오빠, 언니들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던 소녀들은 16년 후, 젝스키스에서 가장 수줍음 많던 장수원 오빠가 마치 자로 반듯하게 잰 거 같은 로보트 연기를 선보일 것이라는 걸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덧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흥이 나는 SES 슈는 90년대 말 깜찍한 요정 슈만 기억하던 뭇 남성팬들에게 어,머,니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한다. 하지만 슈가 엄마가 되었다는 것에 한숨을 쉬는 이들도 어느덧 부모 혹은 삼촌, 이모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 참 가는 세월이 야속하다. 





지난 3일, 지난주에 연이어 방영한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무한도전-토토가>)는 김종국을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에서 맹활약하는 힘센 능력자뿐만 아니라, 터보의 김종국으로도 기억하고 있고, 여배우 엄정화, 이정현도 좋아하지만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는 퍼포먼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엄정화, 이정현을 그리워하는 세대들을 위해(같은 맥락으로 지누션의 션을 사회봉사자로만 보지 않는) 특별 기획된 가요쇼였다. 90년대 인기있었던 가수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다는 <무한도전-토토가> 특집 특성상 자연스레 현 30-40대들이 학창 시절, 혹은 청년 시절 즐겨듣고 좋아했던 노래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중년의 문턱에 들어선 세대들이 그들이 청년이었을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들으면서, 옛 추억을 더듬게 하는 시도는 많았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브랜드화된 ‘7080’ 콘서트도 그랬고, 2010, 2011년 방영하여 전국에 ‘세시봉’ 열풍을 일으킨 MBC <놀러와-세시봉편>도 있었다. 1995년 당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부르며 스스로를 ‘X세대’라고 규정했던 70년대 태생들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으니, 그들이 20대 때 즐겨들었던 노래로 20년 전 아름다웠던 시절을 반추하는 것도 이전 세대들과 비교했을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런데 단순히 90년대 대중가요의 가사와 멜로디를 공유하는 7080년대 태생들만의 향수 자극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2014년 말,  2015년 정초부터 대한민국 대중문화계를 들썩이게한  특급쇼로 각광받는 <무한도전-토토가>의 대히트에는 복고, 추억 그 이상의 현상이 있는 것 같다. 이는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 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제작과 흥행에도 비춰졌듯이, 현 대한민국 대중문화 트렌드를 만들고, 이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세대가 90년대 청춘을 보낸 이들이라는 점도 있다. 


그리고 아이돌 시장 중심의 획일화된 현 음악시장을 향한 일종의 피로 누적이 다양한 장르가 골고루 인기를 끌었던 90년대 음악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는 해석도 있다.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빠른 비트가 돋보이는 ‘잘못된 만남’이 수록된 김건모의 3집이 무려 260만 장이 팔리는 대기록을 수립하던 와중에도 지금은 애석하게도 고인이 된 고 신해철이 이끄는 록그룹 넥스트가 당당히 대중음악계 주류를 차지하고, 90년대 말 10대 소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HOT가 당시 가요계 전체를 휩쓸 기세였음에도 불구, 중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던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가 가요 대상을 받았던. 1990년대는 쿨의 하우스 댄스, 조성모의 발라드, 넥스트와 부활의 록, 지누션의 힙합은 물론, 아이돌 노래와 트로트 모두가 비교적 사이좋게 공존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물론 90년대와 비교했을 때, 2010년대 대중가요는 더 많은 장르가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한층 더 세련되어졌다. 그런데 90년대 대중 음악을 접했던 현 30, 40대 대다수는 그럼에도 불구 20여년 전 노래들과 비교해서 들을 노래가 없다고 한다. 늘어나는 나이 탓에 조카 혹은 자녀들 세대에 맞는 음악을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는 푸념일 수도 있고, 원래 나이가 들 수록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속성상 찬란했던 시절 자신과 함께 했던 노래들이 그립고, 더 찾게되곤 한다. 





그러나 어느덧 중년이 된 70년대 초중반들은 그렇다쳐도, 이제 겨우 30대에 접어든 80년대 생들은 20여년 전 유행했던 노래들을 들으면서 옛 추억을 감회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아직 청춘이고, 그동안 쌓인 추억보다 쌓을 추억이 더 많은 나이들 아닌가. 그런데 놀랍게도 97년 당시 HOT와 젝스키스 팬으로 극렬하게 나뉘며, 피튀기는 양대산맥을 형성했던 80년대 초반 태생들은 이미 지금보다 더 어리던 3년 전, tvN <응답하라 1997>로 1997년 이전 자신들의 사춘기 시절을 소환시킨다. 


