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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가화만사성 48회. 이필모의 열연만 남은 가부장만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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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청자들에게 잔뜩 고구마를 먹이고 있으면서도,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는 단연 MBC 주말연속극 <가화만사성>이다. 다음주 종영을 앞두고 있는 이 드라마는 <가화만사성>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여자 주인공들의 수난이 계속 이루어졌다. 이 드라마가 말하는 ‘가화만사성’이란 여자들의 전적인 희생 아래, 어떠한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참고 견뎌야 가능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요즘 가족 드라마에서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전제군주형’ 가장 봉삼봉(김영철 분)을 메인으로 내세운 <가화만사성>은 그런 남편때문에 오랫동안 속이 썩어 문들어질 정도로 살아온 아내 배숙녀(원미경 분)의 고난을 시작으로, 각자의 남편들 때문에 고통받는 배숙녀의 딸 봉해령(김소연 분), 며느리 한미순(김지호 분)의 수난기가 펼쳐진다. 한미순의 철부지 남편 봉만호(장인섭 분)은 아버지 식당의 종업원 주세리(윤진이 분)와 눈이 맞아, 그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들의 의료사고 이후 남편 유현기(이필모 분)과의 사이가 소원해지고, 시어머니의 구박에 시달린 봉해령은 이혼 이후, 죽은 아들의 수술을 집도한 서지건(이상우 분)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서지건과 결혼식까지 올린 봉해령은 뒤늦게서야 서지건이 아들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임을 알게되고, 여기에 전남편 유현기의 불치병 설정이 겹쳐지며, 지건과 헤어지고, 현기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뒤늦게서야 조강지처 한미순을 버린 것이 후회된 봉만호는 미순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재결합을 요청한다. 화룡점정은 자기 자신과 요리밖에 몰랐던 독불장군 봉삼봉의 변화이다. 그런 남편에 질릴대로 질려 이혼을 결심한 배숙녀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작정이라도 한듯, 배삼봉은 영화 <보디가드>의 명장면을 패러디 하면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과시한다. 


그동안 아내들을 힘들게 했던 남자들이 절대 미각을 잃어버리고, 시한부 선고를 받는 등 안타까운 설정이 있긴 하지만, 결국 남편과 시댁에 지쳐 집을 나간 여자들은 다시 남편 곁으로 돌아간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평생 요리사로 살아온 사람이 더이상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만큼, 더 큰 시련은 없다. 그런데 <가화만사성>에서 남자 주인공들이 겪는 일련의 비극들은 웬만해서는 합쳐질 수 없는 콩가루 집안을 억지로 봉합 시키려는 자극적인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상식과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드라마 전개에서 그나마 주목받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이다. 특히,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유현기를 연기하는 이필모의 열연은 시청자들의 사이에서 두고두고 화제다. 아내에게 한없이 냉정 했던 지난날의 과오도 깨끗이 있게할 정도라는 이필모의 애절한 연기 덕분에 <가화만사성> 시청률도 20%을 육박하며, 나날이 순항 중이다. 


하지만 이필모와 파트너 김소연의 명연기만 부각되는 <가화만사성>에서 남는 것은 전근대적 가부장적 사고에 갇힌 왜곡된 여성상 뿐이다. 만약, 유현기가 시한부 선고를 받지 않았다고 하면, 유현기와 봉해령의 재결합이 애절한 러브스토리로 환영받을 수 있을까. 남편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은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여성들의 희생을 가정을 지키기 위한 아름다운 선택으로 미화시킬 수 있을까. 


그런데 죽어가는 순간까지 혼자 남을 아내 걱정에 잠 못이루는 유현기를 연기하는 배우 이필모만 남은 <가화만사성>은 고도로 발달된 현대 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불치병과 뒤늦게 라도 개과천선한 남자의 진심만 있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부부사이도 언제든지 회복될 수 있음을 넌지시 보여 준다. 




지난 날, 여자들이 가부장적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받은 상처와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 죽어가는 전 남편 혹은 요리사로서 생명이 끝난 남편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여자들의 헌신만 있을 뿐이다. 한 바탕 뻐근하게 싸우고 미워 하다가도, 그래도 함께 모여 웃을 수 있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겠다는 기획의도와는 달리, 가정을 지켜야한다는 여자의 숙명과 신파만 남은 <가화만사성>이 진짜 그리고 싶었던 가족은 무엇 이었을까. 높은 시청률과 이필모의 열연으로도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 답답한 미스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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