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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안녕하세요' 아들을 위한 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 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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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방영한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에서 부모의 과보호와 자식 간 차별에 힘들어하는 딸의 사연을 보니 불현듯 얼마 전 개봉한 <행복한 라짜로>(2018)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행복한 라짜로>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오래 전 폐지된 중세 유럽의 농노 제도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이상한 마을에서 주인공 라짜로는 마을 사람들을 소작농으로 부리는 후작부인은 물론 마을 사람들로부터 하대와 조롱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다. 

 

마을의 지주인 후작부인으로부터 노동력를 착취당하며 살아가는 주민들은 착하고 순박하기 그지없는 라짜로를 부려 먹는데 있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조금 힘들거나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무조건 라짜로를 부르는데, 일찍이 성인 반열에 올라선 라짜로는 사람들의 과도한 요구를 불평없이 모두 도와준다. 

 

 

하지만 평소 마을 사람들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라짜로와 달리, 정작 마을 사람들은 라짜로가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은 커녕 방관 혹은 회피의 태도로 일관한다.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 위치한 후작 부인은 자신이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라짜로를 착취한다고 자신의 태도를 합리화 시킨다.

 

라짜로의 헌신을 고마워하긴커녕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집안 형편상 24살까지 부모와 한 방을 써준 딸을 고마워하긴커녕 오히려 아들을 위한 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안녕하세요> 사연자 엄마에게서 문득 <행복한 라짜로> 마을 주민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들을 유독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연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한) 밥, 설거지는 당연히 딸이 해야할 일이며, 결혼을 해서도 남편 아침밥은 당연히 여자인 딸의 의무임을 주장한다. 

 

 

과거 말대꾸 하나 없이 고분고분하던 딸의 변화를 야속하게만 생각하는 엄마. 아직도 가부장적인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연자의 어머니가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를 위한 여자의 헌신과 희생은 지극히도 당연한 사회적 통념이었다. 지금도 간간히 내 주변 몇몇의 나이많은 어르신들은 아무리 남녀평등의 시대라고 해도, 가정 내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굽혀야 행복한 집안을 꾸릴 수 있음을 강하게 '설파'하신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의 짖궃은 부탁과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였던 라짜로는 영화 제목 그대로 '행복'해졌을까. 후작 부인의 착취에서는 벗어났지만, 농노 제도보다 더 무서운 자본주의의 착취에 시달리게된 사람들은 여전히 라짜로의 헌신을 고마워할 줄 모른다. 그들에게 라짜로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자신들의 심부름꾼, 마구 부려먹을 수 있는 노예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은 라짜로가 남다른 존재임을 알아보고 예의를 지키려고 하지만, 그 때 뿐. 속세에 찌든 사람들의 눈에 봤을 때 라짜로는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불쌍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행복한 라짜로>를 연출한, 이탈리아 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성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내용을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오늘날 성자가 현대의 삶 속에 나타난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어쩌면 별 생각 없이 그를 내칠 것이다."라고 말이다. 지난 24일 <안녕하세요>에서 요즘 정말 보기드문 순종적인 딸의 착한 성품에 감탄한 <안녕하세요>의 MC들과 게스트들은 딸과 엄마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일시적인) 봉합책으로 12시 통금을 30분 더 늦추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런데 통금 시간을 늦추고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 가족의 진짜 문제가 말끔히 '해결'될 수 있을까. 이 집안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딸과 여자는 아들과 남자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한다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여성의 헌신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워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많은 의문점이 드는 <안녕하세요>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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