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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뉴스룸'. 블랙리스트 배우 송강호. 노무현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수많은 블랙리스트들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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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한동안 ‘문화 초대석’을 잠정 중단했던 JTBC <뉴스룸>이 지난 25일 이후로 약 7개월만에 ‘목요 문화 초대석’을 재개했다. 다시 문을 연 문화 초대석에 참석한 주인공은 대한민국 대표 영화배우 송강호이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배우로 꼽히지만, 유독 방송 출연이 없었던 송강호가 <뉴스룸>에 나오는 소식만으로도 큰 화제였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지기 이전 활발히 진행되어 오던 <뉴스룸-목요 문화 초대석>은 대한민국 문화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두루 모습을 비추던 화제의 코너 였다. 당장 기억나는 인터뷰이만 해도 휴 잭맨, 강동원, 정우성, 조수미 등이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룸>의 ‘목요 문화 초대석’ 출연에 응했고, 비틀즈 출신의 링고 스타도 지난 10월 말 <뉴스룸> 출연이 예정되어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특보에 집중해야하는 시기여서 부득이 출연이 취소된 적이 있었다. 


7개월만에 다시 시작한 <뉴스룸-목요 문화 초대석>에 출연한 송강호는 여러모로 <뉴스룸>에 딱 어울리는 배우였다. 대한민국 최고 배우이기도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 의해 낙인 찍힌 ‘문화계 블랙리스트 대표 배우’라는 이력이 <뉴스룸>에 등장한 송강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지난 25일 <뉴스룸> 출연이 데뷔 이후 첫 방송사 출연 인터뷰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주기도 했던 송강호는 특별한 방송 출연없이 오직 연기에만 전념하는 천상 배우다. 그런 그가 돌연 박근혜 정부에 의해 ‘블랙리스트’ 딱지가 붙인 것은 지난 2013년 개봉한 <변호인> 출연 때문이다.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던 <변호인>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1년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은 당시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구성한 장편 상업 영화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모티브를 따온 송우석 변호사를 맡았고, 그의 화려한 작품 이력 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명연기를 선사했다. <변호인>은 개봉 당시 1100만명 이상을 동원하는 등 흥행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송강호 또한 <변호인>으로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등 여러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와 더불어 금기시 된 대상  ‘노무현’ 이야기를 다루었던 <변호인>의 출연을 계기로 송강호는 ‘블랙리스트’ 배우가 되었고, 이 영화의 공동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던 배우 정우성은 본인도 모르게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올려지기도 했다. 송강호가 ‘블랙리스트’ 배우가 된 것은 비단 <변호인> 출연 뿐만 아니라 배우 김혜수와 더불어 지난 2014년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을 촉구하는 영화인 1123인 선언’에 참여한 것도 추측되지만, 왜 송강호가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이는, 비단 송강호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송강호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인들이 박근혜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고 출연하거나 혹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했다.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평가받는 송강호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이후에도 <사도>(2014), <밀정>(2016), 그리고 오는 7월 개봉을 앞둔 <택시운전사>(2017)에 출연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온갖 예술 지원 사업에서 우수수 떨어져야했던 예술인들에게 지난 박근혜 집권 시절은 참혹한 암흑기였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동안 문화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소문으로만 나돌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도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변호인>에 이어 또다시 ‘노무현’을 소재로 한 영화가 극장 개봉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공교롭게도 <변호인>의 주인공 송강호가 <뉴스룸>에 출연했던 지난 25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개봉일이기도 했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최초로 전국 579개의 스크린수(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확보한 <노무현입니다>는 개봉일인 지난 25일에만 78,737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입증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가 최종 1만 관객을 넘기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개봉 당일에만 7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노무현입니다>의 인기는 고무적 이면서도, 한편으로 전국 50개의 스크린수도 확보하기 어려운 여타 독립 다큐멘터리 현실과 대조 되며 씁쓸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노무현입니다> 이전에 지난해 10월에 개봉한 <무현,두 도시 이야기>가 있었다. 개봉 당일에만 5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한 <노무현입니다>와 달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개봉일 전국 31개의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힘겹게 만나야했지만, 입소문 만으로 최종 193,578명의 관객을 동원한 저력을 과시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5일 개봉한 <노무현입니다>는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불구, 공동 배급을 맡은 CGV 아트하우스의 배급력에 힘입어 대기업 투자 배급사가 만든 중급 예산 영화 못지 않은 스크린수를 확보한다. <변호인>이 개봉하던 2013년만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임에도 영화 홍보에 있어서 ‘노무현’이라는 단어를 철저히 숨기는 분위기였고, 지난해 10월만 해도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상영관을 잡기도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노무현입니다>에게 많은 스크린을 내어준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태도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변호인> 개봉 당시 홍보에 나설 때만 해도, ‘노무현’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던 배우 송강호는 3년 반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뉴스룸>을 통해 <변호인>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기한 솔직한 소회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 작품 선정에 있어서 스스로 검열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안타까워 한다. 자기 검열로 인해 한동안 심리적 위축감에 시달려야했다는 송강호는 그럼에도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한 영화 <택시운전사>에 주연으로 참여했고, 올해 7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끝으로 송강호는 영화의 역할론을 지난해 연말 있었던 광화문 촛불집회에 비유하며, 한 편의 영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소신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송강호의 말처럼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단박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영화들이 모이고 모여 한 걸음 나아가고 하다보면 세상 또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지 않을까. 


박근혜 정권이 ‘블랙리스트’로 규정한 예술 작품과 예술인들은 표현의 자유가 김대중,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민주정권 10년 이전으로 후퇴한 시절,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염원하에 용감하게 나선 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박근혜 정부는 ‘블랙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였고, 그로 인한 상처는 너무나도 깊었다. 




단지, 정권을 불편하게 하는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이유로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행위는 두번 다시 없어야 한다. 정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라도, 작품 완성도가 탄탄하고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면 관객들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한다. 그래야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은 이 시대의 문화 예술인들이  ‘자기 검열’에 빠지지 않고 창작의 자유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만해도 출연배우에게 블랙리스트 낙인을 찍을 정도로 불온한 존재로 취급받았던 노무현을 소재로한 <노무현입니다>, 그리고 이후 개봉을 앞둔 작지만 소중한 영화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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