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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비정상회담. 유시민의 명쾌한 ‘PR’ 강의로 돌아본 한국 사회의 웃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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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은 굉장히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었다. 사안에 대한 논리적인 접근을 근거로, 명쾌한 해석을 내릴 줄 아는 그의 능력은 누군가에게는 톡 쏘는 사이다로 다가 왔겠지만,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직설적인 언변은 여러 차례 세간의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그랬던 유시민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작가로 전업을 하더니, 확실히 작가 유시민은 정치인 유시민보다 한층 부드러워졌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를 대하는 자세도 너그러워져있었다. 그렇다고 유시민의 생각까지 유 해진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정계 진출에 뜻은 없다고 하나, 여전히 정치를 놓지 못하는 유시민이 칼럼, 방송 등에 종종 드러나는 현 정국을 보는 식견은 정치인 시절보다 한층 견고해진 듯하다. 물론 독설가 이미지에 가려져있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유시민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능한 인물이다. 


그래서 나름 정치인 이었던 유시민이 지난 25일 방영한 JTBC <비정상회담>에서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자기PR’에 대한 주제의 패널로 참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소 의외로 느껴지기도 했다. 더 이상 정계에 뜻이 없으니,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같은 방송국 <썰전>에서 많이 하니, 다소 정치와 거리가 먼 주제를 택했나 싶었다. 하지만 ‘PR’은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 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해 정계 입문을 희망하는 정치인들에게도 필요하고 중요한 항목이다. 


이날 방송 중 타일러 라쉬의 소개처럼 원래 ‘PR’은 프로파간다(propaganda)’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프로파간다 자체가 전쟁 중에 벌어지는 체제 선전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컸기 때문에, 이를 기업 홍보에 적용하면서, 기업이나 단체가 공중의 이해와 협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태도나 의지를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여 설득한다는 ‘Public realtion’으로 의미와 용어가 바뀌었다. 


‘PR’ 자체가 이를 먼저 시도한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하나, 이 ‘PR’ 때문에 전세계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한국 청년들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취업의 문을 통과하려면, 속칭 자기 ‘PR’이라고 부르는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그것도 그냥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채용 담당자의 눈에 단박에 띌 정도로 훌륭하게 써야 한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주입식 교육 영향 탓에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대다수 한국 사람들이, 그것도 취업 스펙을 위해 없는 시간 쪼개서 경력을 쌓았다고 한들, 대부분 비슷한 스토리에 한정된 소재를 가지고 채용 담당자를 감동시키는(?) 자소서를 써야 한다니,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오죽하면 자기 소개서를 대필해주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하니, 가뜩이나 취업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청년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한 유시민의 답변은 역시 그의 언변만큼 명료했다. 사실만 적되, 채용 담당자가 원하는 정보 위주로 기재 하라는 것이다. 이어진 <비정상회담> 각국 패널들의 자기 소개서를 평가하는 시간에서, 유시민은 자신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이고도 군더더기없이 적어낸 기욤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반면, 시작부터 영웅서사 기운을 물씬 풍기는 장위안의 자소서는 “역시 대륙의 남자.”라는 칭찬과 함께 광탈을 면치 못했다. 


유시민은 장위안의 자소서를 탈락한 이유를 “협회에서 뽑으려는 건 인턴이지 영웅이 아니다.” 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말은 즉, 거창한 자기 자랑만 있지, 정작 채용 담당자가 필요한 정보, 예를 들어 자기가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다는 것과 같다. 이는 취업을 위한 자기 소개서 에서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강조하는 어필이 되겠지만, 정치인에게는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내세우는 ‘공약’이 될 수 있다. 





한국 자소서에서는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기욤의 짧고도 솔직한 자기 소개 기술도 화제였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복지강국’ 노르웨이에서 온 니콜라이 자소서이다. “방학동안 한가해서 인턴이라도 해볼까 한다.”, “오전에는 졸려서 일을 잘 못한다.” 등 취업을 위해서라면 철저히 ‘을’을 자처하는 한국에서 면접에서도 구직자와 면접 당사자 사이에 쌍방향 질문이 자유자재로 오간다는 북유럽의 문화는 그저 그림의 떡이요,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요즘들어 한국의 불안정하고 고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북유럽 이민을 꿈꾸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나, 이 또한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 청년들은 스스로가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든 버텨야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자기 스스로를 포함, 타인에 대한 칭찬은 비교적 인색 하면서, 정작 쓴소리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평소 <비정상회담>을 즐겨본다는 유시민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장점을 칭찬하면서, 그런데 한국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비단 <비정상회담> 뿐이겠는가. 공중파, 종편을 막론하고 뉴스 프로그램에서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이 그래도 비교적 객관적으로 현 정국에 대한 뉴스를 보도한다고 평가받는 정도다. 어느 순간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진 시사, 보도 프로그램 실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낯뜨거운 자기 과시, 찬양만 무수히 많지, 자기 자신을 포함 세상에 대한 냉철한 성찰도, 비판도 쉬이 허용되지 않는 한국은 온갖 현란한 미사여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홍보만 존재할 뿐, 정작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찾기 어렵다. 


자기가 믿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말만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당선을 위해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상당수의 정치인들과 달리,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눈에 보이는 사실 그대로를 콕 찝어서 가리키는 정치인 유시민은 그리 호감가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확실히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고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치인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치인으로서 그의 ‘PR’ 능력은 보통 이하에 가까웠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치인의 옷을 벗고, 작가로, 그리고 그의 원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시사평론가로 돌아온 유시민은 모두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고, 알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논리정연 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유시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작가로서, 강연자로서,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서 독자, 청중이 필요한 이야기를 최대한 부드럽게 말해주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함께 제기하는 유시민은 비판적 성찰이 점점 힘들어지는 요즘, 가장 효과적으로 자기 ‘PR’을 하고 있고, 이 시대 필요한 MR. 쓴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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