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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영화 진수를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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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이 있다. 딱 봐도 ‘정상가족’이 아닌 것 같은 이 가족은 할머니(키키 키린 분)의 연금과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연명하며 살고 있다. 부부로 추정되는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와 할머니에게 얹혀사는 아키(마츠오카 마유 분) 또한 돈을 벌고 있지만, 일용직을 전전하는 이들의 벌이 만으로는 도무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보인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오사무와 쇼타(죠 카이리 분)는 낡은 아파트에 홀로 방치되어 있었던 유리(사사키 미유 분)를 집에 데리고 온다. 가족들은 반대했지만, 어느 순간 유리에게 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딸처럼 대한다. 가난하지만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던 어느 가족의 삶. 하지만 예상된 공식처럼 이 가족의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올해 열린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2018)은 가족 영화의 장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세계가 집약된 영화다. <환상의 빛>(1995)로 데뷔한 고레에다 감독은 그의 이름은 세계 영화팬들에게 각인시킨 <아무도 모른다>(2004) 이후 줄곧 가족 영화를 만들어왔다. 지난해 발표한 법정 서스펜스물 <세 번째 살인>(2017)로 잠시 외도를 꾀한다 싶었는데 다시 고레에다의 주 장기인 가족 영화로 돌아와 황금 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어느 가족>은 아파트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아이들을 담은 <아무도 모른다>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2년 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올해 초 국내 개봉하여 화제가 되었던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가 저절로 오버랩 된다. <어느 가족>, <나, 다니엘 블레이크>, <플로리다 프로젝트> 모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주변부 사람들을 다루면서도, 이들을 빈곤 포르노(가난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사진이나 영상물, 모금 방송 등을 이르는 말)적 시선으로 대상화하는 대신 한 인간으로서 이들의 삶을 존중하고 편견없이 바라보고자 하는 사려깊은 태도 또한 고스란히 느껴진다. 




국가로부터 완벽히 방치되어 있으면서도, 골칫덩어리로 부상한 어느 가족을 바라보는 고레에다의 태도는 오프닝에서 물건을 훔치기 위해 대형 슈퍼마켓으로 들어가는 오사무와 쇼타를 조명하는 로우 앵글(low angle) 카메라의 위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낮은 위치에서 인물을 포착하기에 피사체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경외심까지 느끼게 하는 로우 앵글은 주로 선전영화나 영웅 주의를 묘사하는 장면에 사용된다. 


한편으로 <어느 가족> 오프닝에서 보여준 카메라는 완전히 닮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앉은키에 카메라의 눈높이를 맞춘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숏’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고레에다는 오즈의 적자로 불릴 정도로 소재(가족), 세계관 등에서 오즈의 영화와 비슷한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후 일본의 조금씩 균열되어가는 가족의 해체를 다룬 오즈의 영화와 가족 해체 이후 유사가족과 같은 다양한 가족 형태 내 갈등과 화해를 다루는 고레에다의 영화는 수십년 이상 떨어진 세월의 간극 만큼이나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고레에다 가족영화의 집대성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어느 가족>은 그간 고레에다의 가족영화가 보여주었던 그만의 색채나 인물군상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아직 어린 소년의 범주에 머물러 있지만, 자기 보다 어린 동생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설 정도로 일찍 철이 든 쇼타의 모습에서 <아무도 모른다>의 아키라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영화 답게 일본의 톱스타 배우들이 앞다투어 출연하는 고레에다 영화이지만, 마치 오즈 영화의 류 치슈 처럼 키키 키린과 릴리 프랭키가 있어야 비로소 고레에다 영화만의 진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따뜻하게 극중 인물들을 바라보는 듯 하면서도 싸늘한 냉기를 흘리며 이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시키는 고레에다 색채 또한 여전하다. 


언뜻보면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가 기존에 해왔던 가족영화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레에다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따뜻하고 평온해 보이는 소소한 일상 속에 검버섯처럼 숨어있는 잔혹한 현실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가족영화로 풀어내 왔고, <어느 가족> 역시 이상해 보이는 가족의 형태를 통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이면에 숨겨진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성공한다. 고레에다는 다소 이상해보이는 어느 가족을 쉽게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그들을 바라보고, 보여줄 뿐이다. 




잔잔하고 소소해 보이는 고레에다 가족 영화가 유독 큰 힘으로 다가오는 것은 적어도 고레에다는 애써 마주하고 싶지 않는 현실을 방기하거나 피하지 않고 그만의 부드러우면서도 올곧은 시선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다. ‘어느 가족’은 단지 누군가가 버린 것을 주워왔을 뿐이다. 가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만한 필견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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