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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불후의 명곡2' 정태춘, 박은옥 특집.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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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2>)에 정태춘, 박은옥이 출연한다니. 그렇다. 필자는 오랜 세월 정태춘, 박은옥 부부를 존경해왔다.

 

뮤지션으로서는 정태춘, 박은옥보다 조용필, 유재하, 신해철, 이소라를 더 흠모해왔지만, 정태춘, 박은옥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그 이상이었다. 

 

 

'한국의 밥 딜런'으로도 언급되는 정태춘은 한국적 포크의 대가이면서, 싱어송라이터 뮤지션이자, 시인,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로 소개되는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40년 가까이 정태춘과 함께 음악 활동을 이어간 박은옥은 김민기, 양희은과 함께 한국 최고의 포크가수로 평가받는 독보적인 싱어다. 정태춘 박은옥 사이에서 태어난 딸 정새난슬 또한 주목받는 작가, 뮤지션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평소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정태춘, 박은옥이 공중파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의미깊은 해라 그럴 것이다. 지난 30일 방영한 <불후의 명곡2-삶을 노래한 시대의 동반자, 정태춘 AND 박은옥>에서는 정태춘, 박은옥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92년 장마, 종로에서' 외에도 '시인의 마을', '촛불', '떠나가는 배', '봉숭아', '사랑하는 이에게', '회상' 등 총 7곡의 노래가 정태춘, 박은옥을 흠모하는 후배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 되었다. 

 

우승 여부를 떠나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무대는 알리가 부른 '92년 장마, 종로에서' 였다. 시대의 저항을 노래한 정태춘, 박은옥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한 곡이기도 하지만, 알리의 특유의 가창력과 짙은 호소력이 배가되어 원곡이 가진 공허함과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92년 장마, 종로에서' 가사 중) 

 

1990년 공연윤리위원회(공윤)의 심의결과 및 가사 수정지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게 제작된 앨범 <아, 대한민국...> 발매와 함께 음악 사전 검열 제도와의 전면전에 돌입한 이후, 1993년 발매된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사회주의 몰락, 진보, 노동 운동 쇠퇴, 3당 합당 등 급격히 보수화되어가는 시대에 대한 상실과 회한을 담은 노래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92년 장마, 종로에서> 또한 공윤의 사전 심의를 거치지 않고 발매되었는데, 1993년 방영한 KBS1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서 해당 앨범 2곡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담당 PD가 방송국에 의해 경고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 때 금지곡이었던 노래가 공중파 방송국을 통해 다시 불러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정태춘, 박은옥이 싸웠던 그 시절에 비해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다시는 시청광장에서 물대포에 쓰러지는 사람이 없길 소망하던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바람과는 달리, 몇 년 전만 해도 물대포에 쓰러져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결국 시민들은 새로운 희망을 안고 다시 광화문 광장, 시청 광장에 깃발을 들고 나섰고, 이제는 먼 옛날에 있었던 일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92년 장마, 종로에서' 외에도 시대의 저항과 아픔을 이야기한 정태춘, 박은옥 노래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불후의 명곡2>는 공중파 방송국임을 감안해서, 서정적인 가사와 토속적인 분위기가 짙은 노래들이 소개된 듯하다. 그럼에도 <불후의 명곡2>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불려졌다는 것은, 온 몸으로 시대의 부당함과 맞서 싸운 정태춘, 박은옥에 대한 예우라고 볼 수 있다. <불후의 명곡2>를 통해 정태춘, 박은옥이 노래한 시대 정신에 대해서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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