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음악을 좋아해서 시작한게 아니예요. 돈을 벌려고 음악을 했죠.”


JTBC <너의 노래는> 히로인 정재일이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그들의 팬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려진 비화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음악을 시작한 정재일은 이미 어린 시절 어떤 악기라도 한달 안에 마스터하고, 10여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루는 천재소년 이었다. 하지만 어린 정재일은 돈을 벌어야했고,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정재일은 말한다. 자신에게는 예술에 대한 철학이 없다고. 



여기서 문득 지난 추석 연휴 인터넷을 발칵 뒤집었던 경향신문 김영민 교수의 칼럼을 빌러,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 고백하건데 내 주위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를 예술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던 내 주변 사람들은 영화를 예술이라 생각하고 영화에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고자 한다. 


최근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는 <극한직업>처럼 많은 돈을 버는 영화도 간혹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의 영화는 많은 관객들이 찾고 즐길 수 있는 영화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주 가끔 그들에게 묻고 싶기도 한다. “도대체 당신은 왜 영화를 하나고.” 이 질문은 아직도 영화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못한 나에 대한 물음 이자 질책 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지난 14일 <너의 노래는> 4회에서 자신은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싫어했고, 예술에 대한 철학이 없다고 고백하는 정재일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밴드 세션부터 시작해, 대중 가요 작곡 및 프로듀싱은 물론 영화, 연극, 뮤지컬 음악은 물론 재즈, 국악, 클래식까지 두루 망라한 한국 현대 음악계의 떠오르는 예술가이다. 또한 그래서 정재일은 봉테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섬세함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과 <옥자>, <기생충>을 작업하며, 봉 감독의 어떠한 요구도 정확히 음악적으로 구현해낸다는 아주 훌륭한 음악 감독이기도 하다. 


이미 한국 음악계 곳곳에 그만의 깊은 인장을 새기고 있는 정재일 스스로가 예술에 대한 철학이 없다고 하다니. 하지만 이를 다르게 생각하면 예술(음악)은 이래야한다는 확고한 철학이 없기 때문에 대중 가요와 영화, 뮤지컬 음악, 국악과 서양 음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다양한 변주와 협업이 가능 했는지도 모르겠다. 



<너의 노래는>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곡으로 정재일은 모두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경기민요 ‘비나리’를 들려준다. ‘비나리’는 2017년 11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정상 국빈만찬에서 연주되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정재일은 국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로, 우리의 전통 이니까 보존해야한다는 당위성보다 국악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아름다움. 정재일과 함께 쇼팽, 에디트 피아프, 오스카 와일드 수많은 예술가들이 잠 들어 있는 파리의 페르 라세즈 묘지 공원을 찾아간 박효신은 예술품을 연상시키는 무덤들의 아름다운 형태에 말을 잇지 못한다. 페르 라세즈는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수많은 예술가들의 묘비가 있고 야외 조각 공원 같은 분위기 때문에 파리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에 등장한 지역 대표 명소이다. 파리지엥들과 파리를 찾은 수많은 관객들이 페르 라세즈를 사랑하는 것은 아마도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비나리의 가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나리에 흥미를 가지고 가사의 뜻을 물어본 것은 아마도 비나리가 아름답게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피아노를 치는 정재일의 지휘 하에 국악과 서양 악기의 크로스오버와 퍼포먼스로 구성된 비나리’는 아름다웠다. 시청자들이 ‘비나리’를 듣고 원하는 바를 이뤘으면 하는 정재일의 덕담처럼 ‘비나리’ 만으로 모든 액운이 싹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페르 라세즈 묘지에 다녀온 박효신은 말한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아마도 후세 사람들은 정재일과 박효신을 이렇게 기억할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과 노래로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예술가. 


한 때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했다던 정재일은 이제는 필생의 역작, 음악에 집중한 음악, 음악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음악을 위한 음악을 만드는 이 시대 훌륭한 음악가이자 예술가 이며, 그의 음악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차분히 위로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너의 노래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그동안 <너의 노래는>에 인터뷰이로 등장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순재, 최불암, 박정자, 안숙선, 송창식, 정미조, 박창학. <너의 노래는>에서 ‘세월이 가면’을 열창 했던 정훈희와 명동백작. 이적과 김고은이 각각 헌정곡을 선사 했던 김민기와 패티김. 돌이켜 보면 4부작으로 기획된 <너의 노래는>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정재일과 박효신, 아이유, 이적, 김고은, 정훈희의 협업으로 완성된 예술가들을 위한 헌정가 와도 같았다. 



