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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응답하라 1988. 정겨운 골목길 풍경과 함께 떠올려지는 그 시절 따뜻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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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은 80년대 중후반, 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당시 대한민국 전역을 떠들썩하게했던 88서울올림픽? 대학가요제에 혜성처럼 나타나 1988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어버린 신해철? 







1988년은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에게 미지의 세계다. 분명 그 때 이웃집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목이 터져라 ‘손에 손잡고’를 불렀다는 엄마의 목격담과 그걸 뒷받침해주는 사진들이 있긴 하지만, 도무지 내 기억에서 1988년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무의식 저 건너편 아래로 흐릿하게 사라져버린 내 유년시절이다. 


그래서 지난 6일 방영한 tvN <응답하라 1988>은 생소 그 자체였다. 어릴 적 주택이 빼곡히 밀집되어있는 주택가에 살아서 <응답하라 1988>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쌍문동 골목길은 그리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프닝 당시 쌍문동 골목 친구 5인방들이 엄마의 심부름으로 서로의 집에 반찬 배달을 나서는 장면은 약간 충격에 가까웠다. 




물론 지금도 아파트에서 산다고 한들, 아주 가깝게 지내는 이웃 사람들끼리 음식도 나눠먹고 찬거리도 교환한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이 쌍문동 골목 친구 5인방의 반찬 심부름 씬을 통해 말하고자 한 건, "그 때는 이웃들끼리 서로 반찬을 나눠먹는 풍습이 있었다.” 만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간에 사라진 ‘정’. <응답하라 1988>은 지금은 보기 드문 화기애애하고 정겨운 골목길 풍경을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있었다. 





성동일, 이일화의 둘째딸 성덕선(혜리 분)이 88 서울 올림픽 피켓걸로 TV 화면에 등장했을 때, 성동일, 이일화의 집뿐만 아니라 쌍문동 골목길에 사는 이웃들 모두 마치 내 아들, 딸이 올림픽 피켓걸이 된 것 마냥, 내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또한 주인집인 김성균,라미란 가족과 반지하에 세들어사는 성동일, 이일화 가족은 서로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꿰뚫을 정도로 끈끈한 관계를 자랑한다. 


그렇다고 1988년이 이웃들간의 갈등이 아예 없을 정도로 마냥 훈훈하기만 했던 시절은 아니었다.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빈부격차가 본격적으로 사회문제로 표면화되던 시기였고, <응답하라 1988>은 이 모순된 당대 세태를 윗집에서 호화롭게 사는 김성균네, 단칸방에서 어렵게 사는 성동일네로 압축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성동일네 가족과 김성균의 가족은 주인 의식, 세들어 산다는 피해 의식 전혀 없이 하하호호 각별하게 잘 지낸다.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싶으면, 바로 ‘갑질’ 모드가 횡행하는 2015년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1988년은 분명 서울 올림픽으로 기억되는 한 해였다. 한국전쟁의 폐해를 딛고 조국근대화의 신화를 이룩하여 끝내 지구인 모두가 지켜보는 전세계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자부심. 그러나 88 서울올림픽의 개막식이 열린 1988년 9월,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첫 회의 문을 연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은 88 서울 올림픽이 아니었다. 


콩 한 쪽도 나눠먹는 사람들간의 정, 누군가의 안색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마치 내 일처럼 걱정해주는 분위기. 지금 같으면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땐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걱정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었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와는 달리, 기억도 나지 않는 <응답하라 1988>에 격한 공감을 느낄 순 없었지만, <응답하라 1988>이 요근래 보았던 어떤 드라마, 영화보다 따뜻하게 느껴진 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정겨운 골목길 풍경에 있었다. 





그래도 그 때는 빚보증을 잘못 서 반지하방에서 살아도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도 넉넉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가 가진 재산,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식의 직업도 결정된다는 수저계급론 사회, 혹은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2015년 ‘헬조선’에게 그래도 꿈과 희망이 있었던 1988년 대한민국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 시절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느릿느릿한 흐름 속에서 지금은 잊혀진 사람과 사람 간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려내고자하는 <응답하라 1988>의 첫 회가 2015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유독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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