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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SNL 코리아 8 풍자는 사라지고 논란만 남은 프로그램의 씁쓸한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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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수십만 시민들이 운집 했던 촛불 집회가 열리던 날. tvN <SNL 코리아 시즌8>(이하 <SNL 코리아 8>)은 간만에 화제선상에 올랐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패러디한, 모처럼만의 풍자다운 풍자를 보여줬다는 것이 화제의 주된 이유였다. 물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고, 최순실 모녀의 외향만 우스꽝스럽게 그려낸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Saturday Night Live> 판권이 무색하게 정치 풍자는 온데간데 없고, 섹드립만 남았던 <SNL 코리아>로서는 ‘여의도 텔레토비’ 이후  끊어졌던 풍자의 역사를 되살릴 수 있는 신호탄과 같았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에 처음으로 백만시민이 촛불을 들고 모여 들었던 지난 12일. 풍자가 더 강해질 줄 알았던 <SNL 코리아 8>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잠했다. 애써 머리 굴리지 않아도 시청자들을 빵빵 터트리게 할 수 있는 개그의 모티브가 청와대 안밖에서 쏟아져나왔지만, <SNL 코리아 8>의 시간은 마치 지난 5일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렇게 조용하던 <SNL 코리아 8>은 지난 26일 이후 다시 화제선상에 오르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통쾌한 풍자를 보여주며 박수받았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공교롭게도 <SNL 코리아 시즌8> 연관 검색어는 ‘이세영 성추행’이었다. <SNL 코리아 8> 출연진 중 한 명인 이세영이 이날 호스트였던 B1A4 멤버들을 성희롱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된 비하인드 영상이 공개된 이후, 네티즌들은 즉각 항의하였고, 제작진은 해당 영상을 삭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해당 영상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결국 제작진과 이세영은 직접 공식 사과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진과 이세영의 사과, 제작진과 이세영의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B1A4의 입장 발표에도,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는다. 애초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만으로 덮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몇 네티즌들은 과거 이세영이 인피니트 멤버들의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려고 하는 듯한 영상을 제시하며, 이번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단지 B1A4 때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아이돌 멤버들의 특정 신체 부위를 연이어 만지려고하는 이세영의 행위는 ‘장난과 농담’ 혹은 ‘과격한 행동’으로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현재 <SNL 코리아 8>은 이세영 성추행 논란과 관련해서, 공식 사과 발표 외엔 별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는다. 이세영 하차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코멘트도 남기지 않았다. 대신 공식 홈페이지 내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이번 사건은 이세영 개인의 잘못만이 아닌,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도록 문제점을 즉각 개선하지 못한 제작진의 책임도 있다는 사과문 게재로 그들의 입장을 대신하였다. 제작진의 사과처럼 이 사건은 이세영 개인만의 일탈로 선을 그어서는 안되며, 프로그램 차원에서 책임져야할 중대한 문제다. 


불과 3주 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SNL 코리아 8>의 진짜 위기는 출연진 한 개인이 벌인 성희롱만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모호한 색채가 <SNL 코리아> 지속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애초 <SNL 코리아>의 시작은 CJ E&M이 판권을 사들인 미국 NBC <Saturday Night Live>처럼 풍자와 해학이 곁들인 성인 코미디쇼였다. 지금까지도 정치 풍자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여의도 텔레토비’도 <SNL 코리아>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SNL 코리아>에서는 더 이상 그 어떠한 정치 풍자도 볼 수 없었다. 이는 <SNL 코리아> 뿐만 아니라, 지상파, 케이블, 종편 모든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현상이었다. 한 때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LTE 뉴스’ 코너를 통해 강도높은 정치 풍자를 선보였지만,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가 최근들어 다시 부활한 바 있다. 




정권에 대한 그 어떠한 풍자도 쉽게 용납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였기 때문에 풍자에 몸사린 코미디 프로그램의 선택은 살기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 뉴스에 보도되는 박근혜 대통령 관련 소식이 코미디를 압도하는 현 정국에서, 여전히 풍자에 몸사리는 <SNL 코리아>는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 더군다나 지난 5일만 해도 최순실 국정농단 패러디를 선보이며, 정치 풍자 재개에 대한 신호탄을 쏜 만큼, 그 이후 정치 풍자를 두고 묵언수행을 이어가는 <SNL 코리아 시즌8>의 행보는 오리무중만 남긴다. 


항간에는 지난 5일 방영 이후, <SNL 코리아 8> 연출을 맡고있던 민진기PD가 교체된 이유를 두고 정치적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CJ E&M 측은 민PD의 교체는 최순실 패러디를 하기 전부터 논의된 부분이고, 현재 민PD는 새 프로그램 제작을 맡게되어 기획 중에 있다면서 논란을 일축한 바있다. 그러나 지난 5일 이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정치 패러디 그리고 프로그램을 맡고있던 연출자의 교체. CJ E&M의 적극 해명에도 불구, 의혹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리고 <SNL 코리아 8>은 이세영 성추행이라는 프로그램 출범 이래 가장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논란의 당사자 이세영의 하차와 프로그램 중단 대신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으로 논란을 수습하고자하는 <SNL 코리아 8>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쇼를 지향했지만, 정치 풍자는 사라지고 논란만 남은 <SNL 코리아 8>의 현주소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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