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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너의 노래는' 정재일과 김고은, 정훈희가 함께한 추억 여행.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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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효신과 함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오래된 카페를 찾아간 음악감독 겸 뮤지션 정재일은 클래식 연주가들이 즉흥으로 공연을 하고, 헝가리 예술가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곳의 정취를 동경하게 된다. 한국에는 13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다페스트의 카페 센트럴처럼 예술가들과 문인들이 모여 음악과 시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사교를 즐기는 살롱이 있었을까. 분명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명동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았던 문화 살롱을 또렷이 기억하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지난 7일 방영한 JTBC <너의 노래는> 3회의 부제를 달자면, 정재일의 음악과 함께 떠나는 그 시절 추억 여행 정도로 간주해도 좋지 않을까. 지난 2회 까지는 정재일과 함께 작업을 했고, 친분이 있는 박효신, 아이유, 이적이 정재일의 음악 파트너로 등장했는데, 3회에는 정재일과 별다른 친분도 없고, 배우인 김고은이 게스트로 출연한다고 하여 좀 의아스러웠다. 게다가 김고은이 <너의 노래는>에서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부른다니. 패티김이 누구인가. 이미자, 조용필과 더불어 대한민국 가요계의 전설 중의 전설. 국민 가수라는 칭호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독보적인 뮤지션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는 것만으로도 후배 가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과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로 활동하는 틈틈이 신승훈 등 여러 뮤지션과 끊임없이 협업을 이어나가며 조용히 실력을 인정받은 김고은은 김태용 감독의 <만추>(2011)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자기만의 감성과 색깔로 시대를 앞서간 전설적인 뮤지션의 명곡을 말끔히 소화해냈다. 더할나위 없이 맑고 청량한 음색이었고, 이를 뒷받침 해주는 정재일의 전자 기타 연주도 좋았다. 이렇게 패티김이 수십년 전 발표한 시대의 명곡은 김고은과 정재일의 깔끔한 재해석으로 원곡과는 또다른 질감의 울림을 선사한다. 




국민가수 패티김을 방송을 통해 재소환한 정재일과 김고은의 콜라보레이션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았던 에피소드는 가수 정훈희와 함께한 ‘명동백작’ 이었다. 패티김의 뒤를 이어 ‘안개’, ‘무인도’, ‘꽃밭에서’ 등 수많은 곡을 히트 시키며 국민가수 반열에 올라선 정훈희가 <너의 노래는>에서 부른 노래는 1958년 발표한 ‘세월이 가면’이다. ‘목마와 숙녀’ 박인환 시인의 작사가 인상적인 ‘세월이 가면’은 명동 백작과 깊은 연관이 있다. 박인환 시인이 심장마비로 죽기 며칠 전, 어느 때와 다름없이 평소 즐겨찾는 명동의 한 선술집에서 동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박 시인은 같이 있던 가수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시를 지었고, 그 싯말이 ‘세월이 가면’이 되었다. 


60년대 전후 세대들에게는 박인환이 시를 쓰고, 현인이 부른 ‘세월이 가면’보다 최호섭이 부른 ‘세월이 가면’이 더 익숙할 수 있다. 기자 또한 <너의 노래는>을 보고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이전에 박인환, 현인의 또 다른 ‘세월이 가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단,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뿐일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과거 명동 뒷골목에 존재했다는 수많은 문화 살롱, 다방, 선술집은 이봉구가 남긴 책 <명동백작> 에서만 만날 수 있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옛 이야기이다. 




그 시절 명동 백작을 똑똑히 기억하거나 목격 했던 이순재, 최불암, 박정자는 하나같이 가난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과 낭만이 살아 숨쉬었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그 시절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잠시 뒤로하고 음악과 시, 예술을 논하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던 그 시절이 부럽기도 하다.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카페 센트럴은 찾은 정재일과 박효신은 예술가, 문인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유럽의 살롱 문화를 부러워했다. 아마, <너의 노래는>을 본 다수의 시청자들도 이들과 비슷한 마음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예술가,문인들이 자유롭게 꿈을 펼치던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탄생하였다. 다만, 지금은 자본의 위력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뿐. 




그리고 지금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 시절을 동경하고자 하는 정재일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를 가진 정훈희와 함께 명동백작의 순수와 낭만의 세계를 느끼고자 한다. 예술의 낭만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반문하게 하면서도, 정재일과 정훈희의 ‘세월이 가면’을 듣는 것만으로도 명동 백작의 순수한 예술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너의 노래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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