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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박강아름 결혼하다' 유학생 부부의 뜻하지 않은 성 역할 전복. 우리 안의 가부장성을 통렬하게 꼬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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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폐막한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박강아름 결혼하다>(2019)는 제목 그대로 박강아름 감독의 결혼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녀의 첫 장편영화인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촬영 도중 진보정당활동가이자 요리사로 살고 있던 정성만과 사랑에 빠진 박강 감독은 결혼 이후 남편과 함께 그토록 바라던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의 삶이 녹록하지는 않지만 20대부터 꿈꾸어왔던 길을 차근차근 밟으며 부푼 기대에 접어든 박강 감독은 함께 유학길에 오른 남편이 주부 우울증에 빠지며 뜻하지 않는 위기를 맞는다. 

 

일찍이 프랑스 유학을 계획했던 박강 감독과 다르게 아내를 따라 프랑스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뿐인 성만은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에서 집안일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는 것이 소원인 박강 감독은 이를 떨떠름하게 여기는 남편의 반응에도 아이를 낳고 육아는 자연스레 남편 성만의 몫으로 돌아간다. 

 

 

아내를 따라 프랑스에 온 후 가사 노동, 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남편의 이야기를 다룬 <박강아름 결혼하다>가 제작 단계에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여성영화제 상영 내내 화제가 된 것은 독박 육아와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대상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 이후 경력이 단절되고 가정에서 집안일과 육아를 ‘독점’으로 수행하거나 부부가 함께 경제활동을 해도 육아와 가사노동까지 책임져야하는 여성의 삶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독특한 이야기는 되지 못한다. 

남편이던 아내이던 한 쪽 배우자만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을 홀로 감당하는 형국은 권장 해서도 안되며 개선해야하는 가족 문화의 악습이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본의 아니게 남편에게 집안일과 육아를 떠맡기게된 감독이 자신에게 내재된 가모장적 면모를 발견하고 성찰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주부우울증에 걸린 남편 성만을 위해 박강아름 감독은 매주 일요일 자신의 집에서 식당을 여는 프로젝트(외길식당)를 남편과 함께 공동으로 진행하고, 딸 보리를 낳은 이후에는 육아에 시달리는 성만의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 한동안 쉬었던 외길식당을 다시 여는 수고로움을 이어나간다. 

 


그렇다고 영화 속 박강아름 감독이 아예 육아와 집안일을 남편에게 전적으로 떠넘긴 것은 아니다. 사실 남편이 박강 감독보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많아보일 뿐 이를 독박 육아라고 보기도 힘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강 감독은 아이를 혼자 돌보는 시간이 많아진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하며, 그러한 남편을 달래기 위해 집 거실에 식당도 열고 가족문화의 문제점을 돌아보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들었다. 

 

고정된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유학생 부부의 흥미로운 성 역할 전복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몇몇 영화제를 거쳐 극장 개봉을 통해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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