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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9일 개봉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낸 모두에 건네는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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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외면하고 이념이 가두었지만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온 사람들, 재일조선인 76년의 역사를 사려 깊게 집대성한 다큐멘터리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가 12월 9일 개봉한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걸음의 이유>, <불안한 외출> 등을 연출한 김철민 감독의 3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로, 18년간의 취재와 성찰로 담은 재일조선인 역사의 사려 깊은 집대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는 조선학교 학부모와 학생들, 통일운동가들,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을 통해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켜온 재일조선인들의 숭고한 기록을 오롯이 만날 수 있으며,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제 식민 지배와 국가폭력의 잔재 #국가보안법 폐지

 

국가보안법은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1948년에 제정된 법률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독재정권에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 증거가 영화에 나오는 재일조선인 2세의 간첩조작사건이다. 박정희 정부는 강종헌, 이동석, 이철 등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재일조선인들을 조총련계 사람들과 사적인 교류가 있었다든가 북한의 선전물을 접해봤다든가 하는 사소한 구실을 억지로 엮어내 중형을 선고했다. 특히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에 공산주의자를 처벌한다는 미명 하에 독립운동가를 탄압했던 치안유지법을 거의 그대로 베껴온 법이다. 

 

 

영화 속의 재일조선인 1세인 故 서원수 출연자 역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이처럼 일제 식민 지배와 해방 후 국가폭력의 잔재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어왔다. 국가보안법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등 다른 반국가단체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오직 종북세력에 대해서만 자의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사실상 반공법으로 전락했다. 북한과 관련된 간첩과 이적행위에 대해서는 형법 상 다른 내란죄나 간첩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으므로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에 더욱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에도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기도 했다.

 

고유한 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차별금지법 제정

 

혐한의 정서가 아직도 팽배한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들은 차별과 혐오의 언행을 일상으로 마주하고 있다. 영화에서 재일조선인 3 세 박정임과 박금숙 씨는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낸 학부모로 수년간 감당해야했던 트라우마를 떨리는 목소리로 전한다.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을 위시한 습격 데모 단체들이 조선학교를 수시로 찾아와 벌이는 헤이트 스피치가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상상 이상의 강도임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만행은 일본 사회 내에서도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 2016 년, 일본 거주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차별적 언동을 금지하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시행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영화 속 재일조선인들이 마주하는 차별과 혐오, 그로 인한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의 제정은 일본 사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백래시와 혐오 정서가 사그라들기는 커녕 날로 거세지고 있다. 한편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15년째 계류되고 있어 사회적 소수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 이들에게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그 모든 혐오와 차별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재일조선인들의 눈부시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힘찬 연대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미움만이면 증오심만이면 원동력은 되지만 쭉 싸우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삶’을 사는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희망이 된다.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한반도를 물려주자 #한반도 종전선언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해 일본으로 이주하게 된 재일조선인들은 이후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법적 지위와 처우에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 속 재일조선인 2세 김창오 출연자는 재일조선인이 ‘분단의 가장 심한 피해자이고, 통일의 가장 많은 은혜를 받는 존재’라는 이야기를 한다. 재일조선인은 한반도의 밖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누구보다 바라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최근 다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종전선언 역시 재일조선인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종전협정을 이루기 전 단계의 정치적 선언으로서 법률적 효력은 없는 정치행위다. 

 

 

한반도는 현재 휴전 중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종전선언이 갖는 의미는 그래서 전쟁을 끝내는 출구라기보다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로 나아가는 입구인 셈이다. 2018년 남북의 평화무드가 고조되었던 시기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이 잇달아 성사되고 종전선언도 연내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종전선언에는 미국, 일본, 중국 등 관련 국가와의 외교적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어 실제 이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 후손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를 전수하기 위해 자립적으로 힘을 모았던 재일조선인들은 이제 후손들에게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 중이다.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희망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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