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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리얼’ 배우 김수현의 흑역사로 기억될 총체적 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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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얼>(2017, 이사랑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해’를 구하고자 만든 영화가 아니다. 애초 이 영화의 시작은 컬트(탈주류 영화) 였는지모른다. 실제 <리얼>에는 컬트 영화가 되고자 했던 흔적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두고 ‘컬트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결과물을 놓고 봐서는 쉽게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난해한 것 같지만, 끝까지 보다보면 <리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단순하다. 정신분열(혹은 환각증상)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도 얄팍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놀랍게도 <리얼>은 시작부터 주인공 장태영(김수현 분)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는 단서를 던진다. 영화 후반부에 장태영이 단순한 조현병 환자가 아니라는 일종의 반전이 등장하긴 하지만, 어찌되었던 장태영은 둘로 나눠져 있고, 서로를 인정할 수 없는 장태영의 두 자아는 시종일관 서로를 괴롭히고 위협한다. 


주인공의 자아 분열을 다루는 과정에서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끊임없이 혼란을 주려고 하는 것은 같은데, 두 자아의 구분법은 의외로 쉽다. 두 명의 장태영을 맡은 김수현이 내고 있는 인위적인 목소리만 들어도 누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누가 장태영의 진짜 자아이고, 가짜 자아인지는 딱히 알고 싶지 않다. “내가 진짜고 너는 가짜”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영화 속 장태영들의 싸움이 무의미하게 다가올 정도다. 


한류스타 김수현 덕분에 중국 영화 투자 배급사 알리바바 픽쳐스로부터 거액의 금액을 투자 받은 <리얼>은 엄청난 물량공세가 빚어낸 화끈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하나씩 떼어보면 제법 근사해보이는 그림도 몇몇 있긴 하는데, 문제는 그게 전부다. 공들어서 촬영한 것은 분명하지만, 결코 미쟝센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무의미한 장면들이 계속 이어짐에 따라 관객들이 느끼는 피로는 극으로 치닫는다. 


겉만 번지르르한것과는 달리, 영화 자체가 속 빈 강정이다보니 평소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도 영화와 어울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닌다.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새삼 진지한 성동일의 명품 연기가 진심 아까울 정도다. 이성민 같은 경우에는 매력적인 빌런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캐릭터임에도 불구, 애초 캐릭터 설정 포함 영화가 이상하다보니 그의 연기 또한 큰 설득력을 주지 못한다. 


아마, 김수현 포함 이성민, 성동일, 이경영, 조우진, 최진리(설리)는 이런 영화 인줄 모르고 출연에 응했을 것이고 실제로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큰 타격은 주인공 김수현이다. 영화에서 그는 시종일관 멋있는 포즈를 취하고 혼자서도 수많은 적들을 손쉽게 제압한다. 하지만 김수현의 멋진 열연에도 불구하고, 시작부터 종잡을 수 없었던 <리얼>의 장르는 어느새 코미디로 치닫고 있었다.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코미디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라고 흔쾌히 권하겠지만, 나를 끝으로 더 이상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처럼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나처럼 몹쓸 호기심을 안고 이 영화가 어느 정도로 바닥을 뚫고 가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서 차라리 <박열>, <옥자>를 2번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괴작이 보고 싶다면, 차라리 <노후 대책 없다>를 보시길. 그래도 <노후 대책 없다>는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도전 정신도 있고 심지어 보고 듣는 재미까지 있다. 그런데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던 <리얼>에는 전혀 새로운 게 없다. 할리우드 영화 등 어디서 본 것 같은 조약한 ‘짝퉁’만 넘쳐난다. 그러면서 계속 ‘진짜, 진짜’를 외친다.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할까 도무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리얼>을 보자마자 <박열>을 보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영화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도 괴롭고, 진짜 괜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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