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5.18 여성 시민군들의 활약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2017)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광주 지역 곳곳에서 존재한 여성 운동 역사를 추적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영화에 따르면 70년대 말 광주 지역 여성 운동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지역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와 민주노조 결성을 위해 소그룹활동을 하고 있던 여성노동자그룹(카톨릭노동청년회JOC, 들불야학)과 '송백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 그룹이 있었다. 그리고 각 단체에서 활동하던 여성 운동가들은 5.18 민주항쟁 발발과 함께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여성(감독)의 시선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방위로 활동한 여성 시민군, 운동가들의 활약상에 주목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그 자체만으로 적잖은 의의를 가지고 있다. 1995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재평가하고자하는 여러 움직임과 함께 광주 거리, 전남도청 등 최전선에서 싸우던 시민군들의 명예가 일부 회복되기도 했지만, 그들과 함께 광주 항쟁에 일조했던 이름 없는 시민들, 특히 여성 시민군에 대한 이야기는 5.18에 대한 기록이 정교해지는 것과 다르게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5.18 이전부터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달린 조국 근대화를 위해 부당한 노동환경도 묵묵히 견뎌야한다고 굳건히 믿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독재 정권 치하 사회가 매우 잘못되었음을 인지한 광주 지역 여성 노동자들과 민주화운동가들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각종 활동을 이어간다. 유독 광주가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게 격렬히 저항할 수 있었던 것도 독재 정권 반대와 노동 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광주 분위기와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5.18 거리, 도청 투쟁에 가려진 광주 시민·노동·여성 운동 역사는 재조명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려야했다. 물론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5.18을 폄하, 왜곡하는 움직임이 상당한 만큼,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거나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복원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5.18에 대한 공식적인 역사가 무장 투쟁에 가담한 남성 시민군을 중심으로 5.18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피해자들의 증언에 치우쳐있고 1980년 5월을 함께 했던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저항 세력의 주체로 제대로 호명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볼 때, 광주 항쟁 당시 총, 칼만 들지 않았지 무장 시민군 못지않게 열렬히 싸웠던 여성 시민군 관점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시 바라보는 시도 또한 분명히 필요해 보인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 출연한 광주 여성들은 70년대 말 지역 여성·노동 운동에 참여한 노동자와 운동가 외에도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가두방송을 진행하다가 고초를 치룬 여성 시민군, 시민군들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그들에게 도시락, 간식을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투쟁에 가담한 이들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삶을 이어오고 있었다.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5월의 광주 여성들 모두 광주민주화운동의 적극적인 저항 주체 세력이었지만, 그들을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공식 기록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여성 저항 주체들의 목소리와 경험들만 묶어 여성의 관점에서 5.18 광주 민주항쟁을 돌아보고자 한다. 특히 영화의 주요 화자로 등장했던 윤청자(JOC회원, 5.18 당시 도청 취사조 담당)와 5.18 당시 가두방송을 진행했던 차명숙,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마지막 항쟁의 가두방송을 이끌었던 박영순이 지난 17일 방영한 SBS 스페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그녀의 이름은>에 인터뷰이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정적, 왜곡적인 시선과 더불어 여성의 사회 운동 참여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간의 시대적 편견과 맞물려, 5월 광주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들 중에서는 5.18 당시 겪었던 고문 트라우마에서 회복되지 못한 생존자도 있었고, 5.18을 비난하고 폄하하는 일부 사회 분위기로 인해 광주민주항쟁에 참여했다는 과거가 알려지는 것이 원치 않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여성의 목소리와 경험으로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광주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인터뷰에 기꺼이 참여했고, 자신들이 겪었던 80년 5월 광주의 상황과 광주 항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어졌던 자신들의 활동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여기에 1980년 5월을 함께했던 광주 여성 동지들은 80년 5월 광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사드배치 반대 평화활동 등 제2의, 제3의 광주의 비극을 막기 위한 다양한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주역들이지만 상대적으로 가려져있던 존재들. 하지만 1980년 5월의 광주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5월 광주 여성들. 그녀들은 분명 외롭고 쓸쓸해 보이면서도 높았다. 

 


​여성의 시선에서 5.18 여성 시민군들의 활약을 주체적으로 조명하고, 지금도 여성 운동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녀들의 현재를 만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는 제40주년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만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xopnUk-mo0&feature=youtu.be

 

[2019 독립영화 쇼케이스]에 게재된 리뷰를 수정, 편집을 거쳐 재게재한 글입니다. 

 

Posted by 너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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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극성맞게 (민주화투쟁에 참여했다고)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은 있더라고. 위험한데 그렇게 다니는 네가 정상은 아니지 않느냐. 여자가 총 쏘고 시체들 널려있고 난리 통에 나가서 그리고 끝까지 그러고 다녔다는 게…” (5.18 당시 투쟁에 참여했던 여성 시민군 박미숙 씨) 

 

 

지난 17일 방영한 SBS 스페셜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시민군들의 활약을 조명하는 ’그녀의 이름은’을 방영해 눈길을 끌었다. 

5.18 당시 남성 시민군들과 함께 항쟁의 최전선에서 목숨걸고 싸웠지만, 어느순간 잊혀져 버린 여성 시민군의 이름들. 5.18 당시 만 16살의 나이에 시민군에 참여했던 박미숙 씨는 자신과 함께 붙잡힌 여성 시민군들 대부분이 남성 시민군과 다르게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했다고 토로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여를 만류하던 남성 시민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기탈취 시위대에 가담했던 남민아 씨 또한 투쟁에 참여했던 과거를 숨길 수밖에 없는 아픈 경험을 고백한다. 

 

 

“크게 다친 저를 보자마자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너 시집 못 가겠다.” 딱 그러시는 거예요. 엄마가 미웠어요. 왜 너는 왈패같이 그렇게 사내애처럼 나다니느냐. 나다니다가 네가 잘못해서 맞았지 않았나.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때 엄마 말씀하신 것이 뼈에 박혔어요. 진짜로, 진짜 박혔어요.” 

 

5.18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오랫동안 가려져있었던 여성 시민군들의 역사. 물론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5.18을 폄하, 왜곡하는 움직임이 상당한 만큼,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거나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복원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5.18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쉽게 고백할 수 없었던 분위기와 맞물려 여성은 사회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 안되는 편견에도 맞서야 했던 부담이 여성 시민군들의 존재를 더욱 위축 시켰던 것은 아닐까. 

 

 

이 날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들었던 장면은 1989년 5.18 청문회 당시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 청문회의 증인으로 등장한 홍금숙 씨에게 공개적으로 언어 성폭력을 가했던 유수호 당시 민정당 의원의 만행이었다. 

“증인 결혼했습니까? (중략) 앞으로 결혼할 생각은? (중략) 기왕 결혼 하려면 경상도 남자와 좀 결혼을 해서 이 쓰라린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증인이 그런 역사적인 사명. 그런 씨앗을 한 번 심어줄 용의는 없는가?” 

 

놀랍게도 이건 실제 일어난 일이었고, 그렇게 5.18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그녀들의 활동을 제대로 인정하고 존중하지 못했던 현실에 더욱 고립 되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5.18에 참여했던 여성 시민군들의 존재를 거론하며 그녀의 이름을 찾아주고자 하는 <SBS 스페셜-그녀의 이름은>이 가진 의의는 상당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시민군들의 존재를 각인하고 그녀들을 중심으로 광주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평가하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80년 5월 광주에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Posted by 너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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