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전망대

천일의 약속 수애, 김래원 사랑보다 공감되는 이미숙의 분노

반응형





드라마 <천일의 약속> 상에서 불과 얼마 전 까지는 향기(정유미)와 결혼하기로 되어있었던 지형(김래원)이 기어코 1년 동안 사귀었던 서연(수애)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지형과 향기가 파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이죠. 

 

사랑하던 서연을 대신하여 부모님이 정해주신 정혼자 향기와 결혼까지 생각했던 지형이 파혼과 서연 결혼이라는 폭탄 선언을 하게된 배경에는 서연의 알츠하이머가 있었습니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죽어가는 서연을 두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없다는 것이 지형의 생각입니다. 

향기와의 결혼을 앞둔 지형의 돌출 행동은 지형, 향기 양 집안을 혼란시킴은 물론, 당사자 서연까지 당황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서연은 내심 지형이 향기아닌 자신에게 돌아오길 원했을 겁니다. 똑똑한 여자이기에 애초부터 자신의 남자가 될 사람이 아님이 아니고, 적당히 즐기다가 보내줄려고 하였지만 지형이 향기와 결혼을 선언하던 날 남몰래 화장실에서 오열하던 그녀였으니까요. 자존심과 사회적 체면때문에 계속 지형을 거부하는 척 했으나, 자꾸만 그녀를 주저앉혀버리는 치매 현상때문에 결국 그녀는 자신의 본 마음대로 지형을 받아들이고 합니다.

하지만 서연의 주변 사람을 제외하고, 지형 쪽 인물들은 도저히 지형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본인 역시 사랑만으로 집안의 반대를 뚫고 결혼했기에 그 누구보다 지형의 순애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지형엄마 수정(김해숙)조차 알츠하이머 여자와 같이 산다는 아들의 선택에 분노를 표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서연이 불쌍하고 안타까우나, 그녀도 사람인지라 자기 아들이 가시밭길을 택하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형엄마는 지형과 서연의 사이를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파혼을 선택한 지형아버지(임채무)까지 단숨에 설득시키고(?) 결국 향기 부모에게 찾아가 아들 지형의 결혼 사실을 통보합니다.

 


당연히 뜬금없는 파혼 통보를 받아 지형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향기 부모는 어이가 없는 표정입니다. 특히나 향기 엄마 현아(이미숙)는 "분명 양다리가 맞았구먼. 다른 여자 있었어." 하면서 지형 부모를 다그칩니다. 수정으로부터 결혼할 여자가 치매라는 소리를 듣고는 "아 치매 환자한테 우리 향기가 까인거니. 치매 환자때문에 우리를 개떡으로 만들었다는 거나."면서 더욱더 펄쩍 뜁니다.

 


반면 엄마로부터 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들은 향기는 오히려 두 사람이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립니다. 지형이 미쳤다면서, 지형과 서연의 결혼에 분노한  향기 엄마와,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을 축복해주는 향기의 착한 모습(?)이 대조되어 눈길을 끌었죠.

 


김수현 작가 전작 <내 남자의 여자>에서도 그랬지만, 드라마 주인공들은 우리의 도덕적 관념에서 봤을 때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할 사랑을 합니다. 그나마 <천일의 약속>에서 김래원은 아직 결혼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내 남자의 여자>의 김상중은 이미 결혼하여 아들까지 있는 엘리트입니다.

놀랍게도 정작 상대방의 불륜을 지켜봐야하는 당사자들은 대체적으로 초연한 입장입니다. 오히려 그녀들의 언니, 엄마가 자신의 동생, 딸을 아니 시청자들을 대신하여 불륜녀를 복수하는 악역(?????????)이 되어버립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배종옥의 언니인 하유미는 동생 남편과 바람을 핀 김희애와 치열한 격투신을 벌이며 '국민 언니'로 급부상하였고,  <천일의 약속> 이미숙 또한 결국은 바람맞은 자신의 딸을 대신하여 지형과 서연의 사랑에 분노를 표출합니다. 아마 조만간 서연을 찾아가 한번 머리 끄대기를 잡을 것 같기도 하구요. 

 


제 아무리 아름답게, 불쌍하게 포장을 한다해도 애초부터 <내 남자의 여자>에서 김희애와 김상중의 불륜과, <천일의 약속>에서의 수애와 김래원의 밀애와 파혼, 그리고 결혼은 사회적 통념에서 봤을 때는 전혀 상식밖입니다. 예전같았으면 드라마 속 지형은 향기 엄마에 의해서 충분히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받을 만 할 정도의 행위이기도 하구요.

분명 지형은 향기 아닌 서연을 사랑했습니다. 향기와 결혼을 선택하고자함은 오직 부모님때문이였지, 전혀 그의 행위와 무관하였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향기와 결혼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처지가 딱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진작에 용기를 내어 향기아닌 서연을 택했어야합니다. 만약에 일찍이 서연과의 결혼을 선택했으면, 향기가 충격으로 앓아눕는 일이 없을 것이고 향기 엄마의 독기가 극으로 달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을 것이니까요.

극 중 향기 엄마 이미숙이 너무 독살맞다구요. 만약 내 딸이 결혼 바로 하루 전에 파혼 당했다면, 그리고 예비 사위가 무려 1년여동안 자신의 딸이 아닌, 다른 여자와 바람피고 있었다면, 결국 그녀의 병 때문에 우리 딸이 버려진거라면, 세상의 어떤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줄까요?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은 그 두 사람의 사랑때문에 적어도 다른 상대방이 피눈물을 흘리지 않아야합니다. 상대방인 향기가 너무 착해서 망정이지, 이미 향기는 지형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파혼 소식은 그녀를 아는 주위 사람 모두에게 알려졌고, 막상말로 혼삿길도 막혀버린 상태입니다. 

허나 향기는 눈물을 머금고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했습니다.  오히려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린 서연이 불쌍하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진정으로 대인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내가 그 입장이라면, 난 정말로 그 두 사람을 용서하고 축하해줄 수 있을까. 심보 곱지 않은 제가 봤을 때는 아무래도 지형과 치매 환자의 결혼 소식을 듣고 더욱더 날뛰는 향기 엄마에게 공감이 될 수 밖에 없네요.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큰 공감대를 이끌어내야하는 아픈 주인공의 사랑을 순애보를 빙자한 부도덕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으로 그려내고, 상대적으로 악역(?)이 될 수 밖에 없는 인물에게서 통쾌한 공감대를 자극하는 김수현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천일의 약속>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