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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공범자들' 끊임없이 질문하는 최승호가 몸소 보여준 언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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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감독의 <공범자들>(2017)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박수 소리가 나왔다. 영화제, 시사회가 아닌 일반 상영 때 박수가 나오는 것은 정말 흔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절로 박수가 나왔다. 사실은 누군가가 치던 말던 박수를 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다만, 어느 분이 먼저 쳤기에, 나도 용기내어(?) 박수를 칠 수 있었다. 




‘이명박근혜’로 압축되는 지난 10년간의 공영 방송 몰락 과정은 제3자의 입장에서도 선뜻 마주하기 어려운 아픈 역사다. 공영방송 몰락의 주범 중 하나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출범 했지만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까마득해보이며, 언론의 공정성을 외치다가 해고된 언론인들은 아직 복직되지 못했다. 공영방송의 몰락을 먼 발치에서 지켜만 봐야했던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도 이러한데, 하물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그럼에도 해직 언론인 중 한 명인 최승호 감독은 그 자신에게 있어 가장 마주하기 어려운 현실과 당당히 부딪치는 행위를 자처한다. 자신과 동료 PD, 기자들이 해직 언론인으로 내몰린 지난날을 복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자신과 동료 언론인들을 해고한 ‘공범자들’에게 언론을 망친 책임을 묻고자 직접 인터뷰에 나선다. 


크게 1,2부로 나누어져 있는 <공범자들>은 우선 이명박 집권 이후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한 공영방송의 쇠락기를 짚어본다. KBS, MBC 뿐만 아니라 YTN에도 언론 자유와 공정성을 외치며 해고 당한 기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공범자들>은 KBS, MBC라는 공영방송의 몰락에 집중한다. 공영방송을 권력에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고 작정한 공범자들은 집요했으며, 그 결과 KBS, MBC는 부패한 권력에 제대로 질문을 던질줄 아는 언론인들이 종적을 감춰 버렸다.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버린 공영방송의 언론인을 두고 많은 시민들은 ‘기레기’라고 불렀다. 지난해 겨울, 촛불 혁명 취재차 광화문 광장을 찾은 KBS, MBC 기자들은 공영방송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한 몸에 받아야했다. 공영방송 언론인 선배이자, 그 누구보다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염원하는 최승호 감독은 공영방송 기자들을 기레기라 부르며 비판하는 시민들의 아우성을 겸허히 카메라에 담는다. 가슴 아프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한 최승호는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자신을 비롯한 해직 언론인들이 회사에서 쫓겨난 이유를 알 수 없었던(물론 짐작은 가능하지만) 최승호 감독은 그 원인을 찾고자 자신을 해고한 선배 언론인들을 찾아간다.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모른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아예 질문 자체를 회피하려 든다. 심지어 질문의 답변을 요구하는 최 감독에게 물리적인 압박과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심지어, 언론을 망친 공범자들 중 하나로 지목되는 백종문 현 MBC 부사장은 최 감독을 두고 공영방송의 미래를 망치지 말라고 훈수까지 둔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최승호 감독이 아니다. 공영방송의 몰락을 몸소 지켜보며, 언론인의 숙명은 질문이요, (공영방송) 언론인들이 질문을 하지 못해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최 감독은 그 자신이 가진 신념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자신과 동료들을 해직언론인으로 만든 장본인, 더 나아가 공영방송을 망친 공범자들 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누가 공영방송을 이렇게 처참할 정도로 망가트렸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있다. 다만,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회피할 뿐이다. 




MBC 해직 언론인인 최승호 감독은 공영 방송 몰락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다. 하지만 ‘권력의 감시견’이라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공영방송이 끼친 손실은 해직 언론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고, 우리 모두의 아픔이었다. 그래서 최승호 감독은 하루라도 빨리 공영방송을 정상화 시키기 위해서 자신에게 있어 가장 아픈 기억과 마주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극도로 망가진 공영방송의 현실과 그 사이 몸과 마음 모두 지쳐버린 동료 언론인들을 바라본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아직 공영방송은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았기에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공영방송 몰락을 지켜보는 행위는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최승호 감독은 더욱 집요하게 지난 10년 동안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과 그들과 손잡은 공범자들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언론을 망친 공범자들을 파헤치고자 작정한 최승호 감독과 언론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지치는 법이 없다. 공범자들에게 면박을 당하고 제재를 당해도 결코 물러섬이 없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겠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온 몸으로 돌진하는 언론인들의 용감한 행위는 완전히 사그라든줄 알았던 공영방송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다시금 지피게 한다. 그래서 <공범자들>은 지난 9년간 있었던 공영방송의 몰락에 대한 한탄과 자조보다 아직 살아있는 언론인들의 저항과 의지에서 희망을 읽는다. 






부디, 해직 언론인들이 복직되어 일터로 돌아가게 되면, 참여정부 시절 황우석 줄기 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용감하게 보도한 지난 날의 MBC 그 이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해직 언론인들처럼 억울하게 직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알리는데 노력하면 더 좋겠다. 우리 국민들이 공영방송에 원하는 것은 딱 이정도다. 권력의 하수인이 아닌, 권력의 감시견의 역할을 잘 해낼 때에 비로소 땅으로 떨어진 공영방송의 위상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그런 일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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