<너의 노래는> 3회에서 명동백작의 풍경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순재, 최불암, 박정자는 가난했지만 예술에 대한 순수와 열망이 있어 행복했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선배 예술가들을 동경하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정재일이 있었기 때문에 행복한 시간들. 정재일만 괜찮다면, <너의 노래는>이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닌 꾸준히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너돌양

가수 박효신과 함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오래된 카페를 찾아간 음악감독 겸 뮤지션 정재일은 클래식 연주가들이 즉흥으로 공연을 하고, 헝가리 예술가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곳의 정취를 동경하게 된다. 한국에는 13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다페스트의 카페 센트럴처럼 예술가들과 문인들이 모여 음악과 시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사교를 즐기는 살롱이 있었을까. 분명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명동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았던 문화 살롱을 또렷이 기억하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지난 7일 방영한 JTBC <너의 노래는> 3회의 부제를 달자면, 정재일의 음악과 함께 떠나는 그 시절 추억 여행 정도로 간주해도 좋지 않을까. 지난 2회 까지는 정재일과 함께 작업을 했고, 친분이 있는 박효신, 아이유, 이적이 정재일의 음악 파트너로 등장했는데, 3회에는 정재일과 별다른 친분도 없고, 배우인 김고은이 게스트로 출연한다고 하여 좀 의아스러웠다. 게다가 김고은이 <너의 노래는>에서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부른다니. 패티김이 누구인가. 이미자, 조용필과 더불어 대한민국 가요계의 전설 중의 전설. 국민 가수라는 칭호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독보적인 뮤지션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는 것만으로도 후배 가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과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로 활동하는 틈틈이 신승훈 등 여러 뮤지션과 끊임없이 협업을 이어나가며 조용히 실력을 인정받은 김고은은 김태용 감독의 <만추>(2011)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자기만의 감성과 색깔로 시대를 앞서간 전설적인 뮤지션의 명곡을 말끔히 소화해냈다. 더할나위 없이 맑고 청량한 음색이었고, 이를 뒷받침 해주는 정재일의 전자 기타 연주도 좋았다. 이렇게 패티김이 수십년 전 발표한 시대의 명곡은 김고은과 정재일의 깔끔한 재해석으로 원곡과는 또다른 질감의 울림을 선사한다. 




국민가수 패티김을 방송을 통해 재소환한 정재일과 김고은의 콜라보레이션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았던 에피소드는 가수 정훈희와 함께한 ‘명동백작’ 이었다. 패티김의 뒤를 이어 ‘안개’, ‘무인도’, ‘꽃밭에서’ 등 수많은 곡을 히트 시키며 국민가수 반열에 올라선 정훈희가 <너의 노래는>에서 부른 노래는 1958년 발표한 ‘세월이 가면’이다. ‘목마와 숙녀’ 박인환 시인의 작사가 인상적인 ‘세월이 가면’은 명동 백작과 깊은 연관이 있다. 박인환 시인이 심장마비로 죽기 며칠 전, 어느 때와 다름없이 평소 즐겨찾는 명동의 한 선술집에서 동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박 시인은 같이 있던 가수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시를 지었고, 그 싯말이 ‘세월이 가면’이 되었다. 


60년대 전후 세대들에게는 박인환이 시를 쓰고, 현인이 부른 ‘세월이 가면’보다 최호섭이 부른 ‘세월이 가면’이 더 익숙할 수 있다. 기자 또한 <너의 노래는>을 보고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이전에 박인환, 현인의 또 다른 ‘세월이 가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단,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뿐일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과거 명동 뒷골목에 존재했다는 수많은 문화 살롱, 다방, 선술집은 이봉구가 남긴 책 <명동백작> 에서만 만날 수 있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옛 이야기이다. 




그 시절 명동 백작을 똑똑히 기억하거나 목격 했던 이순재, 최불암, 박정자는 하나같이 가난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과 낭만이 살아 숨쉬었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그 시절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잠시 뒤로하고 음악과 시, 예술을 논하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던 그 시절이 부럽기도 하다.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카페 센트럴은 찾은 정재일과 박효신은 예술가, 문인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유럽의 살롱 문화를 부러워했다. 아마, <너의 노래는>을 본 다수의 시청자들도 이들과 비슷한 마음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예술가,문인들이 자유롭게 꿈을 펼치던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탄생하였다. 다만, 지금은 자본의 위력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뿐. 




그리고 지금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 시절을 동경하고자 하는 정재일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를 가진 정훈희와 함께 명동백작의 순수와 낭만의 세계를 느끼고자 한다. 예술의 낭만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반문하게 하면서도, 정재일과 정훈희의 ‘세월이 가면’을 듣는 것만으로도 명동 백작의 순수한 예술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너의 노래는>이다. 

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