90년대 중후반부터 크게 확산되었던 팬덤 문화를 통해 90년대, 2000년대를 돌아보고자했던 <응답하라 1997>이 1997년대 부산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은, 1996년 데뷔한 HOT와 이듬해 데뷔한 젝스키스의 각 팬들이 처음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상징적 의미도 크다. 하지만 1997년을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에게 1997은 마냥 10대들 스스로 만든 아이돌 문화를 뿌듯하게 기억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열심히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한순간에 꺽어버린, 그리 기억하고 싶은 악몽같은 한해였다. 





세상물정 아무런 걱정 없이 오빠들 1위에 목숨걸던 철없던 소녀들이 행여나 우리가족 모두 거리에 나앉이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세기말. 그녀들에게 오빠들의 노래, 그리고 그 당시 TV, 라디오, 거리에 흘려나왔던 신나는 음악들은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는 최고의 특효약이었다. 이는, 90년대 중반부터 섹시스타였던 이본, 엄정화, 1997년 이후 가요계에 등장한 SES, 핑클, 이정현, 김현정, 소찬휘 등에 열광하던 당시 젊은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IMF 후폭풍으로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90년대 말에는 우리나라가 다시 좋아지고, 국민 모두 잘 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90년대 대중문화 최고의 아이콘이었던 김건모가 그동안 받은 수많은 트로피에서 순금을 빼서 금모으기 운동에 쾌척하는 모범을 보였고(정작 김건모 본인은 2014년 12월 20일 방영한 <무한도전-토토가>에서 당시 자신은 금을 완전히 헌납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지만), IMF가 터진 2년 뒤 1999년에는 대한민국 가요 역사상 유례없이, 이선희, 김건모, 신승훈 등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민 모두 힘을 모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하나되어’를 목놓아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다행스럽게도 외환관리 위기는 극복했지만,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97년 직후보다 더 팍팍하다. 특히나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를 보내던 97년 당시, 다니던 일터를 평생 직장으로 알던 아버지들이 속수무책으로 해고되는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는 지금의 30대들은 IMF 이후 계속 좁아지고 불안정해지는 고용 시장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계약 연장은 커녕, 계약 기간 보장조차 장담못하는 비정규직도 많고, 운좋게 정규직이 되어도 치솟는 물가에 대학 등록금로 쌓인 대출이자 때문에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겁다. 그래서 현 30대 초반을  ‘88만원 세대’, ‘삼포(연애, 결혼, 육아 포기)세대’로 규정하기도 한다. 


허나 80년대 초, 중반 태생, 즉 30대 초중반들만 힘든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야할 당시 IMF 직격탄을 맞은 70년대생들도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어렵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노동 시장이 앞으로 더 유연화되어질 것을 예고하는 2015년. 어떻게든 다니는 일터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거리고, 실날같은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며, 계약직의 설움을 꿋꿋이 이겨내는 이 시대의 미생들에게, <무한도전-토토가>는 터보의 ‘트위스트 킹’의 신나는 멜로디에 맞춰 세상 속에 답답했던 일 잠시나마 벗어던지고 함께 춤을 출 것을 권한다. 





"매일 지친 하루의 두려움, 나를 힘겹게 할 때면 사랑하는 연인들의 입맞춤보다 더 짜릿한 춤을 춰봐”


1996년  ‘트위스트 킹’ 발표 당시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2014년, 터보 당사자들은 물론, 김정남, 김종국 터보 원년 멤버를 기억하는 팬들이 두 사람이 터보의 이름으로 18년 만에 한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감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19년 전에도 그랬듯이, ‘트위스트 킹’은 음악만 들어도 몸을 절로 흔들게 하는 파이팅 넘치는 댄스 음악이다. 여기에 터보 탈퇴 이후 힘겹게 살았지만 <무한도전-토토가>로 보란듯이 건재함을 과시한 김정남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19년 만에 ‘트위스트 킹’을 다시 듣게된 이의 지친 마음이 교차되는 순간, 어느덧 ‘트위스트 킹’은 1997년 이후 쭉 고된 나날들을 이어갔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잘 살아온 청춘들을 힘차게 위로하고 응원하는 노래로 다가온다. 


비단 ‘트위스트 킹’ 뿐만 아니라,  우리가 90년대 그 시절 사랑했고, 가장 화려했던 황금기를 같이 보냈고, 함께했기에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한 가수들을 오랜만에 보고,  그들의 노래와 춤을 따라 부르고, 몸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시간들. 





<무한도전-토토가> 덕분에 되돌아갈 수 있었던 90년대 추억여행은 유독 따뜻하고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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