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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죄 많은 소녀’ 희생양으로 몰린 소녀. 그 이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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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학생이 실종되었다. 아마도 그 소녀는 투신 자살을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집도 곧잘 살고 학업 성적도 우수한 학생이기에 자살할 이유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경찰과 학교는 실종된 소녀가 죽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걸로 추정되는 영희(전여빈 분)를 의심한다. 




단편 <오늘은 내가 요리사>(2009), <구해줘!>(2011), <오명>(2015) 등을 연출하고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 연출부를 지낸 김의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 <죄 많은 소녀>(2017)는 여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딸을 잃은 엄마(서영화 분)는 딸이 강물에 빠진 이유를 알고 싶어하고 친구의 죽음을 부추긴 것으로 의심받은 영희는 곤경에 처한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 간의 미숙한 우정이 빚은 파국을 다뤘다는 점에 있어 <죄 많은 소녀>는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0)과 비견 되곤 한다. <파수꾼>, <죄 많은 소녀> 모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과정 커리큘럼에서 나온 영화이기 때문에 <죄 많은 소녀>를 두고 ‘여자 파수꾼’이라는 별칭을 부르는 것도 그리 이상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파수꾼>이 한 소년의 죽음을 두고 우정으로 가려진 미성숙한 존재들의 내밀한 상처와 엇나간 욕망에 집중했다면, <죄 많은 소녀>는 경민(전소니 분)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에게 그 책임을 떠맡기거나 혹은 자학하는 인간의 미약한 본성을 깊이있게 보여주고자 한다. 




영희를 비롯하여 <죄 많은 소녀>에 등장 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소녀의 죽음에 일정부분 책임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워킹맘인 경민의 엄마는 일에 치여 살아서 경민에게 소홀히 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며, 경민과 한 때 특별한 관계 였던 영희는 그녀 나름대로 경민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 이미 학생 4명의 자살을 경험한 학교는 경민의 죽음으로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영희와 경민의 엄마를 제외하곤 영화의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회피와 책임 전가다. 그들은 자신이 경민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영희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거나 혹은 그와 관련된 다른 인물들을 위험에 빠트린다. 


<죄 많은 소녀>는 친구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영희의 극단적인 행동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살기 위해 영희를 곤경에 빠트리고 이를 정당화 시키는 사람들과 그들에 맞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하는 소녀 영희의 처절한 몸짓이다. 


경민의 죽음에 있어 영희는 죄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희를 죄 많은 소녀로 몰아 붙인다. 학생들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 어른들의 바람과 달리, 경민과 영희 모두 극단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는 상황에 몰린다.  어느 누구도 영희 편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영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죽음 외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죄 많은 소녀>라는 제목도 영화의 극적 상황을 충실히 설명해주고 있긴 하지만, <After My Death>라는 영어 제목이 더 설득력있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영화로 풀어낸 것으로 알려진 김의석 감독은 날카로우면서 침착한 톤으로 누군가에 의해 희생양에 몰린 영희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아낸다. 어떤 이는 <죄 많은 소녀>를 두고 잔혹한 쎈 영화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각자가 판단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자극을 위해 자극만 남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올해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전여빈의 호연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하고, 43회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며 영화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죄 많은 소녀>는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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