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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배우학교. 로봇 장수원도 춤추게 만드는 박신양 교수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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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양에게 연기를 배우기 위해 tvN <배우학교>에 출연한 7명의 학생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장수원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장수원의 연기는 ‘잘한다’ 혹은 ‘못한다’ 라고 구분지어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의 연기에는 ‘감정’이 없다. 연기는 극중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라고 하는데, 장수원의 연기에는 그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톤을 유지하는 그의 남다른 대사처리에 시청자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 결과 장수원은 발연기도 아니고 ‘로봇연기’의 창시자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된다. 





계속 연예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내성적이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힘들어보이는 장수원은 매 시간 무언가 표현하는 과제도 상당히 어려워한다. 이는 장수원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생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장수원에게는 특히 더 버겁게 다가오는 듯하다. 결국 장수원은 지난 11일 방영분에서 심각하게 자퇴를 고려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박신양과 첫 만남에 있었던 ‘자기소개’의 멘붕을 딛고, 잘하던 못하던 일단 주어진 상황에 적극적으로 부딪쳐보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유독 힘들어하는 장수원이 계속 눈에 밟힌다. 그는 계속 위축되고 있었고,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장수원은 박신양에 눈에 아른거리는 아픈 손가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박신양은 수업을 힘들어하는 장수원을 결코 다그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장수원이 용기를 내어 그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기다린다. 장수원 뿐만 아니라, 박신양은 자신의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에게 자기만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지난 11일 방영분에서 몸을 풀거나, 발성 연습을 하는데 있어서도, 박신양은 자신이 하고 있는 스트레칭이나 발성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일단, 학생들 각각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 몸을 푸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그 자신이 해왔던 발성법을 학생들에게 알려 준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들 스스로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게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점에 있어서, 박신양의 교수법은 흡사,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 적혀있는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기보다, 질문법을 통해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연기를 평가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동안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박신양의 수업이 낯설다. 그리고 박신양은 항상 학생들에게 그들의 연기에 대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고, 그 때 실린 감정에 대해서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 그저 누군가가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따라오기만 했지,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타인에게 명확히 드러내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는 학생들은 이 상황이 몹시 당황스럽다. 심지어 지난주 방송에서는 유병재가 자기 소개 도중 예상치 못한 박신양의 질문 세례에 힘겨워한 나머지 통증을 호소 하기도 했다. 


박신양이 배우 지망생 혹은 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컨셉으로 시작된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불구, <배우학교>는 한없이 진지하고, 어느 순간에는 적막감과 냉기가 흐르기 까지 한다. 하지만 <배우학교>는 그 특유의 진지함 덕분에 기존의 주입식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주입식, 수월식을 고집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 하에서 박신양 처럼 학생 스스로가 무언가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지켜봐주는 선생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장수원과 같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높이에 맞게 차근차근 길을 제시해주는 선생 역시 찾기 어렵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연극영화과를 나온 박신양 또한 어떤 수업 방식이 효과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신양은 선생 스스로에게 있어서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고, 눈 앞에 있는 지름길을 놔두고, 일부로 먼 길을 돌아서 가야하는 고행을 택한다. 하지만 그 길 만이 자기만의 연기를 찾아야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박신양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학생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리고 박신양과 함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된 학생들은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 





남이 봤을 때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것. 비단, 연기를 잘 하고 싶어하는 배우들 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두고 있던 틀을 조금씩 깨트리는 과정을 배우게 만드는 <배우학교>